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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3. 연중 제14주일                                                   이사66,10-14ㄷ 갈라6,14-18 루카10,1-12.17-20


                                                                                축제의 삶


수도영성순례의 김인섭 알렉산델 가이드의 재치와 해박함이, 가고파 여행사 봉사자 김소화데레사 자매님의 친절이 빛납니다. 가이드의 역할이 순례여정의 성패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임을 깨닫습니다. 이를 통해 영적 가이드로서의 수도장상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은연중 깨닫습니다. 가이드가 만든 순례여정 책자를 보니 어제 7.1일(금)의 순례4일째는 ‘사귐의 날’이라 지칭되어 있습니다.


순례여정중 참으로 중요한 것이 함께하는 순례도반들과의 관계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함께하는 도반들과의 관계입니다. 순례도반들과의 우정과 사귐이 깊어지면서 순례여정 또한 행복하고 풍요로워짐을 깨닫습니다. 오늘 연중 제14주일 7.3일 강론 역시 하루 전날 7.2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어제 7.1일의 여정중 몇 깨달음을 나눔으로 시작합니다.


1.독일은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땅이 크고 산이 전무한 편이니 굳이 고층 아파트가 필요없습니다. 어디나 광활한 시야가 탁트인 하늘과 땅이 닿은 광활한 지평선입니다. 어제 오전은 주로 뭰헨 남동부 쪽의 알프스산 기슭 주위의 관광이었습니다. 지리산이 몇 개도에 걸쳐 있는 것처럼 알프스산을 경계로 여러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음을 봅니다. 알프스 산록의 드넓은 경사지는 참으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동화같은 로만틱 가도를 달려 루트비히 2세가 지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잠시 멈추어 주변을 감상했습니다. 루트비히 2세는 참으로 신비의 인물이었다 합니다. 예술가적 감성이 풍부한 190cn 장신의 인물로 평생 성만 짓다가 41세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합니다. 


2.전설같은 신비로운 꿈과 숨을 멎게 하는 성 주변 경관에 순례객들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순례도반들이 2회에 걸쳐 두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숲길을 내려왔습니다. 평생 멍에를 메고 묵묵히 순종하며 마차를 끄는 말에서 온유와 겸손의 주님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야 할 사제직에 대한 묵상도 잠시 했습니다.


3.오후 미사는 독일 뭰헨 남서쪽 70km지점 알프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비스 순례성당에서 봉헌했습니다. 알프산을 배경으로 좌우사방 확트인 초원이 참 장관이었습니다. 좁은 땅, 건물들과 산들 가득한, 전망이 차단된 외적공간의 한국에서도 자기를 비우고 비워 내적공간의 영적시야만은 이처럼 넓었으면 좋겠습니다. 


4.순례의 궁극목적도 내외적시야를 넓히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끊임없이 낮아지고 낮아져, 비워지고 비워져 하늘에 닿은 땅의 지평선이 되어, 주님으로 충만한 지평선의 영성을 사는 것입니다. 18세기 중엽에 세워진 소박한 비스성당에서의 미사도 참 은혜로웠습니다.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이 고마웠습니다. 중세의 화려한 바로코, 로코코, 고틱 미술에 대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5.참으로 희망이 없었던 전쟁의 참화가 계속되던 어려운 시절 가난한 민중이 이 화려하면서도 의미 충만한 성전 내의 아름다운 성예술을 감상하며 낙관적 긍정적 인생관을 회복하여 살 희망과 의욕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의미는 바로 구원입니다. 무수한 구원의 의미들로 가득한 성예술을 감상하며 믿음을 새롭게 충전시켰던 민초들이었습니다.


주로 황금색은 거룩함을, 흰색은 초월을 상징한다 했습니다. 삭막한 닫힌 현실에서 성전내 거룩한 분위기에서 영적 휴식을 취하며 잠시나나 구원의 초월체험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았던 민초들이었습니다. 


화려하고 복잡하다며 바로코-로코고-고틱 예술을 무시無視했던 무지無知를 통절히 깨달았습니다. 위로 마음을 들어올려 하늘로 향하게 하는 높은 첨탑의 고틱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술을 감상할 때는 반드시 시대 배경의 공부가 따라야 함을 봅니다. 미사후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그 유명한 에탈수도원입니다.


6.에탈Ettaldms ‘맹세의 계곡’ ‘약속의 계곡’이라는 뜻으로, 바이에른 황제 루트비히(1314-1347)가 1330년 4월28일에 수도원을 설립해 에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에탈 수도원은 700년의 장구한 역사동안 무수한 시련을 겪었으며, 1762년 고틱양식과 바로코 양식이 혼합된 새 성당이 완공돼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당내부의 깊고 풍부한 성화와 조각은 상상을 초월한 불가사의입니다.


오늘도 30여명의 수도자들은 성 베네딕도의 ‘기도하고 일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고등학교와 김나지움과 출판사, 인쇄소, 농장, 빵집, 맥주와 양주, 공장, 호텔등을 운영하고 있는, 여전히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건재한 수도원입니다. 


7.수도자들의 아름다운 저녁 성무일도에 참여하면서 ‘살아있는 전통과 역사’가 된 수도자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아무리 유서 깊은 유적과 성전 건물이 있어도 살아있는 전통과 역사의 담지자擔持者들인 수도자들이 없다면 참 공허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어제의 ‘찬미의 삶’이란 강론 제목에 이어 오늘 강론 제목은 ‘축제의 삶’으로 정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거룩한 순례여행도 성대한 식사는 필수입니다. 식사때 마다 삶은 축제임을 실감합니다. 여전히 걷는 일정이기에 소화불량의 걱정은 안해도 됩니다. 왼쪽 다리가 불편한 편이지만 치유 은총을 믿으며 겸손의 수련으로 여겨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힘들죠?” 위로의 말을 들을 때 마다 “힘든 것보다 좋은 것이 훨씬 많다.”고 대답합니다.


축제의 삶에 첫째 요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부활축제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의 고백은 그대로 믿은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법칙을 따라 새창조의 부활축제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평화와 자비를 내려주십니다. 바로 순례영성이 목표하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바오로의 다음 말씀도 공감이 갑니다.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바오로뿐 아니라 믿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낙인을 그 몸에 지니고 있으니 서로 위로할 지언정 괴롭히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낙인을 제 몸에 지니고 있지만 하루하루 기쁨과 희망 가득한 부활축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둘째로 주님을 사랑하여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절로 기쁨의 축제의 삶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우리 주님이요 주님의 교회입니다. 다음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고 고무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 지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거룩한 축제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위로를 받아 우리 또한 예루살렘이 되어 이웃에 위로와 평화를 나누며 축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셋째로 비움의 여정에 충실한 삶입니다. 끊임없이 낮아지고 비워지는 겸손의 여정을 통해 수평선의 영성, 지평선의 영성을 지니게 됩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뿐 아니라 겸자무적謙者無敵입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이런 끊임없는 자기비움이 본질적 삶에 충실하게 합니다. 비움은 평화의 충만입니다. 비움에서 샘솟는 평화의 선물, 치유의 기적, 하늘나라의 실현, 축제의 삶입니다. 세상 아무도 이런 축제의 삶을 사는 이들을 해치지 못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닌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전례가 선사하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만을 사랑하며 자기 비움의 겸손의 여정에 항구함으로 기쁨 충만한 축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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