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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7.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코린15,1-11 루카7,36-50

 

 

 

부활 은총의 삶

-사랑, 만남, 회개, 용서, 구원-

 

 

 

세상에서 떨어져 불암산 기슭 수도원에서 33년째 머물러 정주하고 있지만 세상 중심 한복판에 살고 있는 듯 생각됩니다. 혼자 유리된, 고립단절된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편해야 저도 편하고 세상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합니다. 바로 수도자의 마음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게 되고 최선을 다해 매일 강론을 나누게 됩니다. 어제 받은 세 통의 카톡 메시지가 새삼 이런 진리를 확인하게 합니다.

 

“며칠전 수도원에 다녀온 이후로 참말로 매사 매순간 감사를 느끼며 지냅니다. 우리 가정 식구 모두가 무탈하게 세끼 식사하며 가정 기도를 매일 같이 할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한거예요. 신부님 기도 덕분이라고 느껴지네요. 세상적으로 보면 최하위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편안함을 잠시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주님께서 주신 휴식인 것 같아요. 자존심의 꽃이 다 떨어져야 인격의 꽃이 편다고 하더니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신부님, 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요? 자연 이치대로 순행하며 사니까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덜한 것 같아요. 신부님 만나고 나서 제게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 기도 덕분에 이경자씨가 기적처럼 깨어 나셔서 중환자실에서 하루만에 일반병실로 내려 왔답니다. 감사합니다. 이분 위해 15일 미사봉헌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주님을 만난 분들의 고백입니다. 구원은 언젠가 밖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가까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을 만나 구원의 삶, 부활 은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먼저 사랑의 손길을 뻗으십니다. 어제 저녁 식사전 수도형제들을 줄 복숭아를 오토바이에 싣고 싱글벙글 웃으며 오는 수사님의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대로 구원과 부활의 기쁜 삶을 사는 모습입니다.

 

사랑의 주님과 만날 때 회개요 용서요 구원이요, 늘 우리를 찾아 오시는 사랑의 주님을 환대함이 그렇게도 중요합니다. 바로 이의 생생한 증거가 주님 부활의 증인이요, 부활의 구원의 기쁨을 사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사도의 겸손한 고백이 참 아름답고 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맨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바오로의 겸손한 고백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요! 마치 후반부는 그대로 저의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사랑의 은총을 만날 때 회개요 겸손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은총이 우리를 회개시켜 겸손하고 아름다운, 매력적인 구원과 부활의 참 삶으로 이끕니다. 

 

바오로와 쌍벽을 이루는 은총의 여인이 바로 오늘 복음의 주인공 죄녀입니다. 이름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여인입니다. 예수님의 감동과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이미 죄녀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며 하여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사랑의 주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향유의 사랑! 그대로 죄녀의 회개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표현된 죄녀의 회개입니다. 죄녀의 회개를 촉발시킨 예수님의 사랑이 이미 선행했음을 느낍니다. 회개해서 사랑이 아니라 사랑해서 회개입니다. 그러니 누가 회개하지 않는다 꾸짖을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기다리십시오. 때가 되면 회개할 것입니다. 죄녀와 예수님의 만남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오늘 복음중 절정의 장면입니다. 말그대로 회개와 사랑, 감사와 찬미의 눈물이자 행위입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 미사전례에 참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은 한 순간에 죄녀의 전부를 알아 챘습니다. 죄녀의 예상치 못한 행위에 놀란 바리사이 시몬과는 너무 판이한 주님의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은연중 죄녀와 바리사이 시몬을 빗댄, 빚을 많이 탕감받은 자와 적게 탕감받은 자에 대한 적절한 예를 들면서 시몬을 직격直擊합니다. 바로 우리를 깨우쳐 회개에로 이끄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인간이 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라면 하느님 하시는 일은 죄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죄를 지으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수록 즉시 회개하고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죄책감에 아파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서 순수가 아니라 회개하고 사랑할 때 순수요, 죄가 없어 구원이 아니라 회개할 때 하느님 사랑의 은총으로 구원입니다.

 

사랑과 죄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사람안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마치 사랑의 빛 앞에 사라지는 죄의 어둠처럼 말입니다. 죄녀가 그 순간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그녀는 죄인일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몬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의 죄의 개념이 순전히 율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 죄의 개념은 관계적입니다.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와 더불어 사라지는 죄의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보다 ‘어떻게 사랑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백배 유익하고 낫습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복음의 죄녀는 물론 마치 오늘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사랑의 회개로 표현된 죄녀의 아름답고도 슬픈, 깊디 깊은 믿음에 감동, 감격하신 주님의 구원 선언입니다. 아, 이제부터 바오로 사도처럼 주님과 함께 구원의 삶, 부활 은총의 삶을 살게 된 죄녀입니다. 이제부터 주님과 본격적 우정의 여정에 오른 죄녀요 주님과 사랑도 날로 깊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회개한 과거는 불문에 붙이고 다시 묻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어제나 내일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나를 보십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만나고 가까이 있는 이웃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은 언제나 처벌이 아니라 우리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려 노력하십니다. 처벌은 파괴합니다. 하느님의 소망은 우리 모두가 온전해 지는 것이며 내적 평화와 조화를 체험하며 구원과 부활의 기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118,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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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9.17 08:00
    "인간이 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라면 하느님 하시는 일은 죄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죄를 지으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수록 즉시 회개하고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죄책감에 아파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서 순수가 아니라 회개하고 사랑할 때 순수요, 죄가 없어 구원이 아니라 회개할 때 하느님 사랑의 은총으로 구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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