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23.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예레7,1-11 마태13,24-30

 

 

 

공존의 지혜와 사랑, 평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리스도파-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시편84,2)

 

오늘 화답송 후렴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리스도파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생전生前보다는 사후死後, 더 위대해지는 느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세월 흐를수록 여운의 향기 짙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성인들은 물론이고 위인들이 그러합니다. 제게는 평범해 보였던 어머니가 그러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합니다. 때로는 살아 현존해 있는 듯이 생각됩니다.

 

제 서품식때 사진을 보니, 제 어머니는 지금 제 나이와 같은 74세입니다. 저절로 어머니의 삶과 지금의 제 삶을 비교해보게 됩니다. 새롭게 깨닫는 바, 어머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회한悔恨의 마음 가득합니다. 

 

전에도 그렇지만 요즘 제 관심사는 주로 사람이요 읽는 책은 위인偉人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입니다. 주문한 책을 어제 받아 보았습니다.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만델라 자서전(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번역)-”, 책 표지가 선명했습니다. 김대중이 누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뚜렷이 와닿는 이가 없었습니다. 거의 1000쪽에 달하는 두터운 책이었습니다.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이 방대한 책을 대통령 퇴임후, 돌아가시기 3년전 2006년 82세에 출판한 책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보를 보니 1924년 출생하여 1998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니 만 74세 나이였고 이후 5년 만79세까지 대통령직을 노령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수행해 냈던 것입니다. 

 

제 나이 지금 만73세인데 이보다 한 살 늦은 만74세에 대통령이 됐으니 그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참 놀랍습니다. 새삼 저를 부끄럽게 하고 분발하게 합니다. 역시 하늘이 낸 인물이요 세계적 거인巨人이란 생각이 듭니다. 만델라 자서전을 읽고나면 한국 근현대사라할 수 있는 방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 2권을 읽을 계획입니다. 책소개 앞부분입니다.

 

“김대중의 삶은 곧 20세기 한반도의 역사이다. 1924년 남녘의 외딴 섬마을에서 태어나 2009년 8월 세계인의 애도속에 고단한 몸을 누일 때까지, 그는 파란으로 가득 찬 한반도 현대사의 한복판을 헤쳐왔다.”

 

넬슨 만델라와 절친했던 김대중 대통령, 위대한 두분의 삶의 궤적이 너무 닮았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바, 이 위대한 두분의 공통점은 통합의 인물,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은 용서와 화해의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파였다는 것입니다. 사후 뚜렷이 입증되기에 좌우를 막론하고 존경하여 찾는 분입니다. 문득 어제 받은 어느 자매님의 카톡메시지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주고받은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신부님이 보내 주신 우편물을 오늘 받았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백합꽃 축복인사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신부님의 사랑하는---이라는 글을 보며 눈물이 핑돌고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주님께 늘 사랑받고 있구나하는 온기를 느낍니다. 쓸쓸할 때면 이글을 다시 보며 기운을 차리겠습니다.”

 

참 진솔한 고백입니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좌파나 우파를 막론하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깊이의 사람들이요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역시 사랑밖에 길이, 답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밖에 길이, 답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평생 공부하고 배워 닮아가야 할 공존의 지혜와 사랑, 평화의 주님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 비유중 하나인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깊은 지혜와 인내와 연민의 사랑을 배웁니다. 이런 지혜와 사랑은 하나입니다. 이런 지혜와 사랑의 인물만이 극단의 미친, 광(狂)의 분열의 시대에 공존과 통합의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환히 드러나는 주님의 지혜와 연민의 사랑, 인내와 관용, 이해와 수용입니다. 

 

참 불가사의한 가라지의, 악의 출현입니다. 좋은땅에 좋은씨 밀을 뿌렸는데 악의 가라지가 자라고 있으니 말입니다. 바로 초대교회 당시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공동체 현실을 반영합니다. 여전히 오늘날도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얼핏보면 나라 안팎이 온통 가라지밭 같습니다. 날로 왕성해지는 가라지 세력의 세상같습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세상의 축소판이 내 마음밭입니다. 그대로 밀과 가라지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내 마음밭입니다. 발본색원, 범죄와의 전쟁도 수행하고 악의 척결을 위한 무수한 피흘림의 혁명도 겪었고, 적폐청산도 시도했지만 가라지 악의 현실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보복의 악순환을 피할길 없습니다. 평화의 선을 갈망하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분쟁과 전쟁의 악입니다. 악의 가라지를 거두어 낼까 묻는 종들에 대한 예수님의 해법에서 깊은 지혜와 인내의 사랑을 배웁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일체의 판단이나 차별, 심판을 하느님께 맡기고 유예하라는 것입니다. 악의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입니까? 가라지인줄 알고 뽑았는데 밀이면 어떻게 합니까?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합니까? 차별의 미움은 나쁩니다만 분별의 사랑과 지혜는 좋습니다. 그러니 그대로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가라지가 없는 순수한 좋은 밀밭의 유토피아는 환상입니다. 가라지가 없는, 영적전쟁이 없는 삶이라면 참 무기력한 삶에 내적성장과 성숙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악의 가라지를 뽑을 것이 아니라 밀의 선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부단한 영적 단련과 훈련을 통해 선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뽑는 것이, 박멸撲滅하는 것이 서양의학의 특징이라면 밀과 가라지의 균형과 더불어 선을 상징하는 밀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한의학의 특징입니다. 모든 병은 균형과 조화가 깨졌을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선의 역량 강화를 위해 부단한 회개를 비롯한 온갖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수행이 절대적입니다. 죽을 때까지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수행자로, 구도자로,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영적 훈련병으로 사는 것입니다.

 

밀도 가라지도 고정 불변이 아닙니다. 변질과 변절로 밀도 가라지가 될 수 있고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와 회개와 더불어 가라지도 밀이 될 수 있는 인간의 내적현실입니다. 다음 예언자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의 신랄한 비판은 그대로 오늘날 가라지밭이 된 악한 현실을 상징합니다.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다른 신들을 따라 간다.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우리는 구원받았다.’ 말할 수 있느냐? 너희에게는 네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도 이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참으로 반복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요 여전히 무성한 가라지밭의 현실입니다. 급기야 기후재난의 위기로 지구와 인류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어도 대비책은 너무나 미미합니다. 이래선 종말의 파국을 면할 수 없습니다. 답은 하나 삶의 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구체적 회개의 실행입니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주님의 성전에 전적으로 맹목적으로 의탁할 것이 아니라, 거짓 프레임들에 속을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의 길과 행실을, 탐욕과 낭비의 삶의 방식을,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참으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것이 죄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숲도 보고 나무도 보듯, 전체를 보면서도 지극히 섬세하며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읽은 클래식 기타리스트 허원경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납니다.

 

“아버지 허병훈은 마치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기타에 몰두했다. 거의 매일 새벽까지 연습하셨는데, 뭔가 벽에 부딪혔을 때는 며칠을 고민해 답을 찾는 모습을 보았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나 조성진의 연주를 보면 굵은 선 안에 굉장한 섬세함이 깃들어 있다. 거장의 연주에는 그런 모순된 것들이 함께 들어있다. 그것을 모두 가져야 진정 음악인이라 할 수 있겠다.”

 

참으로 각자 분야에서 삶의 달인이 될 수 있도록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살아야 좌파도 우파도 아닌 공존의 지혜와 통합, 평화의 그리스도파가 되어 살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시편(84,6과 8ㄱ.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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