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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16. 연중 제15주일                                                                    이사55,10-11 로마8,18-23 마태13,1-23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씨뿌리는 사람처럼-



우리는 방금 화답송 후렴을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었도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여러분의 좋은땅 마음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들은 장차 좋은 믿음의 열매, 희망의 열매, 사랑의 열매, 기쁨의 열매, 평화의 열매, 정의의 열매, 온유의 열매, 겸손의 열매, 찬미의 열매, 감사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주옥같은 하늘나라의 비유가 7가지 나옵니다. 오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만 비유의 주제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역시 원래 하늘 나라에 관한 비유였을 것입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농민주일에 걸맞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농민보다는 농부란 호칭이 더 호감이 갑니다. 


농부에 대한 일화도 생각납니다. 약 50년전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 백일장 대회에서 입선된 수필 제목이 농부였습니다. 선생님들의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당시 저희 아버지는 농부가 아니었는데 농부처럼 소개한 것을 알게 되어 당선작이 못되었다는 후일담도 들었습니다.


‘농부란 어감부터 호감이 간다.’로 시작되는 수필의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농부란 호칭은 언제 들어도 호감이 갑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는 예수님 자부심 가득한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농사에 애정이 많으신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농부의 대표적 이미지는 씨뿌리는 모습입니다. 더불어 연상되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감동적인 소설책입니다.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이 상징하는바 농부 하느님이시자 예수님이십니다. 평생 씨뿌리는 과정에 충실하며 씨뿌리는 농부의 자세로 사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사실 농부보다 하느님을 잘 이해하는 이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 농장 수사님도 농사의 80%는 하느님의 지으신다며 하느님의 최고의 농사꾼이라 말했던 기억도 생각납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문득 떠오른 오늘 강론의 주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입니다. 답은 단 하나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처럼’ 살면 됩니다. 씨뿌리는 삶자체가 치유와 구원입니다.  ‘좋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은 결코 땅을,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환경에 개의치 않고 씨뿌리는 삶으로 상징되는 복음 선포의 삶에 항구합니다.


삶은 변화합니다. 한결같이 좋은 땅은 없습니다. 살다보면 길바닥같은 환경도 있고 돌밭같은 환경도 있도 가시덤불 같은 환경도 있고 좋은 땅의 환경도 있습니다. 환경만 그러합니까? 우리 마음밭 또한 한결같기가 힘듭니다. 길바닥같은 마음밭일 때도 있고 돌밭같이 완고한 마음밭일 때도 있고 가시덤불 같은 거칠고 사나운 마음밭일 때도 있고 좋은땅의 마음밭일 때도 있습니다. 하루 중 시간도 다 똑같은 시간이 아니라 다양한 시간들이 펼쳐집니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변화무쌍한 다양한 마음밭을 체험하셨겠는지요.


예수님이야 말로 참 좋은 농부의 전형입니다. 밭의 상태에 좌우되지 않고 평생 끊임없이 씨뿌리는 복음선포의 삶에 항구하셨기 때문입니다. 환경탓, 사람탓, 일탓하면 끝이 없습니다. 탓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입니다. 좋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습니다. 항구히 씨부리는 삶을 사랑합니다좋은 신자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본분에 충실하고 항구합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씨뿌리는 삶에 항구합니다.


씨뿌리는 삶에 항구하다보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놀라운 기적이 발생합니다. 점차 길바닥같은 마음이나 환경도 돌밭같은 마음이나 환경도 가시덤불 밭같은 마음이나 환경도 점차 좋은 밭으로 변하고 놀라운 수확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말씀의 씨앗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씨앗을 받아 들이는 내 마음밭에 있습니다. 


하느님 탓이 아니라 순전히 내탓입니다. 씨뿌리는 삶에 항구할 때 점차 하느님의 은총으로 마음도 환경도 좋은밭으로 변한다는 것이며 실패인생같은 삶도 성공인생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십시오. 실패인생인듯하나 지금도 끊임없는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통해 성공인생이었음이 입증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결론은 ‘절망은 없다.’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바로 씨뿌리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과정의 충실성이지 결과의 성과물이 아닙니다. 결과의 열매는 하느님께 맡기고 하루하루의 과정에 충실하는 자세가 바로 진인사대천명의 씨뿌리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이런 삶자체가 성공이며 숭고한 참 사람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의 자세를 보십니다. 모래위의 인생집이 아니라 주님 반석위에 짓는 인생집입니다. 


지금 하느님의 말씀의 씨앗들이 떨어지는 여러분의 마음밭 상태는 어떻습니까? 길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들입니까 혹은 돌밭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들입니까?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앗들입니까 혹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들입니까?


타고난 좋은땅은 없습니다. 그런때 기다린다해도 결코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땅도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잡초들 우거진 박토로 변합니다. 아무리 좋은 신고 배나무도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돌배나무로 변합니다. 하여 끊임없는 수행생활입니다. 좋은땅의 마음밭때를 기다려 강론 쓰기로 한다면 결코 하나도 쓰지 못할 것입니다. 환경에 개의치 않고 씨뿌리는 삶에 충실함이 성공인생의 지름길입니다. 저 또한 이런 자세로 강론을 씁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씨뿌리는 삶에 충실하고 항구할 때 하느님의 은총으로 내외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안팎의 환경도 좋은땅으로 변화하며 보이지 않는 열매들의 수확도 이뤄집니다. 인생가을에 믿음, 희망, 사랑의 풍성한 수확이 뒤따릅니다. 바로 복음 말씀 그대로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13,23).


바로 우리 수사님들은 이런 씨뿌리는 삶의 자세로 은퇴없이 충실히, 항구히, 평생, 매일,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죽을 때까지 하느님의 일인 성무일도를 바치고 노동을 합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수도원의 모토는 평생 씨뿌리는 삶을 요약합니다. 하여 요셉수도원의 영적 밭도 참 좋은땅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씨뿌리는 삶의 자세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자작 좌우명 애송시 첫 연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30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어떻게 이런 씨뿌리는 삶에 항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덕분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 말씀처럼 하느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씨뿌리는 삶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밥을 먹어야 삽니다. 말씀은 생명과 빛입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55,10-11).


이사야 예언자 역시 이런 하느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씨뿌리는 예언자의 삶에 충실하고 항구했음을 봅니다. 새삼 자연도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인 성경책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이사야 예언자는 자연성경책을 부단히 렉시오 디비나 한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씨뿌리는 삶에 항구할 수 있음은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야 말로 믿는 이들의 궁극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이런 씨뿌리는 삶의 모범이 제2독서 로마서의 주인공 바오로 사도입니다.


“형제 여러분,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8,18-19, 22-23)


이런 원대한 하느님의 시야와 희망이 우리를 배절불굴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씨뿌리는 삶에 항구하게 합니다. 왜 로마서 8.23절로 끝맺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8.24-25절 말씀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8.24-25).


이런 희망이 있어 우리 모두 씨뿌리는 삶에 자발적 기쁨으로 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농부이십니다. 아버지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 역시 참 좋은 농부이십니다. 농사는 1년이지만 우리 삶의 농사는 평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좋은땅의 마음밭을 만들어 주시고 하루하루 씨뿌리는 삶에 충실함으로 성공적 ‘삶의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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