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8.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다니12,1-3 히브10,11-14.18 마르13,24-32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삶

-끝은 시작이다-

 

 

방금 우리는 화답송 후렴을 기도로 바쳤습니다.

“주여, 나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는 이 몸이오이다.”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피신처이자 안식처, 정주처인 주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주님은 영원한 피신처인 당신 안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평화를 선사하십니다.

 

11월 위령성월에 오늘은 교회력으로 마지막 연중 제33주일입니다. 이어 다음 연중 제34주일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오늘 말씀도 전례에 맞추어 종말에 관계된 내용들입니다. 또 오늘 연중 제33주일이 각별한 것은 제2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연중 제33주일에 지내던 ‘평신도 주일’은 연중 제32주일로 앞당겨졌고 연중 제33주일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고정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해 교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날로 극심해지는 빈부의 격차로 인한 전 세계적 가난의 보편화 현상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궁극의 관심사 역시 가난한 이들의 삶의 개선이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한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생각됩니다. 종말 시기에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은 주변의 가난한 이들임을 깨닫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담화문에서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환대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또 ‘가난한 이들은 우리가 날마다 복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도우면서 우리를 복음화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참 깊고도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이어 교황님은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참으로 가난한 이는, “1.슬픔과 외로움, 배척으로 부서진 마음을 안고 있는 이, 2.하느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이, 3.거짓 정의의 이름으로 박해받고 있는 이, 4.부당한 정책으로 억압당하고 폭력으로 위협받는 이, 5.생계 수단 부족등으로 다양한 사회적 노예 형태로 살고 있는 이”라고 밝히십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자 얼마나 될까요? 어떤 면에서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난한 존재들입니다. 참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이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말씀하시는 연중 제33주일 교황님의 담화문 역시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일종의 ‘회개의 표징’입니다.

 

종말은 희망입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삶입니다. 바로 종말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어제 오늘 말씀과 두루두루 참고 자료를 묵상하면서 문득 주님의 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위해 용기를 주는 참 적절한 말씀처럼 생각됩니다.

 

첫째, “두려워하지 마라!” 는 말씀입니다.

성서에 참 많이 무려 365회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주님은 날마다 우리를 두려워하지 마라 격려하십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말씀 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회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현재 생활고로 인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끝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종말에 대한 묘사도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 무렵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종말을 상징하는 이런 외적 현상에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신뢰의 믿음입니다. 주님 역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약한 믿음을 꾸짖었습니다. 

 

두려움 역시 무지의 산물입니다. 주님을 몰라 두려움입니다. 짙은 구름 넘어 빛나는 태양 같은 주님을 믿어 알 때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두려움의 구름 걷힐 때 빛나는 태양처럼 구원의 주님은 오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장엄하게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그대로입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바로 종말은 심판이자 구원임을 말해줍니다. 아니 이미 시작된 종말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누구도 주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을 참으로 신뢰할 때 오늘 지금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충실히 살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질 것입니다. 바로 오늘이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희망의 시작,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끊임없이 들려 주시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고백성사 때 자주 써드리는 이사야서의 처방전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 말씀은 제 여섯째 숙부님이 임종전 일주일간 생명줄처럼 잡고 지낸 말씀이기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 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너의 오른 손을 붙들어 주며 이르지 않았느냐?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 준다.”(이사41,10)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 뒤에는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둘째, “나는 너를 사랑한다!” 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신 분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우리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행복이 하느님의 행복이요 우리의 기쁨이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음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살아있음이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심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가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가난한 이들을 각별히 돌보라 정해 주신 오늘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모두가 사랑받기를 바라는 사랑에 가난한 사람인 우리들입니다. 

 

사랑밖에 답이, 길이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 사랑 받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사랑 결핍에서 나오고 모든 답은 사랑에 있습니다. 아무리 배우고 배워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바로 우리 하나하나를 향한 주님의 고백입니다. 어느 도반 신부의 서품 상본의 성구도 생각납니다. 이 또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두려워 마라, 내가 너를 건져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하느님은 재앙의 날이 올, 그 때에 당신이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 보호자 미카엘 대천사를 보내신다 합니다. 천사들이야 말로 하느님 사랑의 생생한 표지들입니다. 재앙의 그 때 책에 쓰인 이들을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라 합니다. 바로 미사에 참석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들 모두가 책에 쓰인 이들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의 실천에 충실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부활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미 오늘 다니엘서에 반갑게도 개인의 부활이 예시되고 있습니다. 새삼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희망과 구원으로 직결됨을 봅니다.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빛나리라.”

 

그대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새삼 잘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됩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하느님의 사랑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영원한 치욕은 하느님을 거부해 스스로 자초한 심판입니다. 

 

그러니 탓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주님의 고백, 늘 마음 깊이 간직하고 더욱 주님과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깨어 있어라!” 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늘 지금 여기 깨어 사는 것입니다. 종말신앙의 핵심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 분도수도자의 정주생활 역시 깨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안주하다 보면 부패인생이 되기 쉽고 깨어 정주할 때 비로소 묵을수록 향기를 더하는 술처럼 향기로운 발효인생이 됩니다.

 

깨어 있음이 답입니다. 막연한 깨어 있음이 아닙니다. 사랑의 주님을 기다림이 깨어 있게 합니다. 이런 깨어있음이 현실에 충실하게 합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합니다. 깨어있음의 빛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참으로 깨어 있을 때 온갖 걱정, 두려움, 불안의 환상이나 허상의 우상도 사라져 내적 자유, 그리고 기쁨과 평화입니다. 참으로 맑고 향기로운 삶입니다. 영성생활이, 기도생활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오늘 지금 여기 깨어 있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무화과 나무의 비유가 목표하는 바도 시대의 징표를 잘 깨달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는 그대로 회개의 징표로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깨어있을 때 깨끗한 마음으로 시대의 징표를 깨달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음-깨끗한 마음-깨달음과 실천은 하나로 직결됩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 라도 주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로 깨어 있는 삶은 이런 영원한 주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린 깊이의 삶입니다. 얕고 가벼운 천박한 삶이 오늘날의 특징적 현실입니다. 바로 깨어 깊이 말씀에 뿌릴 내릴 때 내적 깊이와 풍요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깨어 주님께 나아가 날로 주님과 관계를 깊이함이 지혜입니다. 영원한 평생 도반道伴이자, 평생 전우戰友인 주님과 우정과 전우애를. 이어 형제들과의 형제애를 깊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우리를 참으로 겸손하게, 또 깨어 있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참 엄중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그러니 그 날과 그 시간의 종말은, 또 우리의 개인적 종말인 죽음의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겸허히 아버지께 맡기고 다만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실하는 것뿐입니다. 주님은 연중 제33주일,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살려는 우리 모두에게 참 다정하고 고마운 말씀을 주셨고, 이 거룩한 미사시간 새롭게 확인합니다. 

 

 1.두려워하지 마라.

 2.나는 너를 사랑한다.

 3.깨어 있어라.- 아멘.

 

 

 

  • ?
    고안젤로 2018.11.18 10:05
    주님 , 주님은 세상속에서 저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셨기에 주님사랑을 깨달아 주님사랑을 지키기위해 두려워말고
    항상 깨어 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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