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2. 토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293-373) 기념일
사도13,44-52 요한14,7-14
껍데기의 삶이냐, 주님과 하나된 알맹이의 참 삶이냐?
“예수님과 우정의 여정”
"주님,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에는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시편92,3)
어제 면담성사중 들은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희 가정은 껍데기만 남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아무일 없는 가정같지만 안으로는 완전 소통이 없는 각자 남남의 삶이었습니다.”
껍데기의 '생각이 없는 삶', '영혼이 없는 삶'이라면 참 허전하고 외로울 것입니다. 무의미하고 무력한 유령 같은 삶이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옛 사막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갈망은 참으로 진짜 알맹이의 참나의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파스카의 봄꽃들이요 요즘 수도원은 영산홍이 절정입니다. 요셉상 옆 붉게 타오르는 영산홍을 보는 순간 오래 전, <성 요셉> 이란 자작시가 생각났습니다.
“말없이 고요해도
가슴은 타오르는 불이다
성 요셉상 옆
붉게 타오르는 영산홍!”<2000.5.10.>
참으로 주님과 하나되어 내면에 사랑의 불을 지니고 살아 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과 날로 깊어가는 믿음과 사랑의 우정이 내적활력의 샘입니다. 이래야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의 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날로 깊어가는 예수님과 믿음과 사랑의 우정의 여정이 얼마나 참삶에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중 필립보와 예수님과의 대화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필립보는 그대로 우리를 대변한다 싶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를 뵙고 싶은 것은 인간 내면의 깊은 원초적 욕구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찾는 갈망의 사람들인 수도자의 질문같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참으로 필립보를 부끄럽게 했을 것이며 분명 회개에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하느냐?”
그대로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날마다 공동미사전례 때 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고 평생 주님과 함께 살았는데 도대체 주님을 모르겠느냐 묻는 것처럼 들립니다. 주님과 함께 살았어도 주님을 모르니 껍데기의 공허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저절로 헛 살았다는 탄식이 나올만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이 우리의 믿음을 촉구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내가 다 이루어주겠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 사랑으로 하나될 때 내적으로 활성화되는 믿음이요 이런 믿음은 내적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아마도 필립보도 이런 충격적 주님과의 만남체험을 통해 껍데기의 삶이 아니라 알맹이의 역동적 참삶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역동적 참삶의 본보기가 오늘 사도행전의 적대자들인 유다인들 앞에서 담대히 말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합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믿음으로 껍데기가 아닌 진짜 알맹이의 참 삶을 살게 된 이방인들입니다. 유다인들에 쫓겨나면서도 기쁨과 성령이 가득했던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 역시 껍데기가 아닌 참삶의 모범입니다.
또 이런 참 삶의 본보기인 오늘 기념하는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는 성 바실리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와 함께 동방의 4대 교부에 속합니다. 성 아타나시오는 293년 이집트 북부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신학자이자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였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한 가톨릭교회가 최초로 인정한 교부였습니다.
성인은 총 46년의 주교 재임 기간 중, 5차례의 추방과 17년을 망명생활로 보냈고 오랜 투쟁 끝에 373년 5월2일 바로 오늘 80세로 평화롭게 선종합니다. 그 파란만장한 삶중에도 80세 장수하셨으니 인명은 재천임을 확인합니다.
참으로 주님 사랑의 뜨거운 불을 지니고 한결같이 껍데기가 아닌 참 역동적인 참삶을 사셨던 <주님의 전사> 성 아타나시오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성인이 쓴 <성 안토니오 전기>는 수도자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했고,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성인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껍데기 삶이냐 알맹이의 참 삶이냐? 자주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과 믿음과 사랑의 우정의 여정에 충실할 때 비로소 껍데기가 아닌 주님과 일치된 참삶이겠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일치의 우정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 하시는 일로 날 즐겁게 하시니,
손수 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시편92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