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8.연중 제2주간 수요일(일치주간1.18-1.25)                 

히브7,1-3.15-17 마르3,1-6

 

 

 

배움의 여정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과제이다-

 

 

 

교회는 오늘 1월18일부터 1월25일 성 바로오 사도의 회심 축일까지 일치주간으로 지냅니다. 올해 주제는 “선을 행하고, 공정을 추구하라(Do good; seek justice)”, 이사야서 1장17절 앞부분 말씀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일찍 정해 놨습니다. ‘배움의 여정-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과제이다-’라는, 제가 자주 사용했던 좋아하는 제목입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좌우명 고백 기도시 6섯째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여전히 공감하고 마음 중심에 담고 살아가는 수도공동체에 속한 주님의 전사, 주님의 학인, 주님의 형제로서의 신원이자 정체성입니다. 참으로 죽어야 제대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요, 죽어야 졸업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학인으로서의 신원임을 참 많이도 나눴습니다.

 

이 셋중 오늘은 두 번째 영원한 주님의 학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싶습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동시에 평생과제입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에 항구히 충실함으로 은총의 선물을 완성해가야 하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배움의 여정에 있어 초발심의 겸손한 순종과 섬김의 자세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이런 수도승의 신원을 요약하는 두 필수적 말마디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러니 결코 지치지 말아야 할 것이 평생 배움에 대한 사랑입니다. 날마다 일기쓰듯 하는 강론입니다. 어제 잊지 못할 세 경우를 통해 저는 참 많이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배움의 여정은 그대로 깨달음의 여정이요, 이런 여정에 충실함으로 날로 자유로워지는 삶입니다.

 

1.끊임없이 불도佛道를 찾아 나섰던 구도자求道者 선재(善財))라는 이름을 가진 꽤 커다란 착하고 순한 개에 관한 일화입니다. 얼마전부터 수도원 개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마치 개들의 맏형처럼 보이는 크고 흰 개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바로 이웃 불암사의 개라는 것입니다. 불암사 절에서는 잠만 자고 낮에는 요셉 수도원의 개들과 하루종일 사이좋게 놀다가 밤에는 절로 간다는 사실을 개를 돌보는 자매들이 밝혀 낸 것입니다. 

 

아마 외로워서 동료 개들을 찾아왔는가 봅니다. 이런 평범한 사실에서도 새삼 배워 깨닫게 되는 수행생활중 더불어의 도반들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이에 저는 기발한 의견을 첨부했습니다. 

 

“아마 선재라는 불암사의 개는 전생에 베네딕도회 수도자였던 듯, 옛집 수도원이 그리워 날마다 찾지 않았나 싶습니다.”

 

2.제 손자뻘 되는 아이가 그동안 궁금했었는데 한동안 방황하다가 해군에 자원입대하여 해군 조리병으로 근무하던중 제대를 앞둔 얼마전 해군에서 있었던 조리 경연대회에서 최우수 상을 받았다며 조카가 상장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이제 방황은 접고 제대하면 제 좋아하는 대학 ‘외식조리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할 것이라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이런 평범한 사실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누가 뭐래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훌륭한 삶이라며 제 손주뻘 되는 아이를 아낌없이 격려했습니다.

 

3.오랫동안 수도사제로 생활하던 한 형제의 퇴회소식과 더불어 사제직으로부터도 떠나게 되었다는 충격적 소식을 접하고 잠시 망연자실했습니다. 한시도 방심하면 안되는 수도성소의 길임을 새롭게 배웁니다. 새삼 주님께 대한 한결같은 사랑의 분투의 노력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어제 미사중 본기도 마지막 부분과 얼마전 선종하신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임종어를 배우는 마음으로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믿는 이들에게 평생 배움의 여정에서 주님께 대한 사랑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했던 아드님 예수님이요 그분의 자비와 지혜가 바로 여기서 기인함을 깨닫습니다. 

 

어제에 이어 예수님의 자유로운 처신이 인상적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하느님 마음에 정통했던 것이며 두려움없이 소신대로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식일법이 아닌 사랑의 법이란 잣대로 보면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본질을 직시하라는 물음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질책성 물음 안에 자명한 답이 있으니 적대자들은 묵묵부답할 뿐입니다. 새삼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며 예수님 자신임을 배우게 됩니다. 분별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신 예수님은 어떻게 처신하셨을까 깊이 생각하면 저절로 올바른 분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신비의 사제, 멜키체덱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 히브리서 내용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대사제 예수님에 관해 더 깊이 배우며 이해하게 됩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입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은연중 하느님 아버지께 뿌리를 둔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암시처럼 읽힙니다. 예수님 역시 오늘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시편110,4ㄴㄷ) 라는 화답송 시편을 통해 자신의 신원을 자주 확인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이런 이해와 더불어 초대 교회 신자들의 ‘정의의 임금’, ‘평화의 임금’으로 상징되는 영원한 대사제 파스카 예수님에 대한 이해 지평도 더욱 확장되었을 것이며 주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도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열린 자세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바리사이 적대자들인 무지의 닫힌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배움의 자세가, 회개가 절실한 이들입니다. 배움의 여정에 소홀하여 무지의 감옥에 갇힐 때 누구나의 가능성이 이런 완고한 마음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의 답답한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말씀 하시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 졌다.’

 

오늘 복음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성하게 해 주신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두려움과 불안으로 오그라든 마음을 활짝 펴 성하게 해 주십니다.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으면 몸도 오그라들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활짝 열린 마음의 자세가, 배움의 자세가 절실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했으니 말그대로 점입가경의 야합이자 악의 카르텔입니다. 이렇게 무지의 눈이 멀면 악과의 연대도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이루어 집니다. 말그대로 악의 카르텔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얼마전 원로 정치인에게 들은 ‘선무당과 색맹色盲의 카르텔’이란 말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참으로 겸손히 배움의 여정에 충실하지 못할 때 악의 카르텔 유혹에 빠지기 십중팔구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처럼, 무지무식하여 용감한 선무당들과 교통 신호들을 보지 못하는 색맹들이 결합하여 악의 카르텔을 이룰 때, 이보다 위험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이렇게 불의하게 이뤄졌지만 하느님은 파스카의 신비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심으로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으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평생 학인으로서 매사 깨어 겸손히 지혜로이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배움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날마다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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