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루살렘 입성 기념;마태21,1-11

미사;이사50,4-7 필리2,6-11 마태26,14-27,66

 

 

파스카 신비의 삶과 죽음

“아버지의 뜻대로”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가 답이다-

 

 

“그리스도 예수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성주간의 첫째 날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우리 삶과 죽음을 성찰하기에 참 좋은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 답이 나옵니다. 파스카 신비의 삶과 죽음에는 기도가 답임을 깨닫습니다. 기도해야 살고 기도해야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닮기위해 사람만이 기도합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소개하는 마태복음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어린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이스라엘 임금님, 높은 데서 호산나!” 방금 전례시 찬미로 예수님 입성을 기념한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찬미를 받으시며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온 도성이 충격으로 술렁거렸다 합니다. 화두처럼 들리는 한 말씀과 답이 우리의 탐구대상입니다.

 

“저분이 누구냐?”

“저분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

 

우리가 평생 물어야 할 물음은 “저분이 누구냐?”입니다. 참으로 한사람, 저분을 알아갈수록 나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나를 알 수 있는 열쇠입니다. 바로 제1독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가 예수님의 신원을 은연중 암시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열어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경청과 겸손, 격려의 주님의 종,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끊임없는 주님과 소통의 기도를 위해 기본적인 자세가 경청과 겸손의 자세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필리피서 말씀이 비움과 순종의 파스카 예수님의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필리피서 찬가 마지막 말씀은 얼마나 은혜로운 지요!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의 영광스러운 미래가 환히 계시됩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새삶의 시작입니다. 어떻게 하면 파스카 신비의 삶과 죽음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겠는지요?  바로 오늘 주님 수난 주일 마태복음이 답을 줍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는 귀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오늘 수난복음의 현장은 빛과 어둠, 은총과 죄로 얼룩진 온갖 인간의 만물상 같습니다. 인간 하나하나의 적나라한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이런 와중에도 예수님의 시종일관 한결같이 기도하는 모습이 우리에겐 참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참사람 하나 만나는 느낌입니다. 예수님 평소 삶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예수님 수난의 현장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세 애제자와의 대화에 이은 기도가 감동적입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이어지는 주님의 절정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평생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던 삶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기도를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평생 삶의 모습입니다. 자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시는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에게 해당됩니다.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평생과제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죽음 준비에 기도말고는 답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기도해야 회개이고 겸손과 경청의 자세입니다.  다시 두 번째 이어지는 기도입니다. 수난 현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라는 어느 고승의 말대신 “기도하다 죽어라” 말마디로 바꾸고 싶고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과 죽음이 되도록 끊임없이 간절히, 항구히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가 우리 삶과 죽음, 기도의 궁극의 목적입니다. 세 번째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시는 주님이십니다. 이어지는 수난 현장에서 제자들은 모두 달아났고 베드로의 배반이 이어지니 참 고립무원의 외롭고 고독한 처지의 예수님이였지만 “기도의 힘”, “하느님의 힘”으로 통과해 나가십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미하던 군중들을 폭도로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광분하여 외치고 군사들은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침을 뱉으며 조롱합니다. 그대로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되는 배신背信, 불신不信, 광신狂信으로 요약되는 무지無知의 지옥도地獄道의 현실을 보는듯합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사탄은 지나가던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을 유혹했고, 사탄은 또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원로들을 통해 대동소이하게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유혹하며 비아냥 댑니다.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하였으니 말이야.”

 

어찌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 이렇게 무지의 죄로 하느님을 모독하는지요! 정말 기도하지 않아 무지로 눈멀어 제정신을 잃을 때 우리 모두의 가능성이 사탄입니다. 하느님의 언어는 침묵입니다. 하느님은 침묵중에 모두를 보시는 눈이요 모두를 들으시는 귀입니다. 마지막 예수님의 기도가 절정을 이룹니다. 바로 우리가 화답송 후렴으로 바친 기도입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심금을 울리는 기도입니다. 아버지께 대한 신뢰가 절절히 배어있는 마지막 탄원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위로요 구원인지요! 우리가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 주님과 함께 바칠 참 좋은 기도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기도에 침묵중이던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이어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 났니다. 죽음이 아닌 부활이 마지막 답임을 깨닫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시 온 도성이 술렁거리던 모습과 예수님 부활로 땅이 흔들리는 모습이 참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저분이 누구냐?”

우리가 궁금하여 물었던 분, 예수님의 궁극적 신원이 백인대장의 고백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바로 파스카 신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이십니다.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그 정체를 환히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의 자녀되어 파스카 신비의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수난 성지 주일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참으로 ‘기도의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주님, 성자의 죽음으로 저희 믿음에 희망이 넘치게 하셨으니, 성자의 부활로 저희가 영원한 목적지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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