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5.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아모6,1ㄱㄴ.4-7 1티모6,11ㄱㄷ-16 루카16,19-31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영성

-중심, 기도, 회개-

 

 

어제 형제와 주고 받은 대화시 저의 재치있는 대답에 만족했습니다. 두차례에 걸친 대답이었습니다.

“여기 수도원 개들은 참 순하네요!”

“사랑을 많이 받아서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람은 물론 생명있는 모두가 사랑받을수록 본연의 자연스럽고 사랑스런 제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강의후 질문하겠다는 분에게 한 답변입니다. 답변할 상황도 아니었고, 직감적으로 질문을 위한 질문이란 예감이 들어 즉시 답하고 형제도 흔쾌히 받아드렸습니다.

“답은 강의록과 기도문에 있습니다. 잘 읽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 잠깨어 방안의 전등불을 켰을 때 방안이 밝고 따뜻해 참 좋았습니다. 날씨가 약간 쌀쌀해져 방에 불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새삼 마음의 방을 생각했습니다. 예전 겨울철 피정을 안내했을 때 피정집 방이 밝고 따뜻했을 때 공통적으로 누구나 좋아했습니다. 방은 따뜻하고 창도 빛이 잘 들어와 밝아야 하듯 마음의 방도 그래야 함을 오늘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과연 여러분 마음의 방은 밝고 따뜻한지요? 

과연 마음의 방은 마음의 창문을 통해 은총의 빛이 잘 들어오고 있으며, 마음의 방은 주님의 사랑으로 따뜻한지요?

 

이래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영성”이 절실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때 각자의 마음의 방은 그리스도의 빛이 환히 밝힐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의 방을 따뜻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토요일은 모처럼 참 분주한 날이었습니다. 오전에는 서울대교구 하늘땅물벗 20명 형제자매들의 하루 피정중 오전 강의가 있었고, 오후에는 청담동 성당 ‘기쁨의 모후’ 레지오 팀 8명을 위한 피정 강의와 더불어 고백성사가 있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베네딕도회 영성-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영성-”, 이었고, 강의 전후로는 제 자작 ‘행복기도문’과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기도문을 함께 낭송했습니다.

 

특히 강조한 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영성’이었습니다. 참으로 베네딕도회 영성은 유행을 타지 않는 믿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영성임을 강조했습니다. 

 

오늘은 ‘제108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이며 교황님의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 미래 건설하기’란 주제의 담화문 내용도 참 깊고 좋았습니다. 교황님의 넓고 깊은 시야는 그대로 하느님의 시야를 반영한다 싶었습니다. 감동적인 기도문을 나눕니다.

 

“주님, 저희를 희망의 전달자가 되게 하시어,

어둠이 있는 곳에 주님의 광채가 빛나고,

절망이 있는 곳에 미래에 대한 확신이 다시 싹트게 하소서.

 

주님, 저희를 주님 정의의 도구가 되게 하시어.

배척이 있는 곳에 형제애가 꽃피고,

탐욕이 있는 곳에 나눔의 정신이 자라나게 하소서.

 

주님, 저희를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

또한 변방에 사는 모든 이와 함께

하느님 나라의 건설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희가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게 하소서.”

 

얼마전 카자흐스탄 사도적 방문을 마치고 귀국중 비행기에서의 관례적인 기내 회견 내용에서 이민에 대한 교황님의 답변이 신선했습니다.

 

“오늘날 유럽 이곳은 인류의 가장 큰 묘지입니다. 서방이 사람들을 필요로 할 때 환영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겨울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에는 빈 마을이 많습니다. 그곳에는 소수의 노인들만 있고 그 외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는 이민자를 환영하고, 동반하고, 촉진하고, 통합해야 한다는 원칙과 이민자를 포함하는 정책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서구는 이주민의 나라입니다.”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나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중심의,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영성이 얼마나 절박한 보편적, 세계적 영성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깊고 넓은 시야를, 하느님의 시야를 지녀야 할 작금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첫째, 삶의 중심의 회복이요, 그리스도 중심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자리에 또아리 틀고 있는 온갖 우상들을 과감히 퇴치하고 그리스도 중심,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심 자리에 위치한 탐욕이 문제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은 돈이나 재물의 우상이 아닌 하느님이, 그리스도가 자리잡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참 좋은 가르침입니다. 부자는 완전히 탕욕의 노예가 되어있습니다. 사람이라 하지만 사람이 아닌, 재물에 중독되어 자기속에 갇힌 자기 감옥의 수인, 폐인, 괴물입니다. 하느님 중심이 아예 없기에 온통 관심사는 재물이요 자족의 삶에 문옆의 라자로 이웃과는 완전히 무관한 삶입니다. 

 

둘 사이에는 너무 큰 구렁이 있어 건널 수 없었다 하니 그 보이지 않는 단절의 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깨닫습니다. 하늘 향한 문도 닫혔고, 이웃간의 문도 완전히 닫힌 고립단절의 삶,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문제는 부자가 이런 현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재물의 부에 중독되면, 하느님 중심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 지, 마음이 양심이 썩을 수 있는지, 오늘 제1독서 아모스서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찌 사람이 이럴 수 있겠는가 하겠지만 오늘날도 이런 부자들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없이 사는 이들, 마음 놓고 사는 자들!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 먹는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나라가 망하든 전혀 무관한, 공동체 의식이나 사회의식, 역사의식이  전무한 괴물같은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중심을 잃고 탐욕에 노예되면 십중팔구 불치의 괴물이 됩니다. 

 

둘째, 기도가 답입니다. 

끊임없는, 간절하고 항구한 한결같은 기도로 하느님 중심을 회복하고 견고히 해야 합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이, 생명과 사랑의 소통이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날로 깊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부자나 아모스서의 부자는 기도가 없습니다. 찬미와 감사의 기도도 완전 실종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과 완전 단절입니다.

 

만나지 않으면 사람관계도 절로 멀어지듯 하느님도 예수님도 기도를 통해 만나지 않으면 절로 멀어져 완전히 무관한 남남이 됩니다. 믿음과 기도는 함께 갑니다. 믿음도 훈련이요 기도도 훈련입니다. 도대체 영성생활에 훈련 아닌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영적 삶을 추구하기를 권하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기도의 사람은 바로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바로 기도의 힘, 믿음의 힘, 하느님의 힘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평생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해야 하는 주님의 전사입니다. 기도의 전사, 믿음의 전사입니다. 결코 분투의 노력과 훈련이 없는 값싼 은총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 드릴 분인 하느님의 모습이 바오로 사도의 기도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그리하여 제가 호흡에 맞춰 늘 바치길 권하는 화살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삼위일체 하느님을 숨쉬며 바치는  기도영성훈련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오소서, 주 하느님!”, 

“오소서, 주 예수님!”. 

“오소서, 주 성령님!” 하고 

“당신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신망애信望愛가, 당신의 진선미眞善美가 되게 하소서.”

 

셋째,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회개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제1독서 아모스서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오늘 우리의 회개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재난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과연 우리 주변에 함께 나눠야 할 라자로는 없습니까?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끊임없이 하느님께 돌아가 만나야 하는 회개의 여정입니다. 인생 허무와 탐욕의 무지에 대한 답도 회개뿐입니다. 회개를 통한 순수와 열정, 겸손과 온유, 자비와 지혜의 선물입니다. 감사와 기쁨, 평화와 희망도 회개의 선물입니다.

 

제1독서 아모스서 후반부 말씀도 회개를 촉구하며 복음의 후반부 말씀도 경청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의 말씀과 계명을 경청하고 회개하는 일이 구원에 화급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영성을 굳건히 해주시고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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