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14.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신명8,2-3.14ㄴ-16ㄱ 1코린10,16-17 요한6,51-58
참 좋고 아름다운 성체성사의 삶
-예닮의 여정-
사제서품 이후 평생 날마다 이른 새벽마다 쓰는 매일강론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대로 미사준비가 됩니다. 하느님 주신 참 좋은 선물, 셋을 꼽으라면 저는 성경, 예수님, 미사를 꼽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이 셋 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하나의 소원’이란 고백글이 생각납니다. 거의 일년전 쓴 글이지만 지금도 이런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찾아 갈 곳도 찾아가고 싶은 곳도 없네
만날 분도 만나고 싶은 분도 없네
오늘 지금 여기 주님 함께 계시고 도반 형제들 있고 사랑하는 이들
끊임없이 찾아오니 만족하고 행복하네
주님께 비는 단 하나의 소원은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강론쓰고 주님과 함께 기도하며 걷고 미사한 후
주님의 집에 기쁘게 귀가歸家하는 것” 뿐이라네”-
하여 새벽에 강론 쓰고 주님과 함께 묵주기도 바치며 걷고 미사봉헌하면 하루의 소원이 다 이뤄진 듯 참 홀가분한 하루의 시작이 됩니다. 거의 하루를 다 산 느낌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부활대축일, 승천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이은 참 아름답고 고마운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요 참으로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성체성사 대축일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강론 제목은 “참 좋고 아름다운 성체성사의 삶-예닮의 여정-”이라 정했습니다.
매일의 하루는 성체성사로 수렴收斂되고 성체성사는 하루로 확산擴散됩니다. 수렴과 확산의 영적 삶의 리듬중에 정화되고 성화되어 날로 예수성심을 닮아가니 말그대로 성체성사의 삶은 그대로 예닮의 여정이 됩니다. 엊저녁 성체성혈 대축일 성무일도나 오늘 아침 성무일도의 내용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깊었는지요! 몇부분만 나눕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 그리스도께 어서 와 조배드리세”-초대송 후렴
“당신 백성을 천사들의 음식으로 배불리셨고, 하늘의 빵을 그들에게 주셨도다. 알렐루야”-아침기도 후렴1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로다, 이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리라.”-즈카르야의 노래 후렴
“오 거룩한 잔치여, 예수님의 몸은 음식이 되었도다. 수난의 기념 은총의 충만 장차 영광의 보증이로다, 알렐루야.”-마리아의 노래 후렴”-
얼마나 아름답고 깊고 은혜로운 내용인지요! 성체성사로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성체성사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성체성사의 사랑이요, 하느님의 아름다움은 성체성사의 아름다움이요, 하느님의 깊이는 성체성사의 깊이입니다. 복음선포에 앞서 부른, 무려 24절까지 계속된 성체송가는 얼마나 아름답고 깊은지요. 그대로 무한한 하느님 사랑의 깊이를 반영합니다. 일부만 인용합니다.
“성대하다 이날축일 성체성사 제정하심 기념하는 날이로다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빵’과 ‘땅’ 발음이 얼핏 들으니 하나처럼 들립니다. 참 깊고 좋은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생명의 빵을 먹을 때 우리 삶의 자리는 생명의 땅, 하늘 나라 천국이 됨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체성사의 삶을, 참으로 성공적인 예닮의 여정을 살 수 있겠는지요?
첫째,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 베푸신 온갖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영성생활은 기억입니다. 하여 늘 하느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반복하여 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시편 저자도 간곡히 권합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하신 일 하나도 잊지 말라.”(시편103,2). 망각에서 시작되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요 불행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베푸신 온갖 은혜 깨달아 알수록 저절로 흘러나오는 찬미와 감사에 행복한 삶입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사십년 광야여정중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대로 인생광야여정중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너희는 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만나를 먹게 해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일상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탈출의 여정에 항구하여 늘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만나보다 더 좋은 하늘에서 내려온 성체성사의 빵을 먹고 그분의 사랑을 늘 생생히 기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는 달리 성체성사의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참여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자주 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이는 성체성사를 사랑하여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미사에 참여합니다. 참으로 생생히 현존하시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저절로 위로와 치유요, 정화와 성화의 은총이요, 기쁨과 평화의 선물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렇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안에 머무른다.”
세상에 이 거룩한 미사가 아니곤 이런 은혜를 어디서 맛볼수 있을까요? 인간의 무한한, 끊임없는 허기虛氣를 성체성사가 아닌 그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겠는지요. 주님과의 온전한 상호내주相互內住의 일치를 어떻게 살 수 있을런지요. 제가 사제생활 만 31년, 요셉수도원의 정주 32년 동안을 한결같이 살 수 있음도 순전히 성체성사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빵은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그대로 공감합니다. 한 몸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를 이뤄주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성체성사야말로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입니다.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성체성사 안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성체성사입니다. 성체성사 없는 교회는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정말 살기위해, 영육이 참으로 살기 위해 우리의 영원한 식食이자 약藥인 생명의 빵, 예수님을 모심은 필수입니다.
셋째, 사랑하는 것입니다
늘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는 이들은 미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미사참여만으로 끝나서는 반쪽입니다. 미사은총은 하루로 확산되면서 사랑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성체성사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이웃들입니다.
나누고share, 돌보고care, 섬기고serve, 주고give, 떠받쳐support 주는 구체적 표현의 사랑입니다. 돈 없어도 따뜻한 마음과 표정에 미소, 따뜻한 음성과 눈길의 사랑만으로 충분합니다. 바로 성체성사의 은총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좌우간 만나는 이마다 사랑할 기회를 잃지 않고 실천하므로 만나는 이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6,57)
바로 생명의 빵인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우리들이니 주님은 이렇게 사랑할 힘을 주십니다. 참으로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성체성사의 완성이요, 성체성사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의 하느님, 사랑의 성체성사입니다. 우리의 최후심판의 잣대도 사랑입니다. 성체성사의 삶은 비상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의 삶을 뜻합니다. 사랑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사람입니다. 탓할 것은 그 누구, 무엇도 아닌 사랑 부족한 나입니다.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 저는 하느님 맛으로, 성체성사의 맛으로 살아갑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 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시편32,9), 그대로 성체성사의 주님 맛을 상징합니다. 아, 이 주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저절로 세상 맛은 떠나기 마련입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솟는 사랑의 샘, 생명의 샘이 성체성사입니다. 참으로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과 일치의 관계도 날로 깊어져 예수님을 닮아 참 사랑많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깊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진짜 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참으로 진짜 삶을, 성체성사의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무지하고 무의미하고 허무한 광야 인생이 아닌 참으로 아름답고 충만한 예닮(예수님 닮기)의 여정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텅 빈 허무’의 고해인생을 ‘텅 빈 충만의 사랑’의 축제인생으로 바꿔주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주님, 당신은 백성들을 천사들의 양식으로 먹여 살리셨습니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고 기쁨을 주는 빵이었습니다.”(지혜16,20).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