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4.연중 제10주간 금요일                                                     1열왕19,9ㄱ.11-16 마태5,27-32

 

 

정결에 대한 사랑과 훈련, 습관

“관상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 답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27,14)

 

지난 밤에 받은 가톡 메시지에 감동했습니다. “신부님, 낼 감사미사 부탁드립니다. 50년간 춤출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무려 50년 반세기 동안 춤을 통해 아름다운 하느님을 추구해온 구도적 삶이라면 그 삶자체가 구원이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에 이어 두 개의 대당명제가 더해집니다. 제2 대당명제는 “극기하여라”이고, 제3 대당명제는 “아내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극기하여라”는 너무 단순화한 주제이고 내용은 구체적으로 눈으로나 마음으로나 아예 간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음욕은 모두가 간음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뿌리부터 뽑아버리라는 격렬한 말씀입니다. 공감합니다. 요즘 성도덕이 얼마나 문란한지 불감증이 걸릴 정도입니다. 야동(野動;야한 동영상, 음란한 내용의 영상물)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오염시키는지, 나라든 개인이든 내부로부터 부패하여 무너지게 하는 성생활의 문란입니다. 

 

에바그리우스의 8개 악덕중 인간의 우선적 세 욕구와 관련된 악덕입니다. 첫째가 식욕과 관련된 탐식이고, 둘째가 성욕과 관련된 음욕이고, 셋째가 재물(돈)과 관련된 물욕입니다. 식욕, 성욕, 물욕이 문제가 아니라 절제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됩니다. 성욕이 무절제하게 행사될 때 영육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음 예수님의 말씀이 통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느님을 대신한 예수님의 전권의식이 잘 드러납니다.

 

“‘간음해서는 안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남자들 몇이나 될까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음욕을 품고 끈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체가 그대로 간음이라는 것입니다. 시선의 정화에 앞서 음욕을 품은 마음의 정화를 늘 염두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간음의 죄를 지었을 때 예수님의 처방이 충격적입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고,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리라고 하십니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한다면 천국에는 애꾸들에 한손 잡이 남자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자도 포함될 것입니다. 

 

순진하게 문자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가 얼마나 큰 불행을 초래하는지 경각심을 주는 충격요법적 표현입니다. 죄를 짓더라도 젊고 힘있을 때 짓고 가능한 한 속히 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성욕은 답이 없습니다. 고백성사를 줄 때 얼마나 힘든 정결의 준수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성 역시 중독성이라 성에 중독되면 처방은 더욱 힘들어 집니다. 

 

어느 수도영성 대가의 “정결은 죽어야 끝나니 정결은 하나의 과정”이라는 말을 잊지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정결의 여정을 걸어야 하고 여기서 절제, 극기, 자제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결은 비단 육신에만 관계된 육욕만이 아닙니다. 참행복 선언 여섯 번째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항목에 대한 가톨릭교리서의 설명이 명쾌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란 주로 사랑, 정결 또는 올바른 성생활, 그리고 진리에 대한 사랑과 정통 신앙, 이 세 측면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의 요구에 자기의 지성과 의지를 일치시킨 사람들을 가리킨다. 마음의 깨끗함과 육체의 깨끗함과 신앙의 순수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가톨릭교리서;2518항)

 

육신의 정결과 더불어 진리에 대한 사랑, 정통 신앙에 대한 사랑, 즉 하느님 사랑이 근본적 대책임을 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는 다음 주석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사실 이 계명은 단지 성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 사람의 침해할 수 없는 몸에 대해 가져야 할 깊은 존경심에 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단순히 개인의 쾌락이나 성적욕구를 위해 이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인간의 성생활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깊고 진정한 사랑의 표현,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출산하는 것이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에 주목합니다. 성인은 착한 일의 도구들에서 말합니다.

 

“금식을 사랑하라(Jeiunium amare)”:성규4,13

“정결을 사랑하라(Castitatem amare):성규4,64

 

답은 사랑뿐입니다. 부작용없이 올바른 전인적 성장과 성숙을 위한 식욕과 성욕의 근본적 해법입니다. 사랑의 수행이요 수행의 훈련과 습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 수도생활을, 일상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요, 단식을, 순결을, 독서를, 공부를, 순종을, 가난을, 겸손을, 경청을, 침묵을, 고독을, 기도를, 성독을 모든 수행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도가 답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저절로 기도합니다.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기도없이는 사랑도 없다. 기도가 구체적 행위로 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헛되다. 어떤 활동도 없는 믿음 그 자체로는 죽은 것이다.”

 

기도에서 나오는 사랑은 수행들의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정말 바른 기도라면, 한결같이 간절하고 충실한 기도라면 사랑의 수행으로 표현될 것입니다. 그러니 정결에 대한 궁극의 답은 관상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일치뿐이라는 확신입니다. 

 

바로 그 좋은 본보기가 제1독서, 기도의 사람, 엘리야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르침이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해당되듯 오늘 엘리야는 호렙 산 동굴밖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엘리야의 내적힘은 물론 내외적 정화와 성화를 이끌었을 주님과의 관상적 만남에서 기인됨을 봅니다. 

 

옛 구도자들이 주님을 만나러 사막에 갔듯이 산을 찾았던 성서의 성인들이요,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서 하느님을 만났듯이 우리는 하느님의 산, 불암산 중턱에 위치한 수도원 성전 미사를 통해 주님을 만납니다. 엘리야와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는 귀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주님의 명령에 이어,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났고 지진이 일어났고 불이 일어났는데, 주님은 바람 가운데에도, 지진 가운데에도, 불 속에서도 계시지 않았다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함은, 관상기도중에 주님을 만나지 못함은 시끄러운 환경, 마음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안팎으로 바람으로 지진으로 불로 상징되는 시끄러운 일상사 속에 묻혀 살다 보면 주님과의 관상적 만남을 불가능합니다. 엘리야는 불이 지나간 뒤에 주님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엘리아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저는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어 속 시원히 마음속 답답함을 털어 내자 주님의 자상한 말씀이 뒤따릅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엘리야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지목하십니다. 참으로 분주한 일상중에도 주님과의 관상적 만남의 시간과 장소를 마련함이 얼마나 중요하고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부족을 채워주시며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필리2;15.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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