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6.금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253)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학자(+258) 기념일

1코린15,12-20 루카8,1-3

 

 

섬김의 여정

-순교 영성, 파스카 영성, 섬김의 영성-

 

 

새벽 잠깨는 순간 감사의 감정이 가득했습니다. 새삼 육신의 기능에 감격했습니다. 제가 잠든 순간에도 몸은 잠들지 않고 계속 살아서 부지런히 기능을 다했던 것이며, 그러기에 제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이 그러하십니다. 묵묵히 침묵중에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부지런한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이런 감격을 노래한 최민순 신부님이 번역한 시편 121장 전문을 인용합니다. 

 

“산들을 우러러 눈을 드노라.

 어데서 구원이 내게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

 하늘땅 만드신 그 님한테서

 

 네 발이 휘둘림을 아니 버려두시리라.

 너를 지켜주시는 님 졸지 않으시리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그분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리라.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네 오른쪽의 그늘이시어라

 

 낮이면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고

 밤이면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주께서 너를 지켜 모든 액을 막으시고,

 당신이 네 영혼을 지켜 주시리라.

 

 나거나 들거나 너를 지켜 주시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러하시리라.”

 

얼마나 좋은 시편이요, 얼마나 좋은 하느님인지요! 그렇게 많이 노래했어도 이렇게 한밤중 감동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시편 그대로의 하느님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닮은 몸의 기능입니다. 그러니 어찌 부지런히 섬기며 착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메모해뒀던 깨달음도 생각났습니다.

 

“아, 죄를 짓지 말자! 육신이 병으로 무너지는 것보다 영혼의 죄로 인해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할 일이다! 약을 먹으면서 은총으로 사는 이몸, 죄를 짓지 말자.”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요 독서의 계절이자 수확의 계절입니다. 인생 가을철에 들어 선 이들에게 큰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는 하느님 마련해 주신 계절중의 계절이 가을입니다. 가을 인생에 접어든 분들, 정말 기도를 많이 하십니까? 신망애信望愛 삶의 영적 열매는 잘 익어갑니까? 봄의 꽃향기도 좋지만 잘 익어가는 가을의 열매 향기는 더 그윽하고 깊어 마음을 넉넉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요즘 가을철 배수확 때가 다가오니 배밭 산책중 익어가는 은은한 배열매 향기가 마음을 참 편안하고 넉넉하게 합니다. 그런데 까마귀와 까치의 피해가 막심합니다. 이렇게 까마귀, 까치와 나눠도 수도원 살림에 지장이 없을지, 하느님께 맡기고 그 결과를 살펴보려 합니다. 

 

1/10의 십일조는 피조물 형제에게 봉헌한다 생각했는데 농장 책임 수사님의 말은 30%를 넘어설 것이라 하니 1/10 십일조가 아니라, 3/10 십삼조 이상이 되도 수도원 살림에 지장이 없을지 결과를 ‘예의 주시(銳意 注視)’하게 됩니다. 배밭 곳곳에 까마귀와 까치들의 쪼아 먹다 떨어진 흰봉투의 배들이 즐비합니다. 

 

멀쩡하게 잘 익었다 싶어 잘 들여다 보면 손상입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배가 참 크고 둥글게 맛좋게 익어 수확하게 되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이런 성공적 인생보다는 파(破) 배같은 실패 인생이 많을 것입니다. 다윗처럼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솔로몬처럼 부패한 성인은 없다고 합니다.

 

회개(메타노니아)-친교(코이노니아)-섬김(디아코니아) 인생 여정중 우리 가을 인생 영성의 궁극의 마지막 열매는 섬김입니다. 잘 익어가는 섬김의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부패인생을 막아주는 끊임없는 회개가 동시에 이뤄져야 함을 봅니다. 회개의 여정과 함께 가는 섬김의 여정이요 이래야 섬김의 열매 풍성한 가을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파스카 영성, 종과 섬김의 영성이 있을 뿐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종과 섬김의 영성에 투신하는 것이니 결국 파스카 영성과 종과 섬김의 영성은 둘이자 하나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섬김의 여정에 섬김의 직무, 섬김의 훈련, 섬김의 권위, 섬김의 영성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요.

 

참 영성의 최종 잣대가 사랑의 섬김, 겸손한 섬김, 한결같은 섬김입니다. 베네디도 성인도 당신 제자들인 수도승들에게 주신 규칙서에도 섬김이란 말마디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수도승의 삶은 온통 섬김의 삶으로 규정됩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깁니다. 

 

그대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복음인 섬김의 삶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이웃을 섬김은 바로 주님을 섬김으로 직결됩니다. 그리하여 당신 수도승의 공동체를 섬김의 학교로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교를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

 

극단의 광적狂的 상태를 경계하는 중용의 대가, 분별의 지혜를 지닌 현자가 바로 성 베네딕도입니다. 섬김을 핵심 덕목으로 제시합니다. 비단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모든 교회 공동체가 섬김의 학교 공동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가 그 모범입니다. 정말 섬김의 학교,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졸업이 없는 평생 섬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평생 학인인 우리들입니다. 기도와 사랑에 영원한 초보자이듯 섬김에서도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섬김의 공동체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고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고 있었다.”

 

참으로 디아코니아 섬김의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이에 필히 전제되는 바 메타노니아 회개의 공동체요, 코이노니아 친교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온통 바오로 사도의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열렬한 믿음의 고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죄안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순교 영성’은 죽고 부활하신 주님의 ‘파스카 영성’과 ‘섬김의 영성’에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바로 이의 결정적 모범이 순교자들입니다. 평생 파스카의 삶에 섬김의 영성을 살다가 순교한 성인들입니다. 그래서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라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3세기 동시대, 친구 관계의 두 순교 성인을 기념합니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입니다. 두분의 영적 우정도 참 아름답고 깊습니다. 치프리아노 주교가 고르넬리오에게 보낸 아름답고 품위있는 깊은 우정의 편지를 일부 나눕니다.

 

“나 치프리아노는 고르넬리오 형제께 문안드립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는 귀하께서 신앙을 용맹히 또 영광스럽게 증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귀하께서 보여준 영예로운 신앙 고백의 소식을 큰 기쁨으로 접수하고 우리 자신마저도 그 공로와 그 영예의 동참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또 한마음 한뜻을 이룬다면, 동료 사제가 칭송받는 것을 보고 마치 자기가 칭송받는 듯 즐거워하지 않을 사제가 있겠습니까? 또 형제의 기쁨을 보고 함께 기뻐하지 않을 형제가 있겠습니까?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주님은 당신의 섭리로써 시련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우리에게 훈계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우애에 대한 배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시련에 대해 필요한 권고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상호 사랑으로 서로 도와주며 인내하도록 모든 백성과 함께 단식과 밤샘기도 안에 항구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우리를 용감히 서있게 하고 인내하도록 도와 주는 천상의 무기들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두 영적 친구 순교자 사이의 아름답고 깊은 우정의 사랑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주님의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을 충실히 한결같이 섬겼던 두 순교성인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순교적 삶에, 파스카의 삶에, 섬김의 삶에 항구할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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