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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13. 사순 제5주일                                                                  이사43,16-21 필리3,8-14 요한8,1-11       


                                                             자비의 선물, 자비의 환대, 자비의 체험



저에게 자비하신 주님은 봄같은 분이십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써놓은 '봄님과 함께'란 시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해마다/봄이 오면

 봄님과 함께/봄이 되어


 봄꿈을 꾸며/봄길을 걷는다

 이 기쁨/이 행복 누가 알리-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자비의 선물이며, 하느님의 참 좋은 환대가 자비의 환대이며, 하느님의 참 좋은 체험이 자비의 체험입니다. 자비의 희년을 지내는 교회의 요즘 화두도 단연 자비입니다. 하느님 체험은 바로 자비의 체험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너그럽고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음도 하느님의 자비덕분입니다. 우리의 평생 유일한 과제가 있다면 자비로운 하느님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 하나뿐입니다.


가장 멀리 있는 분같으나 가장 가까이 있는, 나보다도 더 가까이 계신 자비로운 하느님이십니다. 자비로운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의 선물을 주시고자 자비의 미사잔치에 우리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환대 시간이며 하느님 자비를 체험하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신 하느님의 얼굴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하여 사람 마음 깊이에는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자비로운 얼굴을 찾으라 있는 사람의 얼굴이요 눈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면 보고 싶어하는 얼굴이듯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이렇게 주님과 얼굴을 마주보고 싶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얼굴과 얼굴이 서로 만날 때 진정한 만남입니다. 전례의 궁극목적도 바로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주님과의 살아있는 만남보다 존엄한 품위의 사람이 되는데 중요한 수행은 없습니다. 물질주의가 금전만능주의가 현세주의가 만연된 세상일수록 초월적 차원의 인간의 가치는 날로 중요해질 수뿐이 없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영혼이 살기위해 생명의 하느님을 찾아야 될 때요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성서는 온통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난 이들의 고백 이야기입니다. 진정 사람의 내적 변화는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도 주님과의 만남이 주제입니다. 주님과 만나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 여기입니다. 간음하다 사로잡혀 주님 앞에 있는 여인이나, 예수님과 여인을 에워싸고 있는 군중들 모두는 오늘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죄인인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바리사이들나 율법학자들, 그리고 군중들이 자비로운 사람들이었다면 무자비하게 불쌍한 여인을 사지에 몰아넣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무지에 눈먼이들이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참 좋은 사례입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참 진퇴양난의 질문입니다. 이들에게 결정적으로 결핍된 것은 자비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묵중에 마냥 땅에 무엇을 쓰십니다. 분명 하느님의 지혜를 청하는 침묵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자비는 지혜입니다. 침묵의 지혜입니다. 자비의 침묵에서 샘솟는 천상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그대로 하느님 자비의 얼굴입니다. 오늘 복음도 지난 주 ‘잃었다 찾은 아들의 비유’처럼 현장감 넘치는 감동적인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결정적 승리를 상징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아마 오늘 복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복음의 군중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자비심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일방적 승리가 아닌 예수님도 살고 군중도 살고 간음하다 잡히 여인도 모두 사는 하느님 자비의 승리입니다. 


‘무지의 눈’이 열려 죄인으로서의 자기를 발견한 이들은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고 마침내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무죄한 주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마치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여자입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각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진정 주님을 만난 이들은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하느님 역시 회개한 이들의 과거는 묻지 않고 오늘 지금 여기만 보십니다. 


주님을 만나야 할 자리는 언제나 바로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과거로부터의 해방이요, 내적변화와 치유요, 평화와 기쁨의 선물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주님을 만나지 못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유혹중의 유혹이 과거 서로의 잘못을 추궁함으로 끊임없는 악순환의 어둠 중에 살게하는 유혹입니다. 그러니 이미 하느님이 용서하신 지난 일들은 절대 캐내지 말고 정말 천근의 무게로 자기를 지긋이 누르시기 바랍니다. 


또한 ‘만약 이랬다면 좋았을 걸’ 하며 후회하는 일도 부질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쨌든 하느님은 최선, 최상의 방법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난 바오로의 고백 역시 감동적입니다. 


“나는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가, 예수님과의 깊은 우정이 저절로 과거로부터 이탈하여 초연한 자유의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저절로 분별의 지혜가 되어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들을 갈라냅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영원히 살아남아있는 것은 예수님과의 우정 하나뿐이요, 주님께 갈 때도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주님과의 우정 하나뿐입니다.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날 때 과거로부터의 해방이요 활짝 열리는 미래입니다. 미래가 없다, 희망이 없다하는 이들 순전한 착각입니다. 하느님이 진정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유일한 말이 절망이요, 절망보다 큰 죄도 없습니다. 성서의 사람들, 모두가 희망과 비전, 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하느님만이 이들의 희망이요 비전이요 꿈이었습니다. 이사야도 바오로도 하느님이 그들의 미래이자 꿈이었습니다.


“보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비전의 사람,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 마음의 광야에 ‘생명의 길’을 내고, 내 마음의 사막에 ‘사랑의 강’을 내어 미래를 활짝 열어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말씀입니다. 바오로 역시 주님을 만났기에 하느님 미래를 향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입니다.


“그러나 이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로 바오로 삶의 방향과 삶의 목표가 하느님이심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에 끊임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자비하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우리의 인생여정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자비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라.”(시편126,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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