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7.연중 제3주간 금요일                                                            히브10,32-39 마르4,35-41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신비가

-침묵과 경청, 존경과 사랑, 인내와 믿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주시리라.

 빛처럼 네 정의를 빛내시고,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시편37,5-6)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신비가가 됩시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마땅한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비상한, 특별한 신비가가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신비가입니다. 이래야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어떻게? 시종일관, 한결같이 침묵과 경청, 존경과 사랑, 인내와 믿음을 훈련하여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 살아야 할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살지 못하면 언젠가 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살지 못하면 내일도, 또 죽어서도 못삽니다. 사랑의 신비가입니다. 사랑의 눈이 열릴 때 오늘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다음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사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입니다. 저절로 “아, 놀랍다, 새롭다, 좋다” 탄성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저절로 시인이, 사랑의 시인이, 사랑의 신비가가 될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를, 겨자씨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야말로 이런 신비가의 모범입니다. 참으로 일상의 하찮은 사실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찮은 일상의 비유로는 겨자씨의 비유도 대동소이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생명의 신비입니다. 숨겨진 것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요란하거나 시끄러움 없이, 말없이 침묵중에 묵묵히 일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의 일에 잘 협력해 드리는 일입니다. 침묵중에 겸손히 바라보고 지켜보고 경청하는 관상가로 사는 것입니다. 

 

불필요하게 건드리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이건 비단 일상의 자세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리석게도 유혹에 빠져 긁어 부스럼 만든다든가 녹을 지우려 그릇을 깬다든가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 않는 일이니 말그대로 지혜롭고 겸손한 삶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나서지 말고 필요하다 생각될 때 조용히 뒤따라가며 가꾸고 돌보며 협력해 드리는 일입니다.

 

사랑의 침묵, 사랑의 경청입니다. 침묵과 경청에 이어 존경과 사랑입니다. 프란치스코 현재의 교황님께서 고 베네딕도 전임 교황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 감동적인 인터뷰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이런 존경과 사랑의 자세가 하느님 나라의 삶에 필수입니다. 

 

-교황은 베네딕도 16세를 “신사(a gentleman)”로 표현하셨으며, 그분의 죽음과 더불어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I lost a father)”고 말씀하셨다. 내게 있어 그분은 ‘하나의 보장’(a security)’이었다. 내가 의문에 직면했을 때, 나는 지체없이 차를 불러 그분 계신 수도원에 가서 여쭤보곤 했다.-

 

얼마나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인지요! 전임 교황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두분간의 영적우정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바로 이런 타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 합니다. 존경과 사랑 역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의식적, 필수적 영성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이런 전임 교황님과의 아름다웠던 영적우정의 추억은 하느님 나라를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어 두 하느님 나라의 비유가 가르치는 바 인내와 믿음입니다. 한없는 기다림의 인내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도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기다림의 인내와 믿음을 강조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봄꽃들 폈다하여 먹음직스러운 배열매가 아니라 가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막연한 인내가 아니라 참으로 이런 인내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주님께 대한 신망애 없이는 한없는 기다림의 인내는 불가능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지체하지 않으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바로 인내와 믿음을 강조하는 히브리서 저자는 이어지는 11장에서 믿음에 대해 길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며 믿음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인내와 믿음의 경우 제가 드리고 싶은 답은 단 하나, “하루하루살라”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정주의 삶을 살다보니 요셉수도원에 정주한지 만35년입니다. 밖에서 볼 때 수도원은 평화로운 천국같지만 안에서 보면 하루하루가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입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하루하루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이며, 마침내 선종의 선물같은 죽음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하루하루 사시기에 다음같은 고백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은총의 시간이자 새로운 기회다. 그러니 매일 기쁘게 살아야 한다. 기쁨을 결缺하고 있을 때, 복음은 이웃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기쁜소식, 복음은 그의 본성상 ‘기쁨의 선포’(a proclamation of joy)’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합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 비유의 궁극의 가르침입니다. 침묵과 경청, 존경과 사랑, 인내와 믿음의 자세로 시종일관, 한결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의 노력을 다하며 주님께 협조하는 것입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나한테 달린 듯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끝으로 제 좌우명 기도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마지막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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