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목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1207-1231) 기념일

묵시5,1-10 루카19,41-44

 

 

찬미의 여정

-슬픔은 기쁨의 찬미로-

 

 

오늘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그날 성인들의 행적은 꼭 챙겨보고 싶습니다. 똑같은 성인은 없습니다. 각자 고유한 삶의 제자리에서 한결같이 하느님 중심의 삶에, 사랑과 믿음에 항구했던 성인들입니다. 기념하고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 성인의 될 것을 바라는 주님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성인이 되라 불림받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좌표가 되는 성인들입니다. 삶의 허무와 무의미에 대한 답이 바로 성인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성인답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진정 살아있는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영원한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는 성인들입니다.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가 아닌 어떻게 참으로 살았느냐가 관건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녀 엘리사벳은 고작 만24세 살았습니다. 성인들의 축일미사를 봉헌할 때 마다 생몰生沒연대를 살펴보며 꼭 제 나이와 비교해 보곤 합니다. 저는 무려 성녀보다 세배 이상을 살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비교가 더욱 분발하여 살게하는 동기가 됩니다. 엘리사벳 성녀의 생애를 대략 읽어보니 참으로 기구하고 불우한 삶이었습니다.

 

공주로 태어났지만 고작 4세 어린 나이에 정략 결혼으로 튀링겐의 궁정으로 보내졌고,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헤르만이 죽자 헤르만 1세는 둘째 아들 루드비히와 약혼시켰고, 헤르만1세가 죽자 왕에 즉위한 루드비히는 성녀 엘리사벳과 결혼하니 이때 신랑의 나이는 21살, 성녀의 나이는 14살입니다.

 

이어 남편인 루드비히가 십자군에 가담하여 출정했다가 전염병으로 죽자, 성녀의 두 자녀는 다른 곳으로 보내지고 성녀는 자신의 유산이 헤센의 마르부르크 성에서 쫓겨납니다. 성녀는 그동안 작은형제회 독일의 첫 회원인 로데거의 영적지도를 받다가 이제부터는 콘라트의 영적지도를 받으면서 작은형제회의 제3회원이 됩니다. 그 이후 성녀의 삶에 대한 감동적인 묘사입니다.

 

‘성녀는 유산을 정리하여 프란치스코의 자선병원을 세우고 스스로 병든자, 특히 가장 혐오스러운 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성녀는 콘라트의 영적지도를 받으며 성덕을 위한 자아포기의 길에 헌신하였고, 누구나 놀랄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싸 주었다. 성녀는 선종 4년전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마르부르크 성으로 돌아갈 허가를 받았고, 자신의 아들에게도 백작을 승계 시킬 수 있었다.’

 

새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삶에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읽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독일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고,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1231년 11월17일 마르부르크에서 선종했지만, 오늘날 작은형제회 재속 제3회원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선종 다음해 성녀의 영적지도 신부였던 콘라트는 자신이 쓴 편지에서 성녀의 영적 풍요로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 여인만큼 관상에 깊이 젖어 들어간 이를 일찍이 본적이 없다. 수사들과 수녀들이 여러 번 목격했듯이 그녀가 기도의 은밀함에서 나올 때 그 얼굴은 광채로 빛났고 그 눈에서 태양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성녀는 선종후 자신이 세운 성 프란치스코 병원 성당에 묻혔고, 그의 무덤을 찾는 순례자가 늘어나고 무덤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성녀에 대한 시성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선종 4년후 1235년 5월28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성녀를 성대히 성인품에 올립니다. 

 

참으로 기구하고 불우한 환경에서도 한결같이 하느님 중심의 삶에 헌신했던 성녀를 하느님께서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새삼 성녀의 기구하고 불우했던 파란만장의 삶을 공부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인생임을, 결코 절망하여 자포자기해서는 안되는 인생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감사의 삶뿐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 행복기도중 한 단락을 다시 나눕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주님을 만나니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고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파스카의 하루이옵니다.”

 

그대로 엘리사벳 성녀의 삶도 이러했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찬미의 수도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찬미의 삶이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 파스카 신비의 삶을 살게 합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찬미의 여정입니다. 주님을 찬미할 때 슬픔은 기쁨의 찬미로 바뀝니다. 성서에서 ‘웃었다’, ‘울었다’라는 말마디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울었다는 표현이 오늘 복음과 독서에 나오니 참 반갑습니다. 오늘 묵시록에서 요한은 일곱 번 봉인된 두루마리를 펴겨나 그것을 들여다 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슬피 울었고 이어지는 천상 원로의 위로입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는 엎드려 새노래를 부릅니다. “어린양”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가 되시었으니 그대로 파스카의 신비가 실현된 것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새노래는 우리가 평생 매주 화요일 저녁성무일도때 마다 바치는 찬미가입니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사옵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나이다.

 당신은 죽음을 당하셨고, 당신 피로 값을 치루어,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셔서 하느님께 바치셨나이다.

 당신은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어, 

 우리 하느님을 섬기는 제관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땅위에서 다스리나이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나이다.”(묵시5,9-10)

 

강론을 쓰면서 이렇게 묵시록 찬미가를 깊이 공부하기는 생전 처음입니다. 이 새노래보다 파스카의 신비를 잘 요약한 찬미가도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런 파스카 어린양의 미사은총이 우리를 찬미의 사람으로, 기쁨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새삼 미사시 어린양이신 주님 성체를 모시기전 다음 사제의 초대 말씀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보라,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 받은 이는 복되도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참으로 이색적입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며 우시는 예수님입니다. 도대체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웃음이나 울음은 볼 수 없었는데 여기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울음을 만납니다. 오늘 제1독서 묵시록에서는 애제자 요한이 슬피 울었는데,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크게 우시며 탄식하듯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아,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이어지는 예루살렘이 초토화될 재난의 예고입니다. 바로 재난의 원인을 복음 말미에서 밝히십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의인화된 예루살렘이 상징하는바,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슬픔으로 울으시는 주님께서 기쁨으로 웃으시도록, 평화의 주님을 모시고,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주님을 모시고 우리 모두 찬미와 감사의 삶을, 영적승리의 파스카 신비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화답송 후렴 시편 149장 ‘기뻐하라 이스라엘’ 첫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시편149,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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