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0.화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1821-1846)와 

성 정하상 바오로(1795-1839)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지혜3,1-9 로마8,31ㄴ-39 루카9,23-26

 

 

순교적 삶, 주님의 전사

-희망의 이정표-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거두리라.”(시편126,5-6)

 

9월 순교자 성월에 맞이하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은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의무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날이 되면 저는 19년전 2003년 9월 20일 미국 미네소타주 소재한 성 요한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머물 때, 미사후 축하 받았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많은 미국 수도자들로부터 한국 순교 성인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인사였습니다. 참으로 하나인 교회, 하나인 믿음의 가톨릭교회 공동체임을 절감한 날이었고, 한국 순교 성인들이 참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19세기 박해시대, 한국에서 1만여명이 순교하기는 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매일미사책에 나온 영문으로된 오늘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짧게 요약된 소개는 전 세계 교회 사제들이 읽을 것이며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오늘 축일은 19세기 수 차례에 걸쳐 목숨을 바친 한국 순교자 103명을 기념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첫 한국 사제였고, 성 정하상은 평신도 선교사였다. 3명의 주교와 7명의 사제들 외에, 전 그룹이 모든 연령층에 걸친 영웅적 평신도들로 이루어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에 사도적 여행중 이들을 시성하였다.”

 

순전히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용단에 의해 교황청 내의 반대를 물리치고 성 베드로 대 성전에서 시성식의 전통을 깬 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과 같은 각별한 은총의 시성식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장충동 분원에서 청원자 신분으로 공부할 때 였고 여의도 행사장에 참석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리하여 한국은 세계 가톨릭 교회내에서 제3위의 성인 숫자를 보유하게 되었고, 즉시 연상된 것이 산티아고 순례자 숫자였습니다. 2014년 제가 산티아고 순례시 매년 한국 순례자들은 1위내지 3위 사이를 맴돌고 있었고, 알베르게 숙소마다 설명문은 유럽어 아닌 말은 유일하게 한국어 하나뿐이었습니다.

 

참 대단한 보석같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성인들 숫자와 산티아고 순례자 숫자의 순위가 비슷한데서 한국인들의 구도求道적 열정을 짐작하게 합니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성지순례 코스의 순교유적지를 봐도 한국은 전국토가 거룩한 성지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퇴장 성가시 부를 성가 283장 최민순 신부 작사, 이문근 신부 작곡의 순교자 찬가는 언제 불러도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합니다. 

 

1.“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높으신 영광에 불타는 넋이여.

   칼아래 스러져 백골은 없어도, 푸르른 그 충절 찬란히 살았네.

   무궁화 머리마다 영롱한 순교자여, 승리에 빛난 보람 우리게 주옵소서.”

 

1절만 인용했습니다만, 마음 같아서는 3절까지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내용에 곡입니다. 가능하면 오늘 순교성인 대축일에 3절까지 꼭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용사로, 주님의 전사로 살다가 전사戰死한 우리 순교자들은 우리를 부단히 분발케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만25세 꽃다운 나이에 순교의 월계관을, 성 정하상 바오로는 만44세 한창 중년 나이에 승리의 월계관을 받았고, 저는 이분들보다 훨씬 오래 살고 있으니 더욱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순교자들은 우리 모두 나태함을 분연奮然히 떨처버리고 벌떡 일어나 주님의 전사로서 늘 새롭게 영적전투의 파스카 삶을 살게 합니다. 얼마전 노인들을 돌보는 자매로부터 들은 내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90세 초반의 미신자 할머니라 합니다.

 

“갈 길을 모르겠어, 어디로 갈지 갈 길을 모르겠어.”

 

죽음을 예견하지만 어디로 갈지 답답하고 막막하다는 고백이었다는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중 목적지를 가리키던 곳곳에 있던 무수한 이정표가 생각납니다. 우리의 순례 여정중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삶의 이정표, 희망의 이정표는 얼마나 절대적인지요! 삶의 이정표가, 희망의 이정표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잊고, 혼란 중에 갈 길을 잃고 뿌리 없이 방황하는, 표류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바로 주님을 믿는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들에게 매일 미사보다, 또 오늘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는 순교성인들보다 더 좋은 삶의 이정표, 희망의 이정표도 없을 것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맞이하는 오늘 한국 순교 성인들 대축일에 우리는 순교적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아름답게 한결같이 순교적 삶에 항구할 수 있을 까요? 

 

무엇보다 사랑입니다. 주님께 대한 항구한 샘솟는 사랑이 자발적 기쁨으로 항구한 순교적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의인들의 운명에 대해 말합니다만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의로운 이들에 대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고난중에도 내적평화를 누리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으니, 바로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과 믿음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전사인 우리들은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들임을 깨닫습니다. 여기 세 개의 대신덕對神德 신덕, 망덕, 애덕에다 사추덕四樞德인 지덕(현명), 의덕(정의), 용덕(용기), 절덕(절제)가 더해진다면 최상급의 주님의 전사에 아름답고 훌륭한 순교적 삶이 될 것입니다.

 

영적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대가 없는 죽어야 끝나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들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항구히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열정의 사랑과 함께 가는 마음의 순결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언제 읽어도 백절불굴의 힘을 줍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것도, 저 깊은 것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여 믿고 알기에 비로소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하고도 한결같은 순교적 사랑이, 순교적 삶이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사랑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 표현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순교적 삶을 살라 말씀하십니다. 믿는 이들 예외없이 적용되기에 ‘모든 사람’이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구원의 길은, 생명의 길은, 진리의 길은, 참 삶의 길은, 성인이 되는 길은 십자가의 길 하나뿐입니다. 우리 삶의 이정표, 희망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바로 언제나 우리 앞서 가시는, 우리와 함께 가시는 영원한 주님이자 스승이자 도반이신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이 사랑의 힘이 이기적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운명의 십자가를, 책임의 십자가를 지고, 하루하루 날마다 끝까지 자발적 기쁨으로, 형제들과 더불어, 주님을 따르게 합니다. 각자의 고유하고 유일한 십자가는 천국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순교적 삶에 우울하거나 어둡고 심각한 것은 절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기쁨, 평화와 희망, 겸손과 지혜가 넘쳐야 합니다. 온갖 유혹의 탐욕, 분노, 질투, 나태, 허영, 교만, 원망, 절망, 실망은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를 가능하게 하며, 더불어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합니다. 제 사랑하는 좌우명 고백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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