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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연중 제27주일                                                      창세2,18-24 히브2,9-11 마르10,2-16

 

 

 

주님과 일치의 여정 공동체

-중심, 일치, 개방, 인내-

 

 

 

"주님은 한평생 모든 날에 복을 내리시리라."(시편128,5)

 

화답송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만 30년전, 1991년 10월 6일 바로 나해 오늘 연중 제27주일 미사 강론후 당시 마르틴 아빠스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로 이때 강론 결론 부분에서 인용했던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시집에서 나오는 ‘결혼에 대하여’라는 시는 언제 읽어도 공감이요 감동입니다. 비단 부부가정공동체뿐아니라 수도가정공동체에도 귀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되는 참 보물같은 시입니다. 30년전에는 맨 끝에 인용했지만 30년 후인 오늘은 맨처음에 인용합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삶을 흩어 놓을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신의 고요한 기억속에서도 영원히 함께 하리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그대들 영혼의 나라 속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으로

마시지 마라

서로의 음식을 주되 한쪽의 음식에 치우치지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때로는 홀로 있기도 하라

비록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마음 속에 묶어 두지는 마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처럼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부부사이 이보다 더 좋은 잠언성 시를 발견한적이 없습니다. 부부공동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가정공동체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 생활의 원리를 보여주는 황금같은 시입니다. 한마디로 주님 안에서 주님을 중심으로 성인공동체가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마침 24년전 ‘사랑’이란 제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사랑은

하느님 안에서

제자리를 지켜내는

거리를 견뎌내는

고독의 능력이다

 

지켜냄과

견뎌냄의 고독중에

 

순화되는 사랑

깊어지는 사랑

하나되는 사랑이다”-1997.3

 

참 가장 큰 기적이, 정말 힘든 일이 남남의 남자 여자가 하나가 되어 사는 부부생활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잘 살고 못살고에 상관없이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성인이요 구원이라 주저없이 말합니다. 또 부부는 혼자 천국 입장 못하고 단체입장이다. 둘 합한 점수 둘로 나눠 평균 60점 넘어야 구원이라 합니다. 혼자구원이 아니라 더불어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졸혼이라는 말도 회자됩니다. 결혼의 졸업! 이혼이 아닌 졸혼, 궁여지책이지만 노녀부부의 결혼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즘 이혼율이 거의 50%에 육박합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 혼자의 삶이라면 이 또한 판단할 일이 아니겠습니다. 부부결혼생활에 실패가 인생 실패는 결코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시 시작하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습니다. 예전 신학교 시절 교회법 교수신부님에게 들은 로마 유학시절 마지막 혼인법 교수님의 결론이랍니다.

 

“교회법을 총동원하여 살 사람은 살게 해주고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은 헤어지게 해주라!”

 

아마 예수님의 입장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얼마전 읽은, ‘칼의 노래’ 김훈작가와의 인터뷰 기사중 한 대목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거장의 책을 만들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아요. 김훈 작가님이 저에게 ‘아버지는 뭐 하시느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놀라셨어요. 엄마는 고아였고, 우리 집엔 항상 엄마, 언니, 저밖에 없었어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엄마가 온갖 험한 일을 겪으면서 딸 둘을 무사히 대학까지 졸업시킨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김훈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엄마가 진정 성인이시구나, 엄마한테 잘해드려, 책만든다고 깝죽거리지 말고, 네가 뭐나 되는 것처럼 어깨에 힘주지 말고, 무조건 엄마한테 잘 하라’는 말씀이 너무나 뭉클했어요.”

 

20년 이상 만나며 고백성사와 미사를 자주 봉헌하는 결혼 40년쯤의 어느 자매일화도 생각납니다. ‘죄지으며 사는 것보다 이혼하여 죄 안짓고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에 ‘죄를 짓더라도 함께 살아야 구원이라’고 단호히 충고한 자매인데, 또 남편이 가출한채 몇 개월 지난 후 추석을 앞두고 여러번 전화와 문자로 연락하여 집에 들어왔다는 말에 칭찬과 격려의 말을 전송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참 잘 하셨습니다. 자매님, 사랑과 인내의 승리입니다. 형제님 탓하지 말고 친절히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신부님,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 도와 주셔서 제가 호흡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살아있는 순교적 삶을 사는 부부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함께 살아도 무관하게 살아가는 부부도 많을 것이나 함께 살든 혼자 살든 주님 안에서, 주님의 교회공동체 안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며 품위있게 살면 누구나 성인이요 구원이라 믿습니다. 부부가정공동생활이나 수도가정공동생활, 또는 어떤 형태의 공동생활이든 다음처럼 살면 구원입니다.

 

첫째, 주님 ‘중심’의 삶입니다.

서로 좋아서, 마음이 맞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평생 바라보는 중심이 같아야 삽니다. 바로 사랑의 주님이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모두가 중심인 주님을 바라봐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이래서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성전에서 공동시편기도와 미사전례를 바치는 수도공동체 형제들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를 입증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이렇게 아담에 협력자 하와를 마련해준 분이 하느님이시니 하느님 중심을 살아야 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해 존재합니다. 이런 하느님께서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영도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공동체의 중심에 영원히 현존하시는 이런 파스카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멘토요, 평생 바라봐야 할 중심입니다. 

 

둘째, 주님 안에서 ‘일치’의 삶입니다.

혼자는 환상입니다. 고립단절의 혼자가 지옥입니다. 획일적 일치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주님은 오늘 창세기 말씀을 다시 새롭게 확인하며 부부일치의 원리를 밝히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주님 안에서 둘이자 하나요, 하나이자 둘인 부부들입니다. 법조문이기보다는 주님의 간곡한 소망이 담긴 말씀이자 끝까지 부부일치를 위해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연애는 황홀한 착각이요, 결혼은 참혹한 이해’라는 말도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말해 줍니다. 바로 여기서 부각되는 주님 안에서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주님과의 일치와 다양성의 일치는 함께 갑니다. 주님과 일치가 깊어가면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연민의, 아가페 사랑도 깊어갑니다. 사실 우리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구별될 수는 있을지언정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성은 부요함의 원천이다. 결코 배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런 공동체 형제들의 다양성의 일치 역시 평생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서로 끊임없이 사랑하고 알아가면서 다양성의 일치도 깊어질 것이며 서로간에도 참으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셋째, 주님 안에서 '개방'의 삶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단순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이 없고 열려 있습니다. 무력하여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랑하는 어린이들처럼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린이처럼 편견없이 활짝 열린 가슴으로,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어린이와 같은 예수님이셨음을 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어린이와 같은 이들에게는 언제나 활짝 열린 하느님 나라의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바로 예수님처럼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삶입니다. 안아주라 있는 가슴입니다. 무조건 마음의 가슴을 활짝 열고 어린이를 안듯이 모든 이들을 포용하고 축복하는 자세로 살라는 것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마다 마음 깊이에는 참나의 어린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이들을 예수님처럼 마음의 가슴에 무조건 안아들이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안아주고 축복하라!’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요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넷째, 주님 안에서 '인내'의 삶입니다.

특히 인내의 침묵과 기다림을 강조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인내의 기다림인 겨울, 봄, 여름이 있었기에 가을의 풍성한 수확입니다. 분투의 노력과 더불어 인내의 기다림중에 익어가는 신망애 은총의 열매입니다. 끝까지 인내하여 견뎌내는 자가, 버텨내는 자가 구원의 승리입니다.

 

부부가정공동체든, 수도가정공동체든 우정의 성장과 성숙에 인내의 기다림은 필수입니다. 요셉 수도원에서 초창기 초대 원장과의 대화중 잊지 못하는 대목도 바로 인내입니다. 제가 ‘사랑’을 말하자 당시의 초대 원장이었던 선배 사제는 ‘인내’를 꼽았습니다. 

 

공동생활의 네 기본적 원리를 살펴 봤습니다. 결론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중심, 사랑의 일치, 사랑의 개방, 사랑의 인내입니다. 주님의 다른 이름도 ‘사랑’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사랑의 일치가 공동생활의 일치의 여정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평생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평생 배워야 할 공부가 사랑공부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평생 한결같이 예닮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어린이와같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르10,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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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1.10.03 10:06
    사랑하는 주님, 주님 주신 말씀 대로 세상에 주신
    모든 만물 풀 한포기, 새소리
    주변 사람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오늘 제 안에서 수 없이 많은 되새김을 통해 넓은 가슴으로 모두를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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