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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9. 연중 제28주일                                                         열왕기하5,14-17 2티모2,8-13 루카17,11-19


                                                                                 주님과의 만남

                                                                                 -만남의 은총-


오늘 주일 강론은 ‘만남’에 대한 묵상입니다. 만남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온통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남의 은총, 만남의 선물, 만남의 기쁨, 만남의 행복 등 끝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늘 새로운 만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복되는 만남도 마음이 새로워져 눈이 열리면 모두가 새로운 만남, 만남의 선물이 됩니다.


어제의 만남도 새로웠습니다. 원주교구 말씀봉사자들 스물 여섯 분과 지도신부, 지도수녀 가각 한 분, 도합 스물 여덟 분이 하루 순례중 여기 요셉수도원에 들렸고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수녀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이 생전 처음 수도원을 방문한다 했습니다. 주로 순례여정인생중 ‘만남의 놀라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기서 여러분과의 만남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놀라운 선물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에 살면서 처음 만나지 않습니까? 만남 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만남도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이어 주로 오늘 강론 주제인 주님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들 역시 모두가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들의 기록입니다. 우리 또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자 이 거룩한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때 위로와 치유, 기쁨과 평화, 정화와 성화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늘 주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을 찾을 때 만납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 찾아야 할 분은 주님입니다. 주님을 찾는 열정은 영성생활의 시발점이자 원동력입니다. 주님을 찾는 열정의 불이 꺼지면 영성생활은 끝입니다. 수도생활 역시 하느님을 찾는 삶이라 정의합니다. 하루 이틀 찾고 끝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매일, 죽는 날까지 새롭게 찾아야 하는 하느님입니다. 우리의 모든 병고의 시련과 상처의 아픔 등 모두가 하느님을 찾으라는 신호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 열명, 제1독서의 시리아 사람 나아만, 모두 나병이 없었다면 주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겸손한 믿음도 지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나병을 통해 주님을 만났으니 나병은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슬람의 신비가이자 시인인 루미의 말입니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길이다.' 상처뿐만이 아니라 병도 빛이, 하느님의 빛이 들어오는 길입니다.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는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만난 열명 나병환자들은 소리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로 우리가 미사가 시작되면서 바치는 자비송이 아닙니까? 새삼 미사의 구조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깨닫습니다. 나병환자처럼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자비송을 바치며 미사를 시작해야 자비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이런 자비송에 바탕을 둔 동방수도자들이 늘 숨쉬듯 끊임없이 바쳐온 기도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이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의 요약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칠 때 자비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둘째, 주님을 만날 때 치유의 구원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을 받기 위해 이 거룩한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열명 나병환자들은 주님을 찾았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 졌다 합니다. 일방적 치유의 기적은 없습니다. 나병환자의 주님을 찾는 간절한 믿음과 주님의 말씀의 은총이 만날 때 비로소 치유의 기적, 치유의 구원입니다.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의 나아만의 치유과정도 은혜롭습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매사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평범한 사물이나 사건도 우리를 치유하는 하느님의 도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역시 나아만의 순종의 믿음과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를 통한 주님의 은총이 만남으로 발생한 치유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치유를 받지 못함은 겸손한 순종의 믿음이 없어 주님의 은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열명의 나병환자를 치유하셨고, 엘리사를 통해 나아만을 치유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만나는 모든 하느님의 사람들, 바로 하느님의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셋째, 주님을 고백하는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성경은 사실언어보다는 거의가 고백언어입니다. 주님께 사랑을, 믿음을, 희망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고백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는 깊어지고 주님 햔한 믿음도 사랑도 희망도 더욱 더 견실해 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는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해 당부하며 믿음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주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감옥은 물론 어디에도 갇혀 있지 않은 하느님의 말씀이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옥중에 있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한한 내적자유를 누리는 대자유인 바오로 사도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주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의 고백입니다. 찬양과 감사의 고백보다 영육의 건강에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영혼의 병의 예방과 치유에 찬양과 감사보다 더좋은 예방제, 치유제도 없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두 장면에 대한 집중적 탐구입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치유받은 열명의 나병환자의 관계요,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와 치유받은 나아만의 관계입니다.


오늘 복음에거 놀라운 사실은 치유받은 한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라는 평범한 묘사가 신선한 충격입니다. 나머지는 신앙 좋다는 유다인이 분명한데 찬양과 감사의 사람은 단 하나 사마리아인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경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어 예수님은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오지 않았단 말이냐?”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 바로 분도회의 모토이자 수도원 정문 바위판에 새겨져 있는 글귀입니다. 아, 정말 치유받은 아홉명의 결정적인 실수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리며 감사해야 온전한 치유의 구원인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은 아홉과 하나중 어느 편에 속하는 지요. 


아홉명은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라 질타하지 마십시오. 나름대로 갈길이 바쁘고 할 일이 많다보니 순간 하느님을 잊은 것입니다. 이래서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라는 시편 말씀을 상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갈길이 바쁘고 할 일이 많아도 잠시 멈추어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영적습관을 지니기기 바랍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께서 미사가 끝나고 파견하실 때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의 고백의 믿음으로 영육의 온전한 치유와 구원을 받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하나였습니다. 


육신의 치유에 찬양과 감사의 믿음이, 고백이 따라야 영육의 전인적 치유와 구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여 끊임없이 찬양과 감사의 공동시편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다음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와 나아만의 헤어지기 전의 장면도 참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엘리사와 나아만입니다.


-나아만;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참 겸손한 고백의 사람 나아만입니다. 진정성 가득 담긴 선물입니다만, 엘리사의 반응이 우리를 참으로 부끄럽게 합니다.


엘리사;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거듭 나아만은 간청합니다만 끝내 거절하는 엘리사의 청렴결백함이 지도자의 귀감입니다. 이어지는 나아만의 소망은 얼마나 소박하고 진실한지, 이 또한 감동입니다.


나아만;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흙을 선물로 받아가겠다는 나아만의 진정성에 분명 엘리사도 감동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 복음의 치유받은 사마리아 한 사람이요, 독서의 치유받은 시리아 사람 나아만입니다. 모두가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겐 화두입니다.-


육신의 나병도 무섭지만 영혼의 나병 역시 무섭습니다. 무지, 나태, 탐욕, 교만, 무의욕, 무기력, 무감각 등이 영혼의 나병입니다. 이런 영혼의 나병으로 인해 일상의 늪에서,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영적 나병환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을 찾아야 만나고, 주님을 만나야 이런 영적 나병도 치유받고 살아납니다. 온전한 영육의 치유와 구원에 하느님 찬양과 감사의 고백은 필수입니다. 바로 연중 제28주일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을 만나 찬양과 감사로 당신께 믿음을 고백하는 우리 모두의 영육의 상처와 질병을 말끔히 치유해 주십니다.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시편34,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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