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7.화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1581-1660) 기념일 

욥기3,1-3.11-17.20-23 루카9,51-56

 

 

영적 승리의 삶

-우리는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어제 저녁성무일도시 평범한 응송과 마리아의 노래 첫구절이 새롭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내 영혼을 고쳐 주소서, 당신께 죄를 지었나이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참으로 육신에 앞서 우선적으로 건강해야 할 영혼입니다. 영혼이 육신을 끌고 가야지 영혼이 육신의 욕망에 끌려가선 안됩니다. 죄로 인해 영혼이 상처입었을 때 즉각적인 회개를 통한 주님의 용서가 영혼 건강에 필수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입니다. 영혼 건강을 위해 평소 하느님 찬송, 찬미, 찬양을 위한 자발적 항구한 노력과 실천이 제일입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혼란한 시대, 많은 영혼들이 죄로 인해 병든 시대입니다. 요즘 정치권에는 지록위마謂鹿爲馬 고사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뜻인즉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얼토당토않은 것을 우겨서 남을 속이려 할 때 쓰는 말이며, 윗사람을 속이고 권세를 휘두르는 자들을 비판할 때 쓰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진실의 승리가 아닌 거짓이,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진실의 승리입니다. 지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카차흐스탄 사도적 방문후 귀국중 기내에서의 인터뷰중 다음 정치에 관한 대목에 공감했습니다.

 

“정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예술입니다. 정치는 고귀한 직업입니다. 저는 교황 비오 12세인지 성 바오로 6세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정치는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의 하나’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낮은 수준의 정치가 아닌, 높은 수준의 정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정치는 국가를 무너뜨리고 궁핍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참으로 각계 각층 영적으로 뛰어난 진리의 사람들이 많이 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야 말로 진리의 사도, 빛나는 영적승리의 상징입니다. 87세 고령에도 날마다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서 주님의 전사로서의 영적승리의 삶을 배웁니다. 

 

“성가정이 너희에게 영감을 불어 넣도록 하라”, 여자 카푸친회 수녀님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샬롬(평화) 공동체의 젊은이들이여, 계속 창조적이 되십시오.” 로마 베드로 광장에 모인 샬롬(평화) 공동체 형제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세상 뉴스에 식상하다가도 교황님 홈페이지의 뉴스에서 신선한 활력을 얻습니다.

 

오랜 시간 말씀 묵상하던중 떠오른 강론 주제는 “영적승리의 삶-우리는 주님의 전사들입니다-”였습니다. 가까이 두고 한참 찾다 발견한 느낌에 참 반가웠습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그러나 영적 삶의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단조롭고 따분한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반복, 놀라운 반복, 거룩한 반복입니다. 영적승리의 삶을 생각하면 수차례 인용했던 24년전 자작시 담쟁이가 생각납니다. 24년후 오늘 강론에 인용하리라곤 당시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 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 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정주의 제자리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하늘 향해 타오를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이다”-1998.6.3.

 

지금도 거기 그 자리에는 해마다 하늘 향해 담벼락 타오르는 담쟁이들은 여전합니다. 우리의 하루하루 영적전쟁의 삶도 이러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 사랑의 전사, 진리의 전사, 지혜의 전사등 끝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제1독서의 욥의 영적전쟁중 자기와의 싸움이 참 치열합니다. 어제 욥의 첫째 시련에 이어 설상가상 새로운 시련의 연속입니다. 오늘 말씀전에 나오는 욥의 아내와 욥과의 대화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흠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

“당신은 미련한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욥2,9-10).-

 

욥을 방문한 세 친구들 역시 이레 동안 밤낮으로 그와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으니 그의 고통이 너무도 큰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욥의 넋두리를 통해 그의 고통이 어떠했는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말 실감나는 욥의 독백의 탄식이요 기도처럼 들립니다. 생일을 저주하는 욥이요, 차라리 죽기를 소망하는 욥이요, 왜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가 토로하는 욥입니다.

 

“이제 탄식이 내 음식이 되고, 신음이 물처럼 쏟아지는구나.”

 

고백에서 보다시피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정말 자기 불행과의 처절하고 치열한 영적전투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끝까지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았으니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34년 불암산 기슭 요셉수도원에 정주하면서 욥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 대한 원망, 절망, 실망의 삼망은 전혀 없었음에 감사합니다. 

 

다만 답답하고 막막할 때는 하느님을 바라보듯 늘 거기 그 자리의 하늘과 불암산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마 요셉 수도원에서 저처럼 불암산과 그 배경의 하늘을 많이 바라본 수도형제도 없을 것입니다. 34년 하루하루 날마다 수없이 하늘과 불암산을 바라보며 종신불퇴終身不退의 정신을 새로이 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다음 복음의 장면에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의 씩씩하고 용감하고 지혜로운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파스카의 구원이 이뤄질 궁극의 목적지 예루살렘을 향하기 전 영적 전의를 새로이 하는 주님입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이러한 원대한, 확실한 목표가 그대로 분별의 잣대가 됩니다. 본말전도의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성급한 다혈질의 야고보와 요한 제자는 길을 막는 사마리아인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시냐고 주님께 물었고, 주님의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영적전투의 현장에서 지도자의 신속한 분별의 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습니다.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충돌을 야기하지 않고 지혜롭게 피해 가는 주님의 평화의 전사, 예수님입니다. 성인들보다 더 좋은 하느님에 대한 증거는, 파스카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없습니다. 똑같은 하느님은, 파스카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성인들을 통하여, 오늘 우리를 통하여 살아 활동하십니다. 주님은 날마다 새벽부터 제게 넘치는 은총을 베푸시어 강론을 쓰게 하십니다.

 

오늘은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입니다. 16-17세기에 걸쳐 79세 천수를 누리며, 참으로 치열한 영적승리의 삶으로 주님께 월계관을 받은 프랑스 출신의 주님의 전사, 사랑의 전사 성 빈첸시오입니다. 성인의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위대합니다. 

 

성인은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와 ‘선교사제회’를 창설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주님’이라는 말을 그대로 온몸으로 실천했습니다. 성인의 영성은 ‘활동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길’로 요약되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성인은 어린이,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등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면서 그들 모습으로 육화한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1660년에 선종한 성인은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885년 교황 레오 13세에의 의해 모든 자선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성인의 영성을 이어 받은 사랑의 딸회, 사랑의 시튼 수녀회,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와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서로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결론과 같은 물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답은 하나, 주님의 전사, 즉 평화의 전사,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욥이, 성 빈첸시오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날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형제들과 함께 영적승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닌 영적 전우들과 더불어, 죽어야 끝나는 영원한 현역으로서의 영적전쟁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영적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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