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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6.성주간 월요일                                                                           이사42,1-7 요한12,1-11

 

 

 

모든 사람을 공경恭敬하라

-주님의 종-

 

 

 

저는 대죄大罪를 딱 둘로 봅니다. 절망과 무시입니다. 자기에 절망하고 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주님의 종들이라면 결코 절망이나 무시는 할 수 없습니다. 오늘 화답송이 참 신선하여 평생 화두로 삼고 싶습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시편27,1ㄱ)

 

이 고백 그대로 믿고 살 때 절망과 무시의 어둠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참 많이도 강조한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 자포자기 절망이 죄”라는 말마디입니다. 자포자기 절망은 하느님도 도와 주실 수 없습니다. 하여 분도 성인도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마라.” 하십니다.

 

절망과 더불어 남을 무시, 경멸하는 것도 대죄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라는 병은 급기야 자살에 이르고, 극도의 무시와 경멸은 타살에 까지 이르게 합니다. 얼마전 분도 규칙을 공부하던중 성규 4장8절 말씀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공경하라.”

 

존경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공경입니다. 단지 믿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경의 대상입니다. ‘공경恭敬’은 영어로 하면 ‘honor’이고 사전을 찾아보니 ‘공손히 섬김’이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공손히 섬기는 공경입니다. 이 대목에 대한 주석도 참 아름답고 신선했습니다.

 

-공경은 찬미이상이다. 공경은 찬미보다 더욱 내적이다. 공경은 존경을 넘어선다. 타인을 공경함은 타고난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공경의 중심에는 깊은 겸손의 감정이 있다. 공경은 참으로 공경받는 자를 자유롭게 한다. 공경 자체가 보상이다. 공경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없다. 무시는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반면 타인을 공경함은 친밀한 관계를 북돋운다. 우리가 타인을 공경하면 할수록 그들도 타인을 공경한다. 공경은 진리의 기초다.-

 

주석중 극히 일부만 나눴습니다만 참 풍부한 내용입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인터뷰 한 대목에서, “우리는 진화의 우연하고 무의미한 산물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열매입니다. 하느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원하셨고, 사랑하셨고, 필요로 하셨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믿음이 공경의 기초입니다. 

 

갑자기 제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제 어머니는 아버지를 참으로 공경했습니다. 두분이 다투거나 싸우는 적은 거의 본 적이 없고 단 한번 싸우는 적을 본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안방에 아버지는 윗방에서 서로 말을 주고 받는 싸움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 원망하는 말을 해도 어머니는 결코 제 편을 들어주시는 일이 없었고 언제나 아버지를 두둔했습니다.

 

“아버지 없이 네가 어디서 나왔니? 아버지는 싫은 말 하나 할 줄 모르시고, 마음이 좀 모질지 못한 것이 흠이지만 젊잖고 속이 깊은 분이시다.”

 

이 한마디로 제 말문을 닫으셨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과 연관되어 떠오른 이런저런 공경에 대한 단상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에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보았고 자신의 신원을 찾았습니다. 바로 주님의 종이 예수님이심을 깨달았고 동시에 자기들의 신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주님의 종노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주님의 종, 예수님을 공경할 뿐 아니라 날로 닮아가야할 평생과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 내용은 얼마나 고무적이고 격려가 되는지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예수님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신원입니다. 이어 묘사되는 아름다운 주님의 종 모습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도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모두가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바로 주님의 종인 예수님의 모습이자 우리가 지향해야할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도 마리아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평소 얼마나 예수님을 공경하고 흠모했는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모습이 이를 입증합니다. 아름다운 대목의 묘사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이런 봉헌의 자세로 미사를 봉헌해야 풍성한 은총입니다. 마침 예수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마리아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예수님께 대한 무한한 공경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삼 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에 대해 몹시 아까워하는 유다의 반응과는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대로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장면입니다. 나는 마리아쪽입니까 혹은 유다쪽입니까? 

 

마리아가 참으로 주님의 종, 예수님을 꿰뚫어 알아 봤음은 물론 그대로 주님의 종을 닮았음을 봅니다. 마리아의 공경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예수님은 섬세한 배려와 존중의 사랑으로 마리아를 인정하시고 두둔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참으로 결정적인 순간 놓치지 않고 예수님께 향유를 통해 사랑을 표현한 마리아입니다. 돈은 다시 생길 수도 있지만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살아있는 사랑의 추억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예언자이자 신비가요 시인인 이사야가 고백하는 ‘하느님 상’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습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으로 고백하는 하느님입니다. 

 

새삼 사람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역시 외경의 대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종, 예수님께서 마음에 깊이 새겼을 다음 말씀은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사랑의 관상은 낭만도 감상도 아닌 오늘 지금의 현실입니다. 사랑의 관상은 오늘 지금 여기서 사랑의 활동으로 표현될 때 비로소 관상의 완성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종, 예수님께 절대적인 영향을 준 이사야 예언자이심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무지의 눈’을 뜨게 하시고 ‘무지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시어 당신의 빛, 세상의 빛으로 파견하십니다. 이 은총의 미사시간 우리가 주님께 정성껏 봉헌하는 사랑의 향유로 향기 가득한 이 거룩한 성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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