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3. 연중 제22주일                                                                           예레20,7-9 로마12,1-2 마태16,21-27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자기 버리기, 제 십자가 지기, 예수님 따르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지금부터 25년전인 1992년 1월 왜관수도원에서 종신서원식때 최초로 한 강론 제목이지만 그 이후로도 자주 택했던 강론 제목입니다. 이와 비슷한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를 강론 제목으로 택했던 적도 있고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를 강론 제목으로 택했던 적도 여러번 있습니다. 모두가 절박한 심정의 근본적 질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0년전 출간한 제 졸서의 책명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찾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어 출간된 책 제목이 우연의 일치처럼 답을 주고 있습니다. ‘둥근 마음, 둥근 삶’ 책 제목처럼, 모나지 않고 둥근 마음, 둥근 사랑으로 둥글게, 원만圓滿하게 살면 됩니다. 또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책 제목처럼 사랑으로 살면됩니다. 사랑밖엔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출간한다면 책명은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 자작시로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루하루 살았습니다’가 정답입니다. 하루하루 살면 됩니다. 하루하루 살 때 환상은 걷혀 단순투명한 본질적 삶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과거의 어제도 미래의 내일도 아닌 현재의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과거의 상처에 아파할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할 것도 없고 오늘 지금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행복은 선택이자 발견입니다. 언젠가가 아닌 오늘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할 행복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가 고백성사 보속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말씀의 처방전이 답을 줍니다. 저는 어렵고 힘들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추스르라고 역으로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써드립니다. 내적으로 무너지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놔버리고 싶은 유혹이 들 때 마다 즉시 붙잡고 일어나야 할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이왕 죽지 않고 살 바에야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지혜롭게 잘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루하루 살면 됩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살면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구체적으로 답을 줍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마다 죽는 날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첫주일에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나를 버리고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삼박자三拍子(버리기-지기-따르기) 구원의 삶입니다. 구원의 길은, 생명의 길은, 진리의 길은, 인간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세 측면에 걸쳐 구체적으로 삶의 방법을 나눕니다.


첫째, 자기를 버리십시오.

우리 삶은 버림의 여정, 비움의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매사의 어려움을 버림의 수련, 비움의 수련으로 삼아 살아갈 때 겸손이요 점차 주님을 닮아갑니다. 일상의 온갖 고통과 어려움도 자기를 버리는 계기로 삼을 때 주님을 체험하며 내적성장에 성숙입니다. 


무엇보다 평상시 주님 말씀에 대한 사랑의 습관화가 중요합니다.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의 고통이 참으로 처절합니다. 예언자는 분명 이 고통을 자기 버림의 계기로 삼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고 답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답을 찾은 예레미야입니다. 이 또한 진솔한 기도요 우리 성소의 비밀을 보여줍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 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을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의 운명입니다. 모든 성소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치열한 내적투쟁의 모습입니다. 이런 고통을 그대로 감당하면 치명적 내상內傷으로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자기 버림의 계기로 삼아 주님을 만나 다시 살아 일어납니다. 바로 이것이 성소의 진면목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을 만나 삶의 의미를 찾으면 삽니다. 다음 예레미야의 고백이 감동입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예레미야뿐 아니라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주님은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입니다. 우리 심장 속에서 샘솟는 주님 말씀이, 주님 열정의 사랑이 온갖 시련중에도 자발적 기쁨으로 주님을 따라 백절불굴의 순교적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둘째, 제 십자가를 지십시오.

주님의 십자가도 남의 십자가도 아닌 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릴수록 주님과의 사랑도 깊어집니다. 버림의 겸손의 빈자리에 가득 채워지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 깊이에서 샘솟는 사랑의 힘이 제 십자가를 자발적 기쁨으로 지게 합니다.


삶은 짐입니까 혹은 선물입니까? 자주 신자분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짐입니까 혹은 선물입니까? 선물입니다. 사랑의 선물입니다. 제 십자가를 억지로 찾아서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찾기 전에 이미 운명처럼 주어진 내 운명의 십자가, 책임의 십자가입니다. 


제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제 십자가입니다. 내려 놓을 수도 없는, 누가 대신 저 줄 수도 없는, 피할 수도 없는 내 고유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가볍게 해 달라 기도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랑의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각자의 십자가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제 십자가의 열쇠가 아니면 천국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내 운명의 십자가, 내 책임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요, 끝까지 제 삶의 자리에서 책임적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순교의 삶입니다. 뿌리없이는 꽃도 없듯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없이는 영광의 부활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없는 부활의 영광은 헛된 꿈의 환상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방향입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의 방향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표이신 주님을 향한 방향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이자 생명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이자 진리입니다. 주님 없이는 구원도 생명도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뿐입니다.


버리고 떠나기가 능사가 아닙니다. 버리고 떠나 예수님을 따라야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세상 우상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구원의 첩경의 지름길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진정 생명의 길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뿐임을 깨닫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탈선했을 때 주님의 즉각적인 질책이 뒤따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졸지에 사탄이 됐습니다. 바위같은 디딤돌의 베드로가 걸림돌이 되었으니 이 또한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예수님을 뒤따르는 일이 바로 하느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뒤따라야 할 베드로가 예수님의 앞을 가리는 순간 졸지에 사탄이,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내게서 물러가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내 뒤로 물러가 제자리에 있으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살면 됩니다. 혼자 가는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함께 가는 십자가 여정의 도반들이 서로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바로 이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행위이자 합당한 예배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십자가의 길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주시며 간곡한 당부 말씀을 주십니다. 각자 주어진 십자가의 길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주님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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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녜스 2017.09.03 10:36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없이는 영광의 부활도 없음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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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사랑 2017.09.05 13:5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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