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18.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역대24,17-25 마태6,24-34

 

 

 

하느님 중심의 관상적觀想的 삶

-섬겨라, 보라, 믿어라-

 

 

 

라틴어 짧은 세 격언을 기억할 것입니다. 

1.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내 죽음을 기억하라.

2.아모르 파티(amor fati): 내 운명을 사랑하라.

3.카르페 디엠(carpe diem); 내 현재를 잡아라.

 

내 죽음을 기억하면, 내 운명을 사랑하게 되고, 내 현재를 잡고 본질적 깊이의 참 절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의 관상적 삶에 철저할 때 저절로 깨달아 살게 하는 진리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삶의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의 근원적 불행은 하느님을 잊음에서 기인합니다. 최근 썼던 두편의 짧은 고백입니다.

 

-“갈곳이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없다

 

 만나뵐 분이

 만나고 싶은 분이 없다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만나는

 주님이시다”-2022.6.12

 

-“외로움도

 그리움도

 기다림도  

 두려움도

 

 없다네

 텅빈 충만의

 행복만이 있다네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만나는

 함께 하는

 주님이시기에”-2022.6.16

 

이런 글은 제 소망所望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일단 이렇게 과감하게 고백으로 던져 놓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고백하는 대로 주님은 이루어 주십니다. 한결같이 오늘 지금 여기서 만나는 주님과의 관계를 중시한 고백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중심의 관상적 삶에 대해 참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 “섬겨라!”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한결같이 섬기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우리 말이 참 좋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삶의 중심이 둘 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재물, 둘 다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힘든 것은 중심이 둘일 때 마음이 갈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를 택하여 우선순위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 말씀이 분명합니다.

 

“아무도 주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불행의 근원은 하느님이 아닌 세상 우상이, 재물이, 돈이 삶의 중심이 될 때 시작됩니다. 열왕기 하권의 제1독서가 오늘 갑자기 역대기 하권으로 바뀌니 어제의 독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악순환의 반복같습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의 모습이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도 양상만 달리하듯 그대로 반복되듯 말입니다.

 

여호야다 사제의 개혁으로 맑게 갠 날씨 분위기가 오늘은 폭풍우 치는 험한 날씨로 변했습니다. 배은망덕하게도 요아스 임금이 유다 대신들의 꾐에 빠져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깁니다. 주님은 예언자들을 보냈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마침내 요아스 임금은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충언하던 그의 아들 예언자 즈카르야를 죽입니다. 이로 인해 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요아스 임금을 침상에서 살해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성에 묻기는 하였지만, 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입니다. 하느님 중심을 떠난 자업자득의 업보입니다. 삶의 중심인 하느님을 망각할 때, 그 중심 자리에 하느님 대신 어김없이 자리 잡는 우상이나 세상 것들을 섬길 때 여지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한결같이 섬기는 일이 얼마나 본질적인 일인지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이 있을 뿐이요, 직무와 권위가 있다면 단 하나 섬김의 직무와 섬김의 권위가 있을 뿐입니다. 새삼 우리 믿는 이들의 본질적 업종은 ‘서비스업’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그의 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정의합니다.

 

둘째, “보라!”입니다.

경청의 들음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직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감사도 행복도 발견이자 선택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관상적 삶에서 발견의 기쁨, 발견의 새로움, 발견의 놀라움입니다. 참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발견할 때 저절로 놀랍고 새롭고 좋습니다. 그대로 관상의 삶입니다. 예수님 역시 볼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 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못하였다. 오늘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자연성서 렉시오 디비나 묵상이 정말 깊고 참신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자연에서 떠난 결과요 이런 관상적 눈의 상실에서 기인합니다. 감사와 감동, 감탄을 잃어버려 많은 영혼들이 병든 세상입니다. 그리하여 눈만 열리면 신비롭고, 놀랍고, 새로운 기적들로 가득한 세상인데 이 걸 못보고 지내는 것입니다. 새처럼, 꽃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예수님이요, 예언자이자 신비가요, 관상가이자 시인인 예수님입니다. 관상적 차원이 너무나 결핍된 오늘날의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셋째, “믿어라!”입니다.

"믿어라"와 더불어 곧장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이 뒤따릅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철석같이 믿는 것이요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 부재를 드러내는 걱정과 두려움, 불안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천둥같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기도와 사랑뿐 아니라 믿음 역시 초보자인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평생 믿음을 배워가면서 주님과 깊어지는 우정의 사랑입니다. 참으로 탓할 것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이요 청할 것은 단하나 좋은 믿음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십시오. 하느님 중심의 관상적 삶을 늘 새로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요한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입니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합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하늘 나라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토니 드 멜로 신부는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발견이자 선택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을 발견하고 선택하여 사는 것입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이렇게 오늘 행복을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행복할 것입니다. 행복의 원천인 주님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행복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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