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1.연중 제5주간 토요일(세계병자의 날)                                             창세3,9-24 마르8,1-10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

-실락원에서 복락원으로-

“지상천국의 삶”

 

 

요즘 배밭을 지나다 보면 자주 얼마전 포크레인으로 뽑아 놓은 거대한 배나무 뿌리들에 눈길이 갑니다. 그대로 믿음의 뿌리를 상징합니다. 과연 내 믿음의 뿌리는 병들지는 않았는지, 또 날로 주님께 깊이 뿌리 내리는 튼튼한 믿음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수십년 살다가 수도원을 떠나거나 사제직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역시 생각하는 바, 믿음의 뿌리입니다. 정주의 나무되어 하루하루 충실히 파스카 신비의 삶을 살아갈 때 날로 깊어지고 튼튼해 지는 믿음의 뿌리일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었나이다.”(시편90,1)

 

오늘 화답송 후렴 시편입니다. 바로 파스카 미사은총이 주님만이 세세대대 우리의 안식처임을 깨닫게 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안식할 수 있는 곳은 주님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2월11일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자 제31차 세계 병자의 날이기도 합니다. 교황님은 담화문 마무리에서 성모님이 발현한 루르드 성지는 이 시대를 위한 예언적 가르침이라 말씀하시며 병자의 치유자이신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청하며 병자 여러분을 맡겨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아름다운 스콜라스티가 동정녀 축일에 저는 참 오랜만에 치과 병원에 갔다가 명동 서점을 다녀오던 중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했습니다. 바로 파스카의 신비를 사는 순수와 열정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무려 25년간 치과진료를 해주는 섬세하고 친절한 의사분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세속의 수도자처럼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에서의 주님의 전사처럼 치과병원에서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스러웠습니다. 18년전 써놨던 “어느 치과 의사 예찬” 이란 글이 생각났습니다.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다

욕심없어

마음 또한 맑고 깨끗하다

최소한도의 의식주로 만족하는 이다

식물성이라

그 곁에선 풀냄새가 난다

시를 좋아하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이다

부드러움 중에

강인한 의지가 빛처럼 배어나오는 이다

그의 일은 하나의 예술이다

때로 쉬는 날 그는 진료 봉사를 한다

주중에도 한번은 꼭 요셉병원에서 진료 봉사를 한다

쉴틈이 별로 없는 이다

몸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영성으로, 훈련된 습관으로 

하루하루 사는 이다

평상심의 도를 살기에

외로움도 그를 슬며시 비켜간다

그러니

그는 의사이자 예술가이고 세속안의 수도자이다

내 좋아하는 치과의사다”-

 

이어 또 몇 년 만에 명동에 있는 분도서점에 가던중 어느 자매의 “이수철 선생님” 하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마스크로 얼핏 알아볼 수 없는 자매였습니다. 바로 초등학교 6학년때 제자로 교회기관에서 참으로 열심히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역시 파스카의 신비를 살아가는 자매였습니다.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은총의 선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치에서도 순간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는 에덴동산낙원에서 참 멋지게 시작됐던 부부의 삶이 죄로 말미암아 산산히 파괴되는 장면입니다. 말그대로 어둠과 죽음의 절망스런 분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실낙원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때로 우리에게도 화두처럼 주어지는 말마디입니다.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고 있는지 우리의 회개를 불러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은 사람은 주님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이어 사람도 여자도 서로 비겁하게 책임을 전가하며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하니 서로의 관계는 무너지고 부부공동체는 완전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둘의 변명이 점입가경이고 막상막하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자기는 빠지고 책임을 하느님과 여자에게 전가합니다.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도, 여자와의 관계도 무너졌습니다. 마귀가 바라는 바 이런 분열이요 마귀는 환호했을 것입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뱀은 어디 따로 있는 실체가 아니라 하느님을 잊고 살 때 언제 어디서나 호시탐탐 유혹의 기회를 노리는 마귀를 상징합니다. 뱀에 이어 사람에게, 또 여자에게 주어지는 심판의 벌이 참 엄중합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십니다. 이어 에덴동산에서 내치시니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은 차단되고 말 그대로 실낙원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오늘날 희망을 잃고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절망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창세기 제1독서가 실낙원失樂園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00명을 먹이심으로 복낙원復樂園의 실현을 보여줍니다. 그대로 파스카 신비의 실현으로 실낙원에서 복락원의 지상천국의 삶을 살게된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제1독서가 어둠과 죽음의 절망을 상징하는 분위기라면 오늘 복음의 사천명이 배불리 먹은 기적의 현장은 빛과 생명의 넘치는 희망의 분위기입니다. 앞서는 분열되었던 부부공동체였는데 이젠 모두가 함께 나누는 일치의 공동체가 실현되었으니 그대로 파스카 예수님의 구원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 하셨고, 이어 물고기 몇 마리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4000명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만 일곱 바구니였다 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참으로 나눔과 섬김, 일치의 풍요로운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과거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탈출시 광야에서 만나의 기적이 오늘 복음의 파스카 예수님을 통해 4000명이 배불리 빵을 먹음으로 현재화되었고 지금도 매일 미사를 통해 구원 은총은 계속 현실화되고 있으며 언젠가 미래에 완전히 실현될 하늘 나라 천상잔치의 기쁨을 미리 앞당겨 맛보는 우리들입니다. 문득 사순시기 성금요일 주님의 수난 예식중 십자가 경배시 사제의 외침이 생각납니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에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바로 파스카 예수님의 십자나무가 상징하는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차단되었던 에덴동산의 하늘문이, 하늘길이 활짝 열렸고 천상낙원을 앞당겨 지상에서 천국을 살게하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 미사중 십자나무, 생명나무의 열매가 바로 우리가 모시는 주님의 성체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체성가 177장 마지막 셋째 절을 나눕니다.

 

“그 만나 먹은 백성들은 죽었을지라도, 

이빵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영원히 살리.

약속한 땅이여, 오 아름다운 대지여, 

영원히 머무를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

이빵을 먹는 자는 그 복지 얻으리,

아 영원한 생명의 빵은 내 주의 몸이라.”

 

십자나무, 생명나무의 열매인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기쁨과 감격을 고백한 성가입니다. 하여 저는 주저없이 오늘 강론 제목을 다음과 같이 택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

-실락원에서 복락원으로-

“지상천국의 삶”

 

그러니 바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광야에서 지상 천국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시편107,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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