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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1.연중 제32주일                                                             1열왕17,10-16 히브9,24-28 마르12,38-44

 

 

회개의 표징

-가난한 과부, 주님의 마음-

 

 

어제도 여러분들을 만났습니다. 어려움의 양상만 다를뿐 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만나면서 말의 한계를 느낍니다.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모두 다 저에게는 회개의 표징처럼 느껴지는 분들입니다. 어느 원로신부님의 인터뷰 마지막 진솔한 대목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기가 있는 데 교회는 왜 위기인가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아무도 못 내리고 있다. 아직 사제나 목사들이 사는 데 경제적 지장을 받지 않아서 성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삶의 환경이 의식을 결정합니다. 안락한 환경 중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으면 삶의 절박성도 없습니다. 삶의 간절함, 절실함이 없는 말이나 기도는 공허하기 십중팔구입니다. 아무리 믿음을 강조해도 의식주가 심히 불안하거나 죽음을 목전에 둔 중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는 참 무력하고 무의미하게 생각됩니다. 엊그제의 아픈 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죽음을 준비해야 되는 데 잘 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항암치료도 중단했습니다.”

 

수도원에 재차 피정 온 얼굴도 눈빛도 어둠 가득한 암말기 병고를 겪는 자매의 고백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관점의 전환이, 도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보고 배워 회개해야 합니다. 모두가 우리가 도전이 되는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어제 수도형제의 배려로 집무실에 적절한 의자를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도반과 주고 받은 문답도 생각납니다.

 

“너무 안락하여 삶에 도전이 없어서 안되는 데요?”

덕담같은 말에 저도 덕담으로 대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도전입니다.”

 

대답하고 정말 만족했습니다. 저절로 나온 답변인데 이보다 더 좋은 대답도 없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도전입니다! 부단히 하루하루 자신을 겸손히 성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매일 미사도, 말씀도 도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말씀도 회개의 표징이자 도전입니다. 

 

오늘 복음의 위치와 예수님의 처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결코 온실같은 안락한 처지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계시며 머지 않아 십자가의 죽음도 예감하고 계십니다. 적대자들과의 무수한 논쟁도 겪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지 않는 다음 이어지는 주제가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다’라는 주제하에 내용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삶 전체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세 부류의 사람들이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율법학자들과 성전에서 큰 돈을 넣는 부자들과 생활비 전체를 봉헌하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율법학자들같은 삶은 아닌지요? 생활비 걱정할 것 없는 종교 기득권층에 속하는 순전히 외부지향적 허영과 교만의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삶이 지극히 천박하고 깊이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들에 대한 마지막 묘사입니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혹시 이런 성직자들은 없는가 살펴보게 됩니다. 책임이 큰 만큼 주님의 단죄도 엄중할 것입니다. 다음 묘사를 통해서 부자와 가난한 과부의 봉헌 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다,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는 이렇게 주님이 보시리라곤 꿈에도 상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가 바치는 등불 하나가 부자가 정성 없이 바치는 등불 만 개보다 훨씬 가치있다는 불교의 빈자일등貧者一燈 이야기와 흡사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야기입니다. 똑같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이처럼 보십니다. 바로 성당 제대 뒤 벽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이를 상징합니다. 모두를 봉헌한 과부처럼 자신의 모두를 봉헌하신 대사제 예수님이십니다. 가난한 과부는 물론 히브리서에 묘사되는 대사제 그리스도 예수님도 우리의 영원한 회개의 표징입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예수님은 충격적 감동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한편 생활비 전부를 봉헌한 가난한 과부의 처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봉헌되는 헌금의 용도도 심각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양심있는 성전 사제라면 이런 가난한 이들의 봉헌금을 함부로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바로 성전에서의 헌금이야기에 이어 나오는 성전 파괴 예고입니다. 

 

가난한 과부들의 헌금 같은 가난한 이들의 피땀으로 이뤄진 화려한 성전에 여유만만한 성직자들의 삶이라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로 이들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당신 자신을 바치신 대사제 예수님이시며 부와 권력과 명예에 유혹된 성직자들에게는 영원히 살아 있는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이미 앞서 예루살렘 입성 직후 성전 정화 사건(마르11,15-19)을 묵상함이 좋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 후, 오늘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이어지는 성전 파괴 예고입니다. 장엄한 성전 건물들을 보고 놀라는 한 제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것이다.”

 

성당 건물 외형과 내부 장식에 과도한 관심과 재력을 쏟는 사제들이 있다면 이들에 대한 경고말씀처럼 들립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성전 정화 사건 중 요한 복음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9)

 

외형의 건물 성전과 더불어 예수님의 몸으로서의 공동체의 성전을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진짜 성전은 자신의 전부를 봉헌함으로 주님과 일치를 이룬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같은 사람들의 교회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서 참 교회 공동체의 원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곤궁한 처지의 엘리야 예언자는 예수님의 예표처럼 생각되고 사렙타 과부의 절대적 봉헌의 신심은 그대로 복음의 가난한 과부를 닮았습니다. 참으로 가난한 과부들 같은 가난한 자들의 전적 봉헌의 순수한 마음들이 교회의 참 보물임을 깨닫습니다. 또 이들은 우리 모두의 영원히 빛나는 회개의 표징들이 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바로 이들을 향한 주님의 행복선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복음의 가난한 과부처럼 전적 봉헌의 가난과 겸손, 순수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참으로 하루하루 삶 전부를 봉헌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가난한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화답송 후렴 하느님 찬양입니다.

 

“내 영혼아 하느님 찬양하라,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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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8.11.11 10:14
    주님. 저희가 부단히 하루하루 자신을 겸손히 성찰하여 가난과 겸손, 순수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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