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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4.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창세2,18-24 히브2,9-11 마르10,2-16


                                                                       사람은 귀하고, 외롭고, 약하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슈퍼스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국적과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원한 청춘, 현대판 하느님의 예언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오늘 영명축일을 맞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교황님으로 즉위하신후 지금까지의 행적만으로도 살아 있는 성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은 연중 제27주일, '주님의 날'이자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성 프란치스코의 날'입니다. 


“찬미받으소서”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시의적절하게 반포하신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명쾌하게 적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아름다운 회칙의 제목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명한 ‘태양의 찬가’에서 인용한 제목입니다. 최민순 신부님이 번역하신 ‘태양의 찬가’ 일부를 나눕니다.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서도

언니 해님에게서 찬미받으소서.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 거리며

당신의 보람을 지니나이다.

 

누나 달이며 별들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빛 맑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나이다.


언니 바람과 공기와 구름과 개인 날씨, 그리고

사시사철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저들이 기르시나이다.


쓰임 많고 겸손하고 값지고도 조촐한 누나

물에게서 내 주여 찬미받으소서.


아리고 재롱되고 힘세고 용감한 언니 불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내 주여, 누나요 우리 어미인 땅의 찬미받으소서.

그는 우리를 싣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모든 가지 과일을 낳아줍니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미받으소서.


내 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받으소서.-


마침내 죽음도 누나라 일컬으며 누나인 죽음의 찬미를 받으소서 노래하는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새삼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문제라면 이들을 지으신 하느님은 유일한 답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 탐구가 얼마나 헛된 노고인지 알게 됩니다. 얼마전 귀여운 아기를 안고 수도원을 방문한 젊은 부부와의 만남을 잊지 못합니다. 젊은 어머니 자매의 평범하나 진솔한 고백입니다.


“아이가 나를 닮은 것 같지 않고, 남편도 닮은 것 같지 않고, 고유한 존재처럼 느껴져요. 모든 사람이 아이였을 때는 이렇게 어머니의 사랑받는 아이였을 거라는 생각에 모든 사람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요.”


‘고유한 존재’라는 말마디의 강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어머니의 사랑스런 아이였을 때를 상상한다면 절대 누구든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 강론 주제에 앞선 이런저런 예화를 나눴습니다. 얼마전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던, ‘나도 여기 있어요.’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내 산책시간은/보석같은 시를 줍는 시간

 “나도 여기 있어요!”/소스라쳐 놀라 돌아보니

 노란 수세미꽃/환히 웃고 있었다.

 “나 여기 있다!”/바라보며 웃으시는 주님같다.-


아, 바로 이게 사람입니다. ‘나도 여기 있어요!’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람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어떠합니까? 사람의 신비는 무궁무진 끝이 없습니다. 새삼 사람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와 직결됨을 봅니다. 


첫째, 사람은 귀합니다.

귀한 사람입니다. 제 축일 축하차 방문한 자매가 가져온 떡을 먹으며 ‘아, 우주를 먹는 것 같습니다.’ 덕담을 드린 일이 생각납니다. 떡 안에 밤, 콩등 온갖 열매들이 들어있어 흡사 우주를 몸안에 모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우주요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작품이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사람을 천하게 대하는 일이 얼마나 몹쓸 대죄인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존엄한 품위의 인간입니다. 다음 창세기의 말씀이 증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예속적 관계나, 우열의 관계가 아닌 대등한 평등적 존재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죄로 얼룩진 얼굴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거기 하느님의 얼굴이 보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하느님과 더불어 예수님이 우리의 존엄한 품위를 확실히 자리매김하십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인 예수님을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는 예수님이나. 거룩하게 된 우리들은 모두 한 분 하느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는 우리의 신원이 바로 존엄한 품위의 근거입니다. 시편의 아름다운 고백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시편8,4-6)


그러니 자신은 물론 이웃을 귀하게 대하십시오. 사람은 귀합니다.


둘째, 사람은 외롭습니다.

외롭고 쓸쓸해서 사람입니다. 너무 외로워서 고립감에 자살입니다. 외로워서 하느님을 찾고 공동체를 찾고 사람을 찾습니다. 사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함께 살아야 사람이 되지 혼자 고립되어 살다보면 폐인이 아니면 괴물이 됩니다. 바로 관계적 존재인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관계를 떠나선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관계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자의 사람 '인자' 자체가 공동체적 관계의 사람임을 입증합니다. 지옥 역시 장소개념이 아니라 관계개념입니다. 고립단절의 관계라면 아무리 의식주가 보장된 아름다운 환경이라도 지옥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신 후 사람의 외로움을 즉각 통찰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말씀하신후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사람에게 데려 오십니다. 창세기의 신화적 표현이지만 놀랍고 신비로운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부부관계는 대등한 인격적 관계이면서 동시에 상호종속적 보완관계라는 것입니다. 어찌 부부관계뿐이겠습니까? 공동체내의 인간관계 또한 그러합니다. 반려자이자 협력자를 만난 사람의 외침은 참 만남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아, 이런 부부일치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이혼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결합한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후에는 내적분열의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함께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고 중요한 일이 부부생활일 것입니다. 정말 한평생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태어나는 사랑이 아니라 평생 만들어 지는 노력의 사랑입니다. 다음 복음의 주님 말씀도 깊은 묵상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바로 혼인불가해소성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나 이혼금지법의 조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사도 법제정자도 아닙니다. 이혼하는 것이,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궁극의 대안이 아닙니다. 정말 심사숙고 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이혼의 유혹이 들어도, 공동생활이 어렵더라도 끝까지 견뎌내며, 버텨내며, 참아내며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관계를 깊이 하고자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순교적 위대한 삶이요 결국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그 인생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부부관계의 어둔 터널을 통과하여 빛속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만난 저의 증언입니다.


수도공동생활의 이치나 부부공동생활의 이치나 똑같습니다. 다 고유의 성소이기에 우열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부생활이나 수도공동생활엔 답이, 첩경의 지름길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늘 새롭게 시작하는, 노력하는 사랑뿐입니다. 하여 저는 주저함 없이, 부부생활이든 수도생활이든 ‘잘 살고 못 살고는 차후 문제이자 도토리 키재기 일뿐 우선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이요 성공적 인생이다.’라고 말합니다.


셋째, 사람은 약합니다.

약해서 사람입니다. 사람은 강하지 않습니다. 방어본능상 약함을 위장하여 강한 듯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저절로 깨닫는 정직한 현실이 인간의 약함입니다. 몸과 마음은 얼마나 약한지요. 생노병사에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육신과 영혼입니다. 상처받기 쉬운 피부처럼, 우리 마음 또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지요. 


하여 세상에 몸과 마음에 병없고 상처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되는 삶의 전쟁이 아닙니까? 평화를 원하지만 역설적으로 생존경쟁 치열한 삶의 전쟁터를 살아가기에 병도 많고 상처도 깊습니다. 애당초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에서 운명적으로 약함을 타고난 인간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약하기에 하느님을, 공동체를, 사람을 찾습니다. 크고 강하고 건강한 이들이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작고 약하고 병든 이들이 사는 사랑의 공동체가 역설적으로 강한, 예수님이 바라시는 공동체입니다. 연민과 겸손, 존중과 신뢰, 배려와 공감의 복음적 공동체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이상대로 인간공동체를 넘어 약한 피조물 형제들까지 보듬어 안는 우주적 공동체입니다. 약한 이들에 대한 주님 사랑의 각별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오늘 복음의 백미입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냥 놓아두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린이들이 상징하는바 겸손한 자가 아닙니다. 어린이들은 결코 겸손하지 않습니다. 겸손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어린이가 상징하는 바 인간의 약함입니다. 어린이처럼 약하기에 마음 활짝 열어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여 사는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도 은혜롭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영원한 어린이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외롭고 약한 어린이들 같은 우리 모두를 끌어안으시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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