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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4. 연중 제5주일                                                           욥기7,1-4.6-7 1코린9,16-19.22-23 마르1,29-39



주님과의 만남이 답이다

-만남의 축복-



오늘 화답송 후렴이 참 은혜롭습니다. 하루 끊임없는 기도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 주님을 찬양할 때 치유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서진 마음들을 낫게하시고자 이 거룩한 미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입춘이니 봄같이 따뜻하신 주님 찾아 오시는 느낌입니다.


"하느님 찬양하라. 부서진 마음들을 낫게 하시도다."


참 재미있습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제 강론 중 가장 많은 제목을 차지하는 것이 ‘---답이다’라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답이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예수님이 답이다’, ‘기도가 답이다’, ‘사랑이 답이다’, ‘회개가 답이다’ ‘믿음이 답이다’ 등 끝이 없습니다. 지난 봉헌축일 강론 제목은 ‘봉헌이 답이다’ 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새삼스런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인생에 답은 무수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답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하느님이 답이다’안에 다 포함됩니다. 결국은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답은 무수히 많은 듯 해도 답은 하나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2월4일 주님 봉헌 축일 날 미사전 ‘초 축복과 행렬’ 전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변을 환히 밝히는 ‘봉헌초’가 얼마나 우리 ‘봉헌자’의 신원을 잘 알려주는 상징인지 새롭게 깨달은 날입니다. 하여 이날 강론의 서두는 미사후 다시 첨부했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 아침미사전 ‘초 축복과 행렬’ 예식중 성전을 환히 밝히는 신자들의 봉헌초들이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 하나하나 자리마다 주변을 환히 밝히는 ‘새 봉헌초’가 참으로 우리 ‘봉헌자’의 신원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줌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주변을 환히 밝히면서 사라져가는 ‘봉헌초’같은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하고 감동적이겠는지요. 비단 하루로 끝나는 주님 봉헌 축일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우리 봉헌 축일’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이날 제 강론 원고를 보면 봉헌이 답임을 길게 나열한 문장이 있습니다.


‘봉헌의 사랑, 봉헌의 감동, 봉헌의 지혜, 봉헌의 기쁨, 봉헌의 축복, 봉헌의 행복, 봉헌의 치유, 봉헌의 평화, 봉헌의 자유, 봉헌의 아름다움 등 끝이 없습니다. 봉헌은 우리 삶의 의미이며 모두라 할 수 있습니다. 허무에 대한 답도 봉헌뿐임을 깨닫습니다. 봉헌생활 기쁨의 빛이 허무와 무의미,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봉헌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흡사 매 주일이 주님 봉헌 축일이자 우리 봉헌 축일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강론 제목 역시 ‘주님과의 만남이 답이다-만남의 축복-’입니다. 정말 봉헌 못지 않게 주님과의 만남이 답임을 절감합니다. 만남의 선물, 만남의 행복, 만남의 기쁨, 만남의 평화, 만남의 치유 등 끝이 없습니다. 봉헌대신 만남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삶은 만남이다’ 할 정도로 무수한 만남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입니다. 


저에겐 어제 40년전 6학년 때, 18명 제자들과의 만남이 참으로 큰 기쁨의 선물이었습니다. 요즘 설레는 기쁨으로 만남을 갖기는 처음입니다. 만남도 선물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좋은 만남들은 모두가 주님의 참 좋은 선물들입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에 속한다는 데 제자들 자랑도 팔불출에 속한대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어제는 제자들 만나기에 앞서 1977.3월-1978.2.9.일 졸업식날 까지 대학노트 네권의 일기장도 읽어봤습니다. 만40년전 1978년 2월 9일 졸업식날 일기중 처음 부분입니다.


‘졸업식! 4:30분에 기상, 1시간 동안 아이들 위해 기도하고 1년간 무사했음을 감사하다. 마지막 이야기 시간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못함이 안타까웠다.---내리는 눈 맞으며 졸업식, 졸업식 노래 부를 때는 눈물이 나왔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제자들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깊어질 것이다.’


어제 40년 후 2018년 2월3일 제자들의 성의 표시의 선물과 함께 받은 편지글에도 행복했습니다.


-선생님, 칠순을 맞이하여 선생님과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적같은 일인 것 같아요. 건강이 계셔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저희들 작은 정성 모아 선생님께 드립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뵐 수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팔순때도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영광을 주세요. 선생님, 울 친구들 모두 칠순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신림초 제자 일동*-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불러준 스승의 노래는 눈물나도록 고맙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만남 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정말 주님과의 만남이 답입니다.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인 이 거룩한 미사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제자들과의 만남이 이처럼 행복했다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사랑했던 이들과의 만남은 얼마나 행복하겠는지요. 수없이 강론에 인용했던 세기중 수도형제와의 대화중 있었던 예화가 있습니다. 


“그 공동체에 모든 것이 다 있었는 데 하나가 없었어요.”

“그 하나가 무엇이던가요?”

“기쁨이었습니다. 다 있는 데 기쁨이 없었습니다.”


정말 다 있는데 기쁨이 없다면 행복도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다 있는데 ‘평화’가 없다면, ‘희망’이 없다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기쁨, 평화, 희망 없는 곳이 지옥일 것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부자는 기쁨, 평화, 희망이라는 세 보물을 지닌 자들일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과 만날 때 참 좋은 선물이 기쁨, 평화, 희망입니다. 세상에 돈 주고 살 수도 없고 훔쳐올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기쁨, 참평화, 참희망의 선물입니다. 바로 주님을 만나 이 선물들을 받기 위해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우리 예수님의 하루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복음 장면이 기쁨의 잔치를 연상케 합니다. 주님과 만날 때 고해인생은 축제인생으로 바뀝니다. 마침 어느 유명 정치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현장에 답이 있고, 아픈 곳이 중심이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입증됩니다. 고통의 현장에서 치유의 구원의 ‘답’을 찾아내는 주님이시요, ‘아픈 곳’의 중심에 가셔서 아픈 이들에게 치유와 자유의 구원을 선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대통령이 큰 사건이 날 때마다 아픈 곳의 현장을 찾아 나서는 일은 아주 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아픈 곳의 중심, 바로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주님과 만날 때 놀라운 치유의 기적에 자유롭고 온전한 삶으로의 회복입니다. 마치 주님의 빛 앞에 사라지는 온갖 어둠의 세력들 같습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텃치하고 주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텃치하면서 이뤄지는 치유요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그대로 미사은총입니다.


이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주님을 만납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활동의 원천은 기도를 통한 아버지와의 만남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활동의 중심에 관상의 샘인 기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예수님의 관상의 샘, 외딴 곳의 기도처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여러분도 필히 외딴곳의 기도처를 꼭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살기위해 외딴곳의 기도처는 필수가 된 세상입니다. 기도해야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주님은 기도를 통해 활력을 얻고 사명감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 온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 신원을, 내 사명을 새롭게 깨닫고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주님과 만나는 외딴곳의 기도처입니다. 세상의 변두리 같아도 역설적으로 세상의 보이지 않는 중심이 된 외딴 곳입니다. 그러니 외딴 곳이 없는 사람은 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 거룩한 성전이 세상의 중심, 외딴 곳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났기에 이런 확신에 넘친 복음 선포의 사명에 대한 감동적 고백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이 종이 되었습니다.---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주님을 만날 때 ‘종의 자유인’이라는 기막힌 역설의 진리가 성립합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이 각오와 열망은 순전히 기도를 통해 하느님 주신 깨달음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천국이고 주님을 떠나 있으면 지옥입니다. 


극심한 병고중에 탄식하는 욥의 절망적 상황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흡사 코헬렛의 인생 허무에 대한 탄식처럼 들리는 오늘 욥기 말씀입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그렇게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 구려.”


이렇게 병고나 세상 어려움에 절망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그러나 욥은 결코 절망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습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영혼은 하나 다치지도 망가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밤하늘 별처럼 빛났습니다. 기도의 끈, 희망의 끈, 하느님의 끈을 붙잡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절망이, 하느님의 끈, 희망의 끈, 기도의 끈을 놓는 게 죄입니다. 바로 이런 위기가 기도하여 주님을 만나야 할 순간입니다. 욥기 7장7절에서 21절까지 계속되는 욥의 탄원 기도입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저를 보지 못하고 당신의 눈이 저를 찾는다 하여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답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납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고통의 어둔 터널을 통과합니다. 사람마다 통과기간은 다 달라도 분명한 것은 때가 되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여 욥처럼 해핀엔드로 끝나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을 만난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구원과 더불어 참 좋은 기쁨과 평화, 희망을 가득 선사하시어, 우리 모두 온유하고 겸손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 평화로이 가서 주님을 찬양하며 복음 선포의 삶을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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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2018.02.04 09:00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것이 답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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