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6.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콜로1,1-8 루카4,38-44

 

 

“길을, 희망을, 빛을, 진리를, 중심을 잃은 병든 사회”

-답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뿐이다-

 

 

"내 마음은 주님 안에서 기뻐 춤추며,

 나의 힘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높혀지는도다."(사무 상2,1)

 

한 밤중 기상하여 수도원 자비의 집 숙소를 나서면서 우선 바라보는 수도원 배경의 하늘과 불암산입니다. 그리고 집무실 안에 들어서면 십자고상과 그 바로 아래 태극기를 바라보며 성호경과 영광송을 바친후 만세오창, 기도를 합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속히 안정되어 만세오창도 그만뒀으면 좋겠지만 전망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하늘과 산을 바라볼 때 마다, 주님과의 관계가 날로 깊어지기를 바라며 읊는 제가 아끼는 대표적 자작시 “하늘과 산”입니다. 늘 인용해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예나 이제나 반복되는 인간 무지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나라입니까?” 현수막 글씨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나라대신 무엇을 다 넣어도 통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것이 가정입니까? 이것이 교회입니까? 이것이 사회입니까? 이것이 학교입니까? 이것이 수도원입니까? 이것이 사람입니까? 정의롭지 못한, 공정하지 못한, 평화롭지 못한 현실을, 공동체를, 개인을 암시한, 참으로 회개를 촉구하는 말마디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같은 사람도 곳곳에 넘칩니다. 주님을 떠나면 바로 그 자리가 지옥이요 괴물의 출현입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시작전 자신의 사명을 만천하에 선언한 장엄한 출사표같은 이사야서를 인용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어지는 오늘 복음은 이 말씀의 실현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시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을 만날 때 무지의 어둠으로부터 해방이요 희년의 실현이자 자유인으로서 참삶의 실현입니다. 비단 예수님뿐 아니라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또 하나의 예수님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답은 예수님뿐입니다. 마음 깊이에서는 예외없이 길을 찾는, 빛을 찾는, 희망을 찾는, 진리를 찾는, 중심을 찾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길을 잃은, 빛을 잃은, 희망을 잃은, 진리를 잃은, 중심을 잃은 병든 사람, 병든 사회, 병든 세상, 병든 지구입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지구든 곳곳에서 병든 징후가 드러납니다. 어제 소개된 신문에서 읽은 에세이집,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란 말마디가 충격이었습니다.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풍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서울 강남은 명실상부 ‘욕망1번지’다. 거리에는 집 한 채 값에 달하는 외제차가 즐비하고, 자정이 넘어서도 클럽과 유흥주점의 네온사인이 불을 밝힌다. 대치동 학원가에는 ‘내 새끼는 명문대에 가야 한다’는 부모들의 맹목적인 신념으로 지친 아이들이 ‘학원 순례길'을 걷는다.”

 

얼마나 깊이 병든 사회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대로 지옥도의 풍경 묘사같습니다. 이래서 거대한 정신병동이라 하는 겁니다. 아니 강남만 그렇습니까? 정도의 차이일뿐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며칠전 몽골 사목 방문후 기내 회견중 교황은 교회내 세상내 이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영어 말마디 이데올르기가 이념입니다. 이념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우리의 현실에 주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88세 노령의 교황의 총명함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문화의 전파는 결코 제국주의적이 아니다. 결코. 그것은 언제나 대화다. 그들의 이념들을 주입하고 싶어하는 것이 제국주의다. 문화가 증류될 때 이념들이 될 때, 그것은 독이다. 문화는 소비되고 이념으로 증류된다. 우리는 어떤 철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서 나타나는 이념들로부터 사람들의 문화를 구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교회에게나 말한다. 교회내에도 종종 뿌리로부터, 위로부터 분리시키는 이념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를 성령의 영향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념은 육화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이념일뿐이다. 이념이 자배하고 정책이 될 때, 그것은 독재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대화에, 문화들로 나가는데 무능력하게 된다. 제국주의가 이것을 한다. 제국주의는 언제나 이념으로부터 출발하여 굳혀버린다. 

 

우리 역시 교회내에서 이념으로부터 교의를 구별해야 한다. 참된 교의는 결코, 결코 이념적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들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대신 이념은 실재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이탈시킨다. 답이 됐는지 모르겠다.”

 

이념의 우상에 미치면 광신狂信에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답이 없습니다. 이념의 악령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념을 믿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믿습니다. 온갖 악령들이 발호하는 시절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예수님 하나 뿐입니다. 

 

길이요 희망이요 빛이요 중심이요 진리이신 주님을 잃었기에 병든 개인, 병든 세상입니다. 이런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참삶의 실현이요 전존재의 힐링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어제의 마귀 축출에 이어 주님은 오늘은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쳐주시고, 병을 앓는 많은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장면이 있습니다. 치유받은 시몬의 장모는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합니다. 치유와 동시에 주님 중심의 공동체에서 섬김의 활동이 뒤따라야 함을 배웁니다. 참으로 영육의 온전한 치유와 건강에 섬김과 나눔의 사랑이 제일임을 깨닫습니다.

 

마귀들 역시 주님을 고백하며 달아납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온전한 치유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영혼치유와 건강에, 정신치유와 건강에 주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다음 장면이 우리에게는 참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날이 새자 외딴곳으로 가셔서 아버지와의 깊은 내적 친교 시간을 갖는 주님이십니다. 이어 주님은 집착하는 제자들을 단호히 내치시며 복음 선포에 전념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이런 복음 선포와 더불어 영육의 전인적 치유요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오로가 감사기도를 드리는 제1독서의 콜로새 교회 신자들입니다. 참으로 영육의 건강에 신망애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배웁니다. 콜로새 신자들의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에 감사하는 바오로입니다. 이어 바오로는 이 믿음과 사랑은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진리의 말씀 복음을 통하여 들은 희망에 근거함을 밝힙니다. 그러니 하느님 희망에 뿌리내린 믿음과 사랑의 복음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이 복음이 우리 안에 열매를 맺으며 끊임없이 성장할 때 참 자유롭고 건강한 복음적 삶의 실현입니다. 복음의 성장! 얼마나 멋진 말마디인지요. 길이자 희망이자 진리이자 빛이자 우리 삶의 중심이신 주님과의 부단한 만남과 더불어 치유되는 영혼들에 복음의 성장이요 충만한 신망애 삶의 실현입니다. 그대로 날마다 외딴곳에서 거행되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길을, 희망을, 빛을, 진리를, 중심을 잃은 병든 사회에 유일한 치유의 힐링은 예수님뿐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뿐임을 깨닫습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 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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