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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29.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사도9,26-31 1요한3,18-24 요한15,1-8



참 아름다운 공동체의 삶

-기도, 사랑, 영광-



참 아름다운 계절, 부활시기 봄입니다. 계속되는 ‘알렐루야!’ 주님 부활 축제 시기입니다. 주님 부활을 경축하든 봄꽃들이 지니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색깔로 한다면 신록의 기쁨일 것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우리는 부활시기 아침마다 위 초대송 후렴의 하느님 찬미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주님 계시기에 살 맛나는 인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맛, 무슨 재미, 무슨 기쁨으로 이 광야 인생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큰 모임에서 나의 찬미도 주께로서 오도다.”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처럼 큰 모임 미사전례에서 주님으로 인해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찬미하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아름다운 분 예수님을 만나러 이 거룩한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4월19일 창립 125주년을 맞은 베네딕도회 총연합 회원들을 만나 “바쁘고 산만한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평화와 침묵의 오아시스를 제공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교황님 말씀대로 주님은 오늘 부활 제5주일 참 생명을 주는 수도원 오아시스 미사전례에 여러분을 초대해 주셨습니다. 


또 오늘 4월29일은 한국교회가 정한 이민의 날이기도 합니다.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2017년 12월 기준 약218만명이라 합니다. 인구대비 4.2% 수준이지만 앞으로 다문화사회의 확장속도는 무척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세계이민의 날(1월14일) 기념미사강론에서 “이방인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이 공포감이 이방인에 대한 환대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민과 난민들과 어떻게 함께 좋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지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참 아름다운 공동체의 삶'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계속 참 좋은 공동체로 성장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하늘나라 유토피아 공동체의 실현은 바로 하느님의 유일한 꿈이자 소원이기도 합니다. 하여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부활시키시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몸, 한 마음 공동체를 살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거룩한 미사전례에 참석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바로 이런 참포도나무 예수님 공동체를 가꾸시는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예외없이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 살아있는 가지들입니다. 아름다운 신록의 나무들만 봐도 이런 공동체의 이치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땅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에 붙어있기에 가지 마다 신록의 아름다운 나뭇잎들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신록의 영혼으로, 신록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음은 예수님 나무에 붙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 신록의 아름다운 영혼으로 살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신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떠난 개인은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참 좋은 공동체 삶을 살기 위한 세가지 처방을 주십니다. 이대로 실천하면 우리는 참 아름답고 좋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습니다.


첫째, 늘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삶입니다.

기도는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개인은 물로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무나 자명한 말씀입니다. 주님께 붙어 연결되면 살고 끊어지면 죽습니다. 언제나 주님 안에 머무르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요 회개입니다. 기도와 회개를 통해 주님과의 일치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똑같은 공동체 안에 머물러도 주님과 관계의 깊이는 다 다릅니다. 개인의 문제를 공동체가 다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공동체 안에 머물러도 주님과의 일치의 관계를 깊이하기 위해 각자 평소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는 기도는 필수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 안에 머무르기에 주님과 무관한 삶, 헛된 노고의 삶입니다. 언제나 주님 안에 정주할 때 안정과 평화요 활력넘치는 삶입니다. 그러나 막연히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삶이 아닙니다. 이렇게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여 함께 기도하고 나눌 때 비로소 주님 안에 머무르는 공동체의 실현입니다. 


하여 공동체 형성에 어떤 형태로든, 비록 둘 셋이라도 ‘함께, 매일, 평생,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기도와 말씀공부의 구체적 수행을 습관화함이 절대적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에게 주님 안에 머무르는 끊임없는 공동체 수련의 실습장소는 바로 이 거룩한 성전입니다. 


둘째, 늘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사랑의 관상은 사랑의 실천으로 표현됩니다. 관상의 진가는 사랑 실천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요한 사도의 말씀이 참 적절합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없이 용기를 내어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보다 크신, 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이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다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그분 안에 머무르고 주님께서도 그분 안에 머무시니 제1독서의 바르나바 사도가 그 모범입니다. 위기에 처한 사울에 대한 바르나바 사도의 사랑의 배려가 참 기민하고 지혜롭습니다. ‘격려의 아들’이란 이름 뜻대로의 바르나바입니다. 말과 혀로의 사랑이 아니라 온몸과 온마음을 투신한 바르나바의 사랑의 배려, 사랑의 실천이 바오로를 살렸습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바르나바처럼 주님과 깊이 하나로 결속되어 있아야 이런 지칠줄 모르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셋째, 늘 아버지께 영광드리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우리 인생의 궁극 목표입니다. 무엇을 하든 판단의 잣대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이, 참으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드리는 삶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은 그대로 우리의 기쁨이요 구원입니다. 우리의 영적 굶주림과 목마름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하느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찬미하는 삶입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 바로 수도원 정문 입구 큰 바위판에 새겨진 우리 분도회의 모토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말미 말씀도 우리 공동체의 최종 목표는 아버지의 영광임을 깨닫게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노심초사, 예수님께도 최종 관심사는 아버지의 영광이었음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이 내안에 머무르는 상호내주의 일치 상태라면 그대로 우리의 청은 하느님의 뜻과 일치되니 우리의 청은 다 이뤄질 수 뿐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필생과제는 주님과 상호내주의 일치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상호내주의 일치에서 우리는 주님의 자랑스런 제자가 되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들을 산출함으로 아버지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신 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참으로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은총이자 숙제라는 사실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상호내주의 일치 없이는 헛되고 허무한, 영원히 반쪽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물음이라면 예수님은 답입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나를 압니다. 예수님 공부가 하느님 공부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면 나도 모릅니다. 평생을 살아도 예수님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삶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할까요. 예수님을 알고 하느님을 알아 참나를 살라고 유일무이한 선물로 주어진 인생입니다. 평생 마음에 담고 삼아야 할 예수님의 다음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이런 예수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우리는 영원히 반쪽일 수 뿐이 없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 반쪽으로 살다가 반쪽으로 죽는다면 너무 억울하고 허망합니다. 예수님과 일치할 때 비로소 온전한 참 인간의 실현입니다. 반쪽을 묵상하다가 선물같이 떠오른 예화입니다.


지난 4월27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한반도에 베풀어 주신 선물이 놀랍습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반쪽인 북한과 반쪽인 남한이 하나되는 통일을 이뤄주셨기 때문입니다. 두 정상이 다정하게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한 소감이 재미있어 인용합니다.


“김정은이가 문재인 옆에 있으니 너무 착해 보인다.”

“김정은이가 문재인의 보디가드같다.”


최고 존엄인 북지도자에 대한 호감과 선의, 애정이 담긴 유우머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반쪽과 반쪽이 만나 언젠가 한쪽의 통일이 실현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니 이미 정전停戰을 상징하는 1953년생 소나무의 기념식수에서 이미 반쪽과 반쪽의 남북한이 만나 한쪽이 되는 기적도 발생했습니다. 그 묘사를 읽어 드립니다.


‘소나무앞에는 한라산 흙과 백두산 흙, 한강물과 대동감 물이 놓여 있었다. 두 정상은 흰 장갑을 끼고 각자 삽을 잡았다. 문대통령은 백두산 흙을, 김위원장은 한라산 흙을 삽에 퍼서 나무에 세차례 뿌렸다. 문대통령은 평양 대동강 물을, 김위원장은 서울 한강물을 나무에 뿌렸다. “합토합수合土合水”를 통해 남북의 통일을 기원한 것이다.’


얼마나 기발한 눈물나도록 감동적인 장면인지요. 1953년 정전停戰후 만67년,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2018년 종전終戰을 상징하는 통일의 소나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비롯한 전국민들이 기도하고 염원한 결과 평화의 열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영광', '한민족에게 평화'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흡사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례 장면같습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도 기뻐 웃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과의 일치로 온전한 한쪽이 되게 하시고 당신을 닮아 늘 신록의 생명, 신록의 사랑, 신록의 기쁨, 신록의 영혼으로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 ?
    안젤로 2018.04.29 08:08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나무로 부터 양분없이는 살수 없듯이 저희도
    주님의 말씀으로만
    살수있다는것을
    항상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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