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3.부활 제5주일(생명주일) 사도6,1-7 1베드2,4-9 요한14,1-12
부활한 주님 중심
“생명의 터전 교회 공동체”
“주님, 우리가 당신께 바랐던 그대로
어여삐 여기심을 우리 위에 내리소서.”(시편33,22)
오늘 미사중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입니다. 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자 제16차 생명주일입니다. 신록의 5월 성모성월, 온 누리가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사랑의 생명, 성령의 생명입니다. 생명 충만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더불어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오래전 두 편의 시가 생각납니다. 하나는 자연을 통한 깨달음이고 하나는 사람들을 통한 깨달음입니다.
“저렇게 사는 거다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인위와 무위, 자연과 문명의 조화는 어디쯤일까?
뽑고 뽑아도 줄기차게 솟아나는 잡초들
아예 더불어 살도록 내버려 두니
잔디밭이 잡초밭이 되었다
저렇게 사는 거다
자연이 좋다
제 각기 제 모습 제 색깔로 함께 어울려 사는 거다
잔디밭이 따로 있나?
잡초가 어디 있나?
다 고유의 이런저런 모습으로 폈다지는 풀꽃들이 아닌가?
좋고 새롭고 평화롭기가 무궁무진이다”<2007.5. >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자연은 공동체 삶에 참 좋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줍니다. 예전에는 참 많은 팀들이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함께
먹는 기쁨,
사는 기쁨, 나누는 기쁨
배꽃들
아늑한 풀밭 어머니 같은 품안에서
소풍 나온 무려 일곱 여덟 명씩 여섯 팀 자매들
성경공부, 성무일도 끝낸 후
곳곳에 둥그렇게 앉아
싱그러운 풀냄새 꽃냄새 맡으며 점심식사를 하네”<2007.5. >
지금도 눈에 선한, 식사 때 자매들의 행복 해 하는 꽃같은 모습들입니다. 요즘은 이런 작은 모임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름다운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을까요?
첫째, 믿음의 참된 진(眞)의 공동체입니다.
부활한 주님 중심의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믿음은 인간품위의 기초입니다. 믿음 없어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땅 깊이 뿌리내린 나무들이 늘 푸르른 생명이듯 하느님의 공동체 생명의 텃밭에 깊이 믿음의 뿌리 내릴 때 안정과 평화의 튼튼한 영혼들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노년 품위의 우선적 순서도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입니다. 주님 중심의 믿음에서 샘솟는 기쁨, 평화의 선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바 믿음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 믿음이 빈자리를 마련할 때 주님 친히 임하셔서 일하십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권고가 좋은 도움이 됩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귀한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모퉁잇돌 주님을 중심으로 이뤄진 영적 집의 공동체를 이루는 살아 있는 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는 믿음의 공동체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희망의 선(善)한 공동체입니다.
부활한 주님은 우리 공동체의 중심이자 희망이요 기쁨입니다. 희망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희망의 힘, 희망의 빛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희망과 꿈이 사라질 때 유혹과 타락이 죄와 병이 뒤따릅니다. 참으로 영적건강에 우선적 처방이 희망과 꿈입니다. 진짜 희망이자 꿈은 부활하신 주님뿐입니다. 갈 길을. 희망과 꿈을 잃어 방황이요 표류입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제대로의 방향입니다. 바로 주님 친히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하늘 길>이심을 천명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길이라고 다 길이 아닙니다. 지옥으로 포장된 화려한 길도, 죽음과 파멸에 이르는 가짜 길도 참 많습니다. 진리와 생명의 아버지께 이르는 참길, 하늘 길은 예수님뿐입니다. 다시 나누는 수도원 하늘 길을 걸을 때 마다 되뇌는 고백입니다.
“하늘 님 그리울 때,
보고 싶을 때
하늘보고 하늘 기운 숨쉬며
하늘품위 되찾고 <하늘의 왕자>되어
하늘 님,
예수님 따라
가슴펴고 힘차게
나는 듯 걷는다
이 기쁨에 이 행복에 산다.”
진리와 생명이자 희망이신 아버지께 이르는 하늘 길이신 예수님께 희망을 둘 때, 비로소 늘 푸르른 생명의 순례 공동체로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사랑의 아름다운 미(美)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에 길이 없습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평화, 사랑의 일치, 사랑의 균형과 조화입니다. 사랑에서 지혜도 나옵니다. 공동체의 위기는 외부에서 보다는 내부의 분열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리 부유한 공동체도 내적으로 분열하여 무너지면 저절로 자멸입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바로 사도행전의 공동체가 내적 분열을 슬기롭게 해결한 참 좋은 본보기입니다.
부활한 주님 중심의 사도들의 분별의 지혜가 위력을 발휘하여 공동체를 살렸습니다. 이런 분별력의 잣대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서 나온 분별의 지혜입니다. 식량 배급시 차별로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자 공동체 분열의 위기를 감지한 사도들의 기민한 조치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말씀을 제쳐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사도들의 지혜로운 결정이 가능할 수 있었음은 사랑의 성령 은총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고 공동체도 성장하니 분열의 위기에 처했던 공동체는 전화위복, 이제 생명 충만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모든 공동체의 원형이자 모범인 생명 충만한 교회공동체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은 부활한 주님 중심의 신망애信望愛의 공동체이자 진선미眞善美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공동체를 이루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생명주일에 적당하다 싶어 교황님의 5월 기도문중 한 대목을 나눕니다.
“주님, 모든 음식에 감사하고, 검소하게 먹고. 기쁨으로 나누며, 땅의 열매를 당신께서 모두를 위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소중히 여기도록 하소서.” 아멘.
*참고; 소개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정조 임금은 할아버지 영조를 닮아 백성을 사랑했고 의식주 생활을 매우 검소하게 꾸려 음식은 하루에 두 끼 정도만 먹고, 반찬은 두서너 가지에 지나지 않았으며, 진귀한 음식의 진상을 중지시켰다. 평상시 옷은 무명옷을 입었으며, 한번 지은 옷을 여러번 빨아 입었다. 거처하는 집도 겨우 비를 가릴 정도로 검소하여 신하들이 보고 놀라움을 금치못하였다.’(성군의 길; 정조평전 상권 ‘한영우’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