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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27.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미카7,14-15.18-20 루카15,1-3.11ㄴ-32


                                                                    우리 삶의 궁극 목표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는 것-


새벽 성무일도 중 독서의 기도. 3부에 걸친 시편 136,1-26절까지의 후렴은 언제나 읽고 들어도 흥겹습니다.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의 궁극 목표는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는 것입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입니다. 오늘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를 통해 떠오르는 루카복음 6장36절,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오늘 복음 화답송 후렴도 자비하신 아버지의 대한 고백입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신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이 하느님의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삼 설명이 없는 그 자체로서 감동적인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마치 ‘아버지와 두 아들’의 한 공동체를 상징하는 가족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주제는 회개입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을 보면 작은 아들이 집에 머물러 있었다 해도 큰 아들과의 사이는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마 큰 형과의 불편하고 불화한 관계 때문에 집을 나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외관상 아버지의 충실한 효자같아 보이는 큰 형은 내심 동생을 무시했을 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도 두 아들 사이에서 마음 고생이 참 컸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의 공동체는 그대로 공동체의 어려움을 상징합니다. 이런 불화로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는 얼마나 많은지요. 심지어는 원수처럼 되어 버리는 형제들의 공동체도 많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분단된 한반도 땅, 남한과 북한입니다. 국력이나 충실도로 보면 흡사 남한이 큰 아들 같고 북한이 작은 아들같습니다. 이런 사이의 아버지가 있다면 참 아버지 노릇하기 힘들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두 형제들의 싸움을 보면 참 부끄럽고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 나라들이 얼마나 속으로 무시하고 업신여기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두 형제가 엄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위해선 힘을 합해도 부족한데, 또 두 형제가 살길은 평화통일뿐인데 거의 분단 70년이 다 되어 가는 중에도 서로의 대결에 힘을 다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답은 회개뿐입니다. 복음의 작은 아들은 회개하여 아버지의 집을 찾아 돌아왔지만 오늘 북한의 작은 아들이 돌아올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큰 아들의 회개입니다. 큰 아들인 남한이 복음의 아버지를 닮아 자비롭고 너그러워 지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다면 결코 개성공단도 폐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의 아버지처럼 한반도의 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인내의 사랑을 깨달아 배우자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은 늘 묵상해도 감동입니다. 무능할 정도로 자비로우신 아버지입니다. 자비로운 아버지의 절정은 작은 아들의 귀가 때의 모습입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이런 회개를 촉발시킨 원인은 분명 자비로운 아버지에 대한 추억임을 봅니다. 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객지의 바닥 체험을 통해 떠오른 자비하신 아버지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귀가하자마자 아버지의 환대 모습도 감동입니다. 


늘 작은 아들의 귀가를 기다렸던 아버지임이 분명합니다. 작은 아들의 귀가 모습을 보자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큰 소리로 잔치를 베풀 것을 명령하십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바로 이 말씀이 복음입니다.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께 효도하는 일입니다. 작은 아들의 잘못을 추궁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환대하는 자비하신 아버지입니다. 답은 이 하나뿐입니다. 아버지는 매일 이 거룩한 미사잔치를 통해 당신께 돌아 온 우리를 이렇게 환대해 주십니다.


요즘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의 의결을 막기위한 무제한 토론의 필리버스터가 23일부터 야당국회의원들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내외에 주는 파장이 엄청나다 합니다. 아마 우리의 작은 아우인 북한도 ‘아, 큰 형님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구나, 한국의 저력은 저기에 있구나!’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얼마전 북한의 로켓발사가 준 국내외의 충격 이상으로 한국의 필리버스터 로켓 발사의 긍정적 충격은 대단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실현이야 말로 최고의 안보安保임을 깨닫습니다.


남북통일도 큰 아들인 한국이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자비롭고 너그러워 지는 길뿐입니다. 서로의 잘못만 책하며 일방적 승리를 꾀하려 한다면 서로간의 화해나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난형난제難兄難弟의 남북의 형제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큰 아들의 반응에서 그의 본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빗댄 말이지만 우리가 큰 아들이라 상정할 때의 인간의 보편적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헛 살았습니다. 부자관계가 아닌 주종관계로 살았습니다. 


거리상으론 가까웠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작은 아들 이상 멀었습니다. 작은 아우에 대한 증오도 여전합니다. 정작 회개할 이는 큰 아들입니다. 북한의 회개에 앞서 큰 아들인 남한의 회개가 철저히 이뤄지는 사순시기가 되길 원합니다. 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이 또 감동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의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모든 불화한 공동체들이 평화와 일치를 회복하는 길은 단 하나, 이런 아버지의 자비를 닮는 길뿐입니다. 우리의 옹졸하고 편협한 마음을 한없이 부끄럽게 하며 회개로 이끄는 말씀입니다. 작은 아들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은 아버지는 여기서도 큰 아들의 옹졸함을 책하지도 않고 그냥 큰 아들의 마음에 호소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고백한 하느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자비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잔치에 회개한 마음으로 참석한 우리 모두를 성실히 대하시고 자애를 베풀어 주시며 당신의 자비로움을 닮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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