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4.연중 제20주일                                            예레38,4-6.8-10 히브12,1-4 루카12,49-53

 

 

 

하느님의 ‘살아 있는 보물 창고’ 수도공동체

-참 좋은 도반들-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시편84,10-11ㄱ)

 

주님의 뜨락 수도원입니다. 어제는 참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색다른 깨달음 때문입니다. 수도공동체가 순간 “살아 있는 보물 창고”라는, 또 수도형제들이 “참 좋은 도반들”이란 깨달음에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오늘 주일 강론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또 여러 수녀님들이 내일 성모승천대축일을 앞두고 고백성사로 영혼을 깨끗이 한 사실이, 오랜만에 정성가득 담긴 성전의 꽃꽂이가, 또 저녁성가연습시 성모승천 대축일 전례 노래들이 흥겹고 행복하게 했습니다.

 

제 주특기는 자랑입니다. 자랑은 팔불출이라 하는데 제 하느님 자랑, 교회 자랑, 전례 자랑, 성인 자랑, 형제 자랑은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기에 팔불출엔 속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살아 있는 보물 창고” 수도공동체에 속한 “참 좋은 도반들”에 대한 자랑입니다. 하나하나 “신의 한 수” 같은 도반들입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컴퓨터 사용이 익숙치 않아 도움을 청했을 때, 한 “컴퓨터 도사”인 형제가 말끔히 해결해 주었고, 문제가 있을 시 걱정을 했더니 언뜻 스치던 윗 대답이 참 마음 흐뭇하고 든든하게 했습니다.

 

“눈만뜨면 일입니다. 보이는게 일이요, 끝없는 일입니다.”

어제는 멀리 온종일 외출하여 감곡에까지 가서 복숭아를 가져온 형제가, 토요일 오후에도 일하고 돌아왔기에 “일하고 왔느냐?”에 대한 화두같은 위 대답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앞서 형제가 “컴퓨터 도사”라면 이 형제는 “일의 도사”입니다. 수도원내 다방면에 걸쳐 행하는 무수한 일들을 보면 절로 그 일눈에 경탄하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어느 방면에 도사의 경지에 이른 수도형제들이요, 그리하여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인 수도원이 “참 좋은 도반들”로 가득한 “살아 있는 보물 창고”임을 감사로이 깨닫고 행복했습니다. 

 

또 엊저녁 오랜만에 길게 참석한 공동휴게 시간 역시 사랑의 소통시간에 “살아 있는 보물 창고”임을 깨닫고, 또 성가연습시 늘 부르던 내용들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아 행복했습니다. 새삼 행복도 은총의 발견임을 깨닫습니다. 성가연습시 새롭게 와닿은 내용은 전례 자랑이 되겠습니다. 모두가 노래로 흥겹게 부른 찬미 감사기도입니다.

 

“어느덧 새벽해도 꺼져가오니, 빛이요 영원한 빛 성삼이시여,

 복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여. 그 빛을 우리맘에 부어주소서.”

 

얼마나 아름다운 내용의 찬미가인지요! 이어지는 셋의 후렴에 이은 응송, 계응, 마리아의 노래 후렴 모두가 영혼에 큰 기쁨을 줬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화를 빌어주라.”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 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주 예수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원토록 높이 올리셨도다.”

“해뜨는데서부터 해지는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주님께 올리는 나의 기도 분향같게 하옵시고, 쳐든 손 저녁제사같게 하옵소서.”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으니, 이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하는도다.”

 

이런 은혜 충만한 내용의 전례가 삶을 만듭니다. 삶의 전례화를 통한 존재론적 변화의 정화淨化와 성화聖化이니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전례 은총의 힘이, 공동체의 힘이, 공동체를 통한 주님의 도움이, 어려움을 타개해 가는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공동체를 통한 주님이 세가지 가르침입니다.

 

첫째, “목표를 지녀라!”입니다.

아무리 구름 짙거나 비오는 캄캄한 날에도 그 배후에 빛나는 태양처럼, 우리의 영원한 희망의 태양, 사랑의 태양인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를 정확히 가르쳐 줍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면서 완성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참된 목표입니다. 세상에 사랑의 불을, 말씀의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이요,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예수님 사랑의 불이 되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예수님의 평생 내적 고뇌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 또한 받아야 할 온갖 시련과 마침내 죽음의 세례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오심 자체가 분열의 심판을 초래합니다. 파괴적 분열이기보다는 참된 평화에 이르는 과정중의 창조적 분열입니다. 참평화이신 예수님 앞에 거짓평화는 그 정체가 폭로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 자체로 인해 빛과 어둠, 참과 거짓, 생명과 죽음이 둘로 나뉘니 저절로 분열이요 이는 참평화에 이르는 과정의 잠정적 분열, 창조적 분열이니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끝없이 인내와 기다림의 믿음중에 묵묵히 잘 견뎌내면 됩니다. 참으로 늘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 목표를 바라볼 때 온갖 분열, 불화, 갈등중에도 꿋꿋히, 반듯하게 주님의 진리로, 주님의 평화로, 주님 사랑의 불로, 주님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절망하지 마라!”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입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입니다. 영어로 “Christ is alive!” 한눈에 감격스럽게 와닿던 말마디가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다!” 우리말로 번역되니 참신하게 안 와닿는 것입니다. “You are ‘the now’ of God” 한눈에 감동으로 와닿던 말마디가 “너희들은 하느님의 ‘지금’이다” 우리말로 번역되니 역시 참신하게 안 와닿으니 참 신기하네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지금’이기에 결코 절망할 수도 없고 절망하지도 않고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목표로 둔 이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절망은 불신에서 기인하는 죄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예레미야가 그 좋은 증거입니다. 참으로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절망적 사지에서 주님의 은총으로 구출되는 예레미야입니다. 저수 동굴에 빠져 여지없이 죽게된 예레미야를 주님은 에벳 멜렉을 통해 치드키야 임금을 움직여 살려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른 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죽기 전에 그를 저수 동굴에서 꺼내어라.”

 

주님을 목표로 하여 주님과 함께 사는 이에게 절망은 없다는 깨우침을 주는 실화입니다. 그러니 예레미야처럼 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사는 이에게 절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은 좋은 이웃을 통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제가 여기 불암산 기슭에 34년 동안 정주하면서 결코 절망, 원망, 실망의 삼망三望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셋째, “꾸준하라!”입니다.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 경주입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 호시우행虎視牛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오늘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잘 살았어도 도중하차하여 무너져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골인 지점을 눈앞에 두고 무너져 내리면 얼마나 허망하고 억울하겠는지요!

 

하느님은 회개한 자들의 과거는 불문에 붙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지금입니다. 지금부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요, 끝까지 골인지점을 통과할 때 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과거가 아니라 내일의 희망의 주님을 내다 보며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오늘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입니다. 역시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 갑시다.”

 

얼마나 좋은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이요 믿음의 증인들인지요! 교회가 바로 하느님의 ‘살아 있는 보물 창고’입니다. 특히 저희로 말하면 하느님의 “살아 있는 보물 창고” 수도공동체 안에 있는 살아 계신 주님이, “참 좋은 도반들”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참으로 언제 어디서나 주님 목표를 향하여 바라보며 살게 하고, 절망하지 않게 하고, 한결같이 꾸준하게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시편130,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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