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3.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탈출24,3-8 히브9,11-15 마르14,12-16.22-26



밥이 하늘입니다

-밥으로 오시는 하느님-



어제 저는 주님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앞서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37년전 지금은 51세가 된 초등학교 세명의 여제자들이 옛 선생님인 저를 찾은 것입니다. 셋 모두가 주님의 성체성혈의 딸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참 충실히 하느님을 믿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제가 아이들 가르칠 때 매일매일 써놨던 일기장도 공개하여 읽으며 깊은 사랑의 친교도 나눴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오늘 새벽성무일도 초대송 후렴으로 주님의 성체 성혈 대축일 하루를 기분좋게 활짝 열었습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 그리스도께, 어서 와 조배드리세.”-


방금 부른 성체송가에 앞서 화답송 후렴 역시 얼마나 은혜로웠는지요.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하느님 사랑이 감격스럽습니다. 6월 전례력을 펼치는 순간 큰 글자가 반갑게 눈에 와 닿았습니다. ‘예수 성심 성월’, 참 아름답고 거룩한 6월 예수성심성월입니다. 마침 어제부터 우리는 북미회담전날 까지 매일 미사후에는 성공적 회담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매일미사192쪽)를 바칩니다. 


오늘 6월 예수 성심 성월의 첫주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을 대축일을 통해 결정적으로 계시되고 있습니다. 성체성혈 대축일 하면 떠오르는 시가있습니다. 저 김지하 시인의 ‘밥’이라는 불후不朽의 시입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이보다 성체성사의 핵심을 잘 집어낸 시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착안한 오늘 강론 제목은 ‘밥이 하늘입니다-밥으로 오시는 하느님’입니다. ‘밥으로 오시는 하느님’은 이미 제가 부제때 29년전 1989년 5월 28일, 성체성혈대축일에 여기 요셉수도원에서 한 강론제목이기도 합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밥은 함께 먹어야 합니다. 밥을 함께 먹는 시간은 함께 하늘을 모심으로 모두 하늘이 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바로 성체의 밥을 모심으로 하늘이, 하느님이 되어 살고자 우리 모두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단식하겠다는 저를 극구 말린 초등학교 동창생의 충고도 생각납니다.


“야, 무슨 단식이냐, 이제 우리 나이는 ‘밥심’으로 살 때인데---”


밥심이란 투박한 순수한 우리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느 양로원의 노선배사제의 ‘노인네들 낙이라곤 미사뿐인데 노인네들 놔두고 어디 휴가갈 수 있느냐?’는  말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성체신심이 깊은 이들은 나이들어갈수록 성체의 밥심으로. 하느님 맛으로, 하느님 힘으로 살아가기에 미사를 그리도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입니다. 


어제 한겨레 신문에서 읽은 일본의 <고독한 미식가>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 인터뷰 내용중 흥미로운 대목을 소개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맛집의 기준은?

“나는 맛이 목적은 아니다.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식당이 좋다. 음식은 맛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본다. 한 번 가고 나서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 좋다. 나에게 맛은 두 번째다. 그 식당에 작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대로 거룩한 미사가 거행되는 성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음식은 맛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성체성혈의 거룩한 음식은 맛이 아니라 예수님의 온 생애를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식당에 작은 이야기가 있어야 좋은 식당이듯 예수님의 작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배어있는 성당이 좋은 식당입니다. 


세 용도가 겹쳐지는 성전이 참 재미있습니다. 1.성체의 밥을 나누는 식당, 2.거룩한 미사성제가 봉헌되는 성당, 3.끊임없이 찬미가 울려퍼지는 노래방인 성전입니다. 말 그대로 여기 제대는 밥상이 됩니다. 작은 제대를 쓰다 큰 제대로 바뀌었을 때 순간 터져 나왔던 ‘아 밥상커서 참 좋다’라고 말마디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구스미 마사유키의 또 하나의 인터뷰 내용도 생각납니다.


-당신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재미다. 재미. 사람들은 보통 위대하고 감동적이며 슬픈 것들은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반면, 재밌다고 하면 수준이 낮은 것으로 인식한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재미 자체가 인간을 위로하기도 한다. ‘먹는 재미’, 그 자체가 사람을 위로할 때도 있다.”


삶의 목적은 재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 재미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미사 재미를 맛들여야 합니다. 미사맛보다 더 좋은 맛은 없기 때문입니다. 미사에는 예수님의 작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성체성사를 사랑합니다.


성체성사의 구조는 얼마나 풍요롭고 은혜로운지요. 성찬전례에 앞서 예수님의 작은 이야기들을 경청하는 말씀의 전례가 있습니다. 작은 이야기가 있는 식당이 좋은 식당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작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없으면 성체성혈의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말씀의 맛이 좋아야 더불어 성체성혈도 제 맛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의 예언직도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탈출기의 서두 부문은 미사전례중 말씀의 전례에 해당됩니다. 모세가 회중의 백성에게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자 온 백성은 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대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로 답하지만 속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다는 각오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참으로 말씀을 실행함으로 하느님 이야기를, 예수님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만들어야 주님의 성체성혈을 제대로 맛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로 말씀을 선포하신후 이어 대제관이 되어 성찬전례를 거행하십니다. 오늘 히브리서가 대제관이신 주님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탈출기의 계약의 피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겼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바로 이런 대제관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제를 통해 이 거룩한 성찬전례를 집전하십니다.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가, 성혈이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며, 살아 계신 하느님을 충실히 섬길 수 있게 합니다.


대제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재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우리들을 속량하시려고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새 계약의 중재자이자 대제관이신 주님께서 집전하시는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새삼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는 성체성사의 축복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축복의 절정은 생명의 빵인 성체와 성혈을 모실 때 절정에 도달합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말그대로 성체와 성혈의 밥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모심으로 우리 모두 하늘이 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중 파스카 음식인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대목입니다. 하느님 자기비움의 겸손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통째로 자기를 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시고,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성체와 성혈을 나누어 주십니다. 단연 눈에 띄는 찬미와 감사와 말마디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제사요 음식입니다.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을 모심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된, 하늘이 된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 알려줍니다. 


바로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감사의 양날개를 달고 하느님 창공을 나는 영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이 우리가 사는 참맛이요 참재미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맛으로, 찬미와 감사의 재미로 사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밥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모심으로 인한 은혜입니다.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사랑의 선물이 이 거룩한 성체성사입니다. 하느님의 깊이는, 예수님의 깊이는 미사의 깊이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가 성체성사입니다. 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미사를 사랑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는 성체성사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1.예수님의 최후만찬과 죽음을 상기하고, 2.부활하여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3.재림하실 주님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러니 미사는 어제의 예수님을 되새기는 회상제回想祭요, 오늘의 그리스도를 섬기는 현존제現存祭며, 내일의 주님을 기다리는 희망제希望祭인 것입니다. 


성전은 성당이자 식당이요 노래방입니다. 성당의 제대에서 미사성제를 봉헌하고, 식당의 식탁에서 성체성혈의 밥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모시고, 노래방에서 끊임없이 찬미감사가를 부르는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밥으로 오시는 주님은 우리 모두 당신 사랑을 닮아 이웃의 밥이 되어 살라 하십니다. 이웃의 밥이 될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하늘로 살 것입니다. 지혜서의 다음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은 백성들을 천사들의 양식으로 먹여 살리셨습니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고 기쁨을 주는 빵이었습니다."(지혜16,20). 아멘.

  • ?
    안젤로 2018.06.03 08:34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미사를 통해
    사랑의 밥을 주시듯
    저희도 주님을 닮아 모든이들에게 사랑의 밥을 나누어 줄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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