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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30.수요일 성 예로니모 학자(340-420) 기념일   

욥기9,1-12.14-16 루카9,57-62

 

 

참된 제자의 삶

-진리와 사랑-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성인의 생애를 요약한 아침성무일도 5개 연의 찬미가가 참 아름다워 2개 연만 나눕니다. 

 

-“성경의 하늘나라 푸른목장을 땀흘려 정성다해 가꾸신 당신

여기서 모든이게 공급하셨네 백배의 풍요로운 영혼양식을

 

사막의 고요함을 갈망하면서 하느님 면전에서 늘 깨어있고

육신을 괴롭히고 극기하면서 자신을 주성부께 바치셨도다.”

 

어제 모든 천사들의 축일에 있었던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병원에 다녀오다가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입었습니다. 대형 사고의 경우치고는 아주 경미한 상처였습니다. 즉시 병원 응급실로 이동하여 머리 사진을 찍고 주사를 맞은 후, 왼쪽 머리 상단 부분을 여러 바늘 꿰멘 다음 귀원하여 점심식사후 9시경을 바쳤습니다. 사고 즉시 원장수사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다행히도 경미한 사고입니다. 전례때는 외출시 쓰는 검정 모자를 써야할 것 같습니다. 상처부위가 커서 분심을 줄 것 같아서요. 깨어 살라는 싸인같습니다”

 

사고 즉시 떠오른 걱정은 내일 강론이었습니다. 저는 강론에 대해 남달리 집착이 큽니다. 게시판에 붙여져 있는 다짐입니다. ‘날마다의 강론은 내 운명이자 사랑이요, 구원이자 유언이다’, 구원과 유언이란 말마디는 나중에 붙였습니다. 정말 지금은 유언처럼 생각하고 씁니다. 이어 떠오른 생각은 ‘정신차려 깨어살라는 회개의 싸인이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귀원하여 떠오른 생각 둘은 ’아, 천사축일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통해 도와 주셨구나!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새삼스럽게 감사와 더불어 힘이 솟는 느낌이었습니다.

 

머리에 상처가 부끄럽고 분심을 줄 것 같아 전례시 상처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한 번 썼다가 즉시 짧고 부족한 생각임을 깨달아 모자를 벗었습니다. 부끄러워할 것은 죄이지 상처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부끄러워 모자를 썼더라면 죄를 지을뻔 했습니다. 저나 수도형제들이 직접 다친 부분을 보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깨어 살라는, 회개하라는 표지처럼 생각됩니다. 마침 수도형제가 십자가 앞에 서도록 한 후 사진을 찍어준후 전달한 메시지의 재치와 유머도 고마웠습니다. 

 

“주님의 전사, 이수철프란치스코 신부님!”

 

늘 들어도 반가운 주님의 전사라는 말마디를 들으니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참 까칠한 별난 성인입니다. 그래도 당시 그 혹독한 은수 금욕생활에도 80세 장수를 누리신 것을 보면 인명은 재천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전설적이 인물이요 파란만장한 생애였고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지닌 신비로운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힘든 성향으로 구설수에 많이 올랐을지라도 그의 학문은 당대 성 아우구스티누스외에는 필적할 사람이 없었다 합니다. 이 두분과 성 암브로시오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네분은 서방 4대교부이기도 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깊은 영성과 삶의 준열한 고행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은수처엔 몇가지 필수품에 십자가와 성서뿐이었고. 성인은 인생 후반부 거의 30년동안은 예루살렘에서 은수자로 보내면서 성서연구와 고행생활에 전념했습니다. 특히 가톨릭의 공인 라틴어 불가타 성서는 386년에서 시작하여 404년 18년동안의 작업이라 합니다. 또 성인은 원하지 않았던 서품이라 평생 동안 미사를 봉헌하지 않았습니다. 

 

성덕의 잣대는 열렬한 사랑이요 진리의 삶입니다. 성인의 굳건히 항구히 견뎌내는 견인堅忍이 놀랍고 성서연구를 통한 그 지칠줄 모르는 하느님 사랑의 열정이 불가사의입니다. 한결같고 오롯한 사랑과 진리에 헌신했던,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았던 참 자랑스런 성인입니다. 1600년전 성인이지만 시공을 초월 지금도 신선한 자극에 열정에 불을 붙여주는 분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고난 받는 의인 욥 역시 주님의 참된 제자입니다. 주석부분을 읽다가 뒷부분이 좋아 옮깁니다. ‘선인善人의 아픔과 고통은 전혀 하느님의 불유쾌한 표지가 아니다. 이들 고통이나 시련은 때로 긍정적으로 그분과의 깊은 관계를 촉진하는 하느님 사랑과 은총의 표지로 보여질 수 있다. 하느님께로부터 우리 삶에 어떤 경우로 개입하든 수동적 비관주의에서 긍정적이고 환영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병이나 죽음은 궁극적인 악이 아니다. 정말 죄는 진리와 사랑의 부재다.”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부끄러워할 것은 죄이지 상처나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상처나 병, 죽음보다 더 치명적이 영원한 병이나 죽음은 진리와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욥은 결코 혹독한 시련과 고통중에도 때로 불평하고 원망했을 지언정 끝까지 견인하며 하느님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끝까지 진리와 사랑의 하느님께 깊이 뿌리 내린 참 제자의 길을 살았던 욥입니다.

 

오늘 루가복음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제자들의 조건을 언급합니다. 두 번의 수난과 부활 예고후 예루살렘을 향한 절박한 상황입니다. 세차례에 걸친 예수님 말씀에서 참 제자의 길을 배웁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곳조차 없다.”

여기서 강조점은 가난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가난을, 단식을, 고행을 찬양하지도 않았고 노숙露宿하지도 않았습니다. 먹보요 술꾼이란 별명도 지니셨습니다. 바로 어디든 장소에 집착하지 않고 새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워야 당신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뚜렷이 부각되는 절대적 가치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절박성은 가족, 전통, 문화의 필요성 모든 것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려는 결정은 결코 번복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 두 예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취해선 안됩니다. 루가복음의 참된 제자에게 무엇보다 강조된 주제는 다음입니다. 

 

예수님의 추종자는 결코 기회주의자가 될 수 없고, 그가 하는 일은 ‘시간제part-time’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이든 아무것도 아니든 둘중 하나(all or nothing)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제자직의 사명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지 깨닫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자에게 준엄히 요구되는 길이지만 우리가 볼 때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동시에 아가페 사랑의 요구가 언제나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최종 판단의 잣대는 아가페 사랑과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여 매순간 분별할 일은 그것이 진실로 사랑의 행위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참된 제자의 길은 사랑과 진리의 길이고 사랑과 진리만이 유일한 분별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주님을 닮아 우리 모두 사랑과 진리의 사람이, 참된 제자가 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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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9.30 10:05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서 주시는
    매일의 양식을
    우리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을
    통해 하루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매일의 강론을
    운명, 사랑 구원과 유언으로
    생각하시듯
    신부님의 강론을 매일 보는
    저희 또한 신부님과 같은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신부님께
    축복과 은총과 건강의 은총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곧 다가올 신부님의 축일을
    준비하며 특별히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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