2026.3.8.사순 제3주일 탈출17,3-7 로마5,1-2.5-8 요한4,5-42
주님과 만남의 여정
“세상의 구원자이신 주 예수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샘이 솟으리라.”(요한4,14)
아침 성무일도 독서중 마음에 와 닿은 성구입니다. “이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니 슬퍼하지 마라. 주님의 기쁨은 우리의 힘이로다”(느헤8,10), 주님의 기쁨은 우리의 힘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림이 우리 힘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은 무수한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과연 만남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만남의 기쁨, 만남의 평화, 만남의 행복등 만남의 축복은 끝이 없습니다. 늘 새롭게 만나야 할 주님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힘, 주님을 만날 때 샘솟는 기쁨에 힘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이 참 각별한 느낌으로 와닿습니다. 길을 걷느라 지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 시카르라는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고 때는 정오이니 무척 더웠을 날씨입니다. 주님의 인간적 면모가 마음에 친근히 와닿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과 이어지는 대화가 깊은 묵상감입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주도권을 잡으신 예수님의 청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마실 물을 청하는 목마른 사람들, 또 하나의 예수님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반문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관행상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천시하여 상종도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사마리아 여인의 깊은 내면을 보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다섯 남편을 지녔던 여자라면 그 내적 갈증은 헤아릴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물을 달라는 청은 구원에로의 초대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이 상징하는 바 오늘 여기 우리 삶의 자리입니다. 바로 여기 진짜 <야곱의 우물>인 예수님이 계십니다
바로 제1독서 탈출기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목이 말라 모세에게 불평하자 모세는 하느님께 부르짖었고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겠다. 네가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물이 터져 나온 호렙의 바위가 상징하는 바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시편은 “구원의 바위앞에 환성을 올리세” 노래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부족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촉구합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도 이에 근거합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그동안 베풀어 주셨던 기적들을 기억하는 믿음이었다면 이런 불평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닯았습니다. 사마리아여인은 내적 갈망은 구도자의 모범이라 할 만합니다. 주님을 목말라 찾는 우리 역시 또 하나의 사마리아여인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를 향합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 자체가,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가 살아 있는 야곱의 우물이자, 생수가 터져 나오는 바위요, 생명의 물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구원의 샘, 생명수의 샘, 예수님입니다. 바로 이 생명수인 성령을 모시러 미사전례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는 바로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는 성령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음-희망-사랑, 신망애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되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니 결코 목마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 사마리아여인은 물론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 귀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1.“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 내 삶의 자리가 예배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이기 때문에 어디나 주님을 만나는 예배터가 됩니다. 제자들이 돌아오자 이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또한 귀한 두 번째 깨우침이 됩니다.
2.“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대로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육신의 양식은 결코 영적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 참양식이요 삶의 의미이자 목표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영육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3.구원은 언젠가 그날이 아닌 영원한 현재 진행형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 실현됨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다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오늘 지금 여기 영의 눈이 열리면 씨뿌림과 수확이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선교의 기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적 비전이 너무 생생하여 놀랍고 부럽습니다.
마침내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기를 청하자 예수님은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셨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한 말은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의 고백을 대변합니다. 사마리아여인 하나에게 붙은 복음의 불이 사마리아아전역에 타오르게 되었음을 봅니다. 이제 사마리아여인은 '생명의 샘' 주님을 만나 기쁨의 사도가 되었으니 물동이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요한4,28).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언제 어디서나 <세상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모시고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 당신은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시니,
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주소서.”(요한4;42,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