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24.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49,1-6 사도13,22-26 루카1,57-66.80

 

 

 

신의 한 수

-성 요한 세례자와 우리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아마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분은 예수님말고는 유일한 성인일 것입니다. 그처럼 성인의 삶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및 말씀의 배열도 참 적절합니다. 성 요한 세례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입니다. 예수님께 주로 적용됩니다만 오늘은 요한 세례자에게 적용됩니다. 아니 이 두분뿐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우리의 신원 정립에도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가 섭리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 수도원의 수도형제들과 헨리코 형제를 보면서, 소위 ‘신의 한수’라는 깨달음에 자주 감탄합니다. 정말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느님 섭리임을 깨닫습니다. 수도형제들 하나하나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신의 한수 같은 선물입니다. 바로 오늘 화답송 시편 139장이 우리 하나하나가 신의 한수로 창조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낙태가 얼마나 끔찍한 죄인지요.

 

이런 면에서 요한 세례자야 말로 신의 한수임이 분명합니다. 믿음이 깊어지면서 요한 세례자는 다음 말씀에서 자신의 신원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두셨다.---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예언자들은 아마 위 말씀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으로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을 것입니다. 특히 위 말씀중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라는 말씀은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 그래서 예수님은 물론 요한 세례자도 공생애 활동에 앞서 무려 30년동안 숨어 침묵과 고독중에 내공을 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이를 입증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저는 어제 말씀 묵상 중 이 대목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현대인들에게 결핍된 것이 고독과 침묵입니다. 광야의 침묵과 고독속에서 단련되고 수련되어 굳세어지는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어른들이건 아이들이건 너무나 정신이 허약합니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이 너무 많고 자살자들도 많습니다. 정신이 허약해 지니 저절로 육신도 허약해져 육신의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광야의 고독과 침묵중에 하느님 중심의 수련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중심을 잃을 때 속절없이 무너지는 정신이요 육신입니다. 침묵과 고독중에 참말도 나옵니다. 예언자들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일 수 있는 것은 광야의 침묵중에 주님과 깊이 소통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참말이 실종된 시대같습니다. 정치인들의 막말을 보면 실망과 환멸, 좌절감을 갖게 됩니다. 며칠전 읽은 말의 품격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은 인간의 품성을 규정짓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져왔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말은 영혼의 얼굴’이라 했고, 중국 당나라에서는 관리를 등용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용모, 말씨, 글, 판단력)’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았다.---요즘 여기저기서 상대를 말로 찌르고, 베고, 공격한다. 존중이나 배려는 찾아 볼 수 없다. 촌철 같은 논평은 실종됐고, 궤변과 요설이 난무한다. 막말을 넘어 망발 수준의 말도 부지기 수다. 민주주의는 대화로 시작되어 대화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좋은 말을 골라 사용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미덕이다.”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생각없는 말, 영혼없는 말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말은 품성을 품격을 반영합니다. 침묵을 통해 숙성 발효된 참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이런 말은 생명과 빛이 됩니다. 글에는 문향의 향기가 있듯이 말에도 언향의 향기가 있음을 봅니다. 이어 어느 작가의 글도 소개합니다.

 

“나는 글을 쓰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마다 인품이 있듯이 말에도 언품이 있음을 깨닫는다.---말은 마음의 소리다.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 구 세 개가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성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모두가 인품을 넘어 신품이 배어있는 말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이런 주님의 말씀 속에 살고 있고, 또 아름다운 시편을 늘 노래하거나 읽기에 알게 모르게 정화되고 성화된 말을 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여 제 좌우명 기도시 한연을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앞문의 세상 활동만 있어서 생각 없는 영혼 없는 거칠고 험한 말이, 천박한 말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루를 마칠 때면 반드시 뒷문 열고 광야의 고독과 고요의 외딴곳에 머물러 아버지와 깊은 친교를 나눔으로 영육을 충전하셨습니다. 이런 광야의 침묵의 공간에서 다음과 같은 깨달음도 오는 것입니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 그러나 이런 좌절감은 그의 삶의 중심에 주님이 자리잡는 순간 즉시 사라지고 새로운 확신이 그 마음 자리를 차지 합니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바로 뒷문의 광야의 고독과 고요중에 하느님 중심의 삶을 회복했을 때, 이런 깨달음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한다 한들 사람이 망가지고 자연이 망가지면 미래는 참으로 불확실합니다. 광야의 고독과 고요를 잃었기에 생각없이 욕망따라 너도 나도 경쟁 질주하다 보니 망가지는 인성이요 훼손되는 자연들입니다. 

 

하여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는 시편성구도 있습니다. 일단 멈추어 자신을 살펴보라고 수도원 십자로에 교통순경처럼 서있는 예수 부활상이요, 읽어 보라 있는 바위판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영성생활의 네 요소가 침묵-들음-순종-겸손이며 이 넷은 연쇄고리를 이룹니다. 침묵의 개방입니다. 침묵의 사랑입니다. 침묵의 아름다움입니다. 침묵의 향기입니다. 아름다운 하느님은, 자연은 침묵을 통해 말합니다. 침묵은 하느님의, 자연의 언어입니다. 식사때마다 보는 크고 흰 우아한 태산목꽃이 군자의 풍모를 연상케 합니다. 향기도 은은합니다. 침묵의 언어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테산목꽃입니다. 말보다 더 깊은 의미를 전하는 태산목꽃의 침묵입니다. 산책중 은은한 밤꽃 향기가 흡사 침묵의 향기, 하느님의 향기처럼 느껴집니다. 

 

침묵의 내적 광야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순종이요 겸손입니다. 불신으로 귀먹은 벙어리가 되어 내적 광야의 침묵과 고독의 피정중에 깊은 깨달음에 도달한 즈카르야는 순종하여 즉시, 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쓰는 순간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참 말을 쏟아 내니 바로 오늘 복음에는 생략된 즈카르야 찬미가입니다. 

 

즈카르야가 뒷문의 내적광야의 복된 고독과 침묵의 열매가 바로 우리가 아침성무일도 끝무렵때 마다 부르는 즈카르야 노래입니다. 토마스 머튼의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라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며칠전 읽은 글도 생각납니다.

 

“진정으로 고독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때 비로소 자아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삶과 삶에서 만나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고독을 통해 삶을 좀더 이해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바로 뒷문의 내외적 광야의 고독의 필요성을 역설한 글입니다. 요한이 자신의 사명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겸손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광야 고독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생래적으로 침묵과 고독을 사랑합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바오로가 전하는 요한 세례자처럼 참으로 자기를 아는 자들이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참 아름다운 인품의 겸손하고 정의로운 예언자 요한 세례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광야인생여정중인 우리 모두를 새롭게 창조하시어 오늘도 새하늘과 새땅의 하루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6.24 06:40
    혜민스님의 "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것들" 책 제목을 보면서 결국 빨리 달려야
    하는 경쟁의 현대사회에서
    침묵과 고독도 하나의 방법인것을
    새삼 알게 됩니다
    주님을 향한 끝없는 믿음도
    내적강화를 위해 천천히 단단하게
    만들어 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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