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3.연중 제12주일                                                    욥38,1.8-11 2코린5,14-17 마르4,35-41

 

 

더불어(Together) 믿음의 여정, 믿음의 전사, 

“변화, 사랑, 중심”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히사, 

 바다의 물결이 잠잠해지니,

 잔잔해져 좋아라 날뛰는 그들을

 희망의 포구로 이끄셨도다.”(시편107,29-30)

 

오늘 화답송 시편이 복음과 일치합니다. 몇가지 묵상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중국에 여행을 다녀온 봄비 자매가 정성 가득 담긴 선물을 들고 인사차 다녀갔고 밤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새삼 건강이나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순수한 열정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분입니다. 

 

“불암산 바위같이 떡 버티고 계시는 아버지 신부님,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봄비는 영광이옵니다. 주님 안에 늘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강론 쓰셔야 해요.”

 

믿음의 여정에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참 좋은 선물, 도반같은 분입니다.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은 제 정주와 믿음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새삼 스럽게 떠오른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보다”라는 자작 애송시입니다.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아무리 세월 흘러도

 늘 거기 그 자리 

 늘 푸르른 산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세월도 비켜가나 보다

 늘 봐도 늘 새롭고 좋은 산이다” <2006.6. >

 

인자요산(仁者樂山),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 합니다. 산을 좋아하나 거의 산에 가지 않는 저에 대해 어느 분의 “산에 자주 가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글도 생각납니다.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깊은 산이예요.”

 

그대로 제 소망을 밝힌 것입니다믿음의 여정중인 평생 믿음의 전사, 평생 믿음의 학인이 믿는 이들의 신원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평생 믿음의 학인인 우리들에게 참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사람들은 노력에 한계를 두고서는 재능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다산>

평생 믿음의 학인으로서 다산의 불퇴전의 의지를 엿보게 합니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칩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너는 지금 미리 선을 긋고 물러나 있다.”<논어>

평생 학인으로서 시공을 초월하여 다산과 막상막하의 도반인 공자입니다. 이렇듯 믿음이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깨달음을 얻고 믿음의 여정에 도움이 됩니다. 

 

꼭 십년전 2014년, 산티아고 순례 여정후 참 많이 삶의 여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의 여정을 하루로 압축하여 일일일생, 일년으로 압축하여 일년사계,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점검하며 하루하루 날마다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믿음이 여정중 세 측면에 걸쳐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한계입니다.

한계가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지만 참 많은 깨우침을 주는 말입니다. 믿음의 여정에도 한계를 깨달아 아는 한계의 훈련은 필수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영역을 넘지 않는 것이며 서로 거리를 존중하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함이 겸손이자 지혜요 사랑입니다. 무한한 탐욕에 경계를 정해 한계의 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참된 자유도 제 분수를 분명히 인식하는 한계의 훈련의 열매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지창조시 하신 우선적이 일도 카오스 혼돈에 세계에 코스모스, 질서를 잡고 한계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이르기까지 일주간의 천지창조 프로그램이 각 영역마다 질서를 잡고 한계를 정하는 일이었고, 그리하여 조화로운 아름다운 세계가 된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욥기의 저자도 이런 하느님의 지혜에 정통한 분임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폭풍 속에서 욥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할 때의 말이다.”

 

한계의 영성, 한계의 지혜, 한계의 사랑, 한계의 생명, 한계의 훈련입니다. 무절제한 탐욕에 한계를 정하여 한계내에 충실함이 지구를 살리는 일이요 평화로운 상생 조화의 길입니다. 이래서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베네딕도의 정주 서원 역시 바로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제몫을 다하며 살아내기 위한 한계의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사랑의 여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늘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한계내의 삶에도 늘 새로울 수 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 덕분입니다. 참으로 깊이의 내적여정에 참 좋은 사랑의 도반이 그리스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 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늘 우리 모두 새로운 존재로 살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믿음이 여정이 늘 새로울 수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늘 우리를 다그치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나오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저에게는 그리스도 당신이 생의 전부입니다.

 당신은 저의 생명, 저의 사랑,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의 일들은 모두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믿음의 여정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이 깨달음에서 모든 성인이 일치합니다. 수십년전 세수하다 대야 바닥에 투명히 드러난, “Life is Beautifual!(인생은 아름다워라!)이란 말마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타계한, 언젠가 꽃을 들고 온 자매에게 준 다음 선물시(膳物詩)는 생각할 때 마다 늘 유쾌해집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영혼이요 인생입니다.

 

“꽃이 

 꽃을 가져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셋째, 중심입니다.

오늘 “풍랑을 가라앉히시다” 주제의 복음을 묵상하던중 반갑게 떠오른 말마디가 중심입니다. 내 삶의 살아 있는 중심이, 내 공동체 살아 있는 중심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임을 깨닫게 하는 복음입니다. 오늘 호수 한복판 거센 돌풍에 시련중인 제자들의 배는 바로 인생항해여정중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주목할 바 혼자 믿음의 여정이 아니라 주님과 그리고 제자들과 더불어(Together) 믿음의 여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거센 돌풍 한가운데 예수님은 태평무사한 모습으로 고물에서 배개를 베고 주무시니 말 그대로 믿음의 대가이자 달인이십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역시 믿음 부족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제자들의 부르짖음과 예수님의 답변에 고요해지는 주변 환경이 참 통쾌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예수님께서 깨어 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명령하시니, 바람은 멎고 고요해집니다. 밖의 풍랑은 물론 마음 호수의 풍랑도 멎고 고요해졌을 것입니다. 주변이 혼란스럽고 마음의 풍랑이 심할 때 조용히 멈추어 주님의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주고 받는 말씀도 평생 화두가 됩니다.

 

“왜 겁을 먹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그대로 주님과 우리와의 문답같습니다. 조금도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주님의 믿음도 보고 배웁니다. 믿음의 여정은 그대로 배움의 여정이 됩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이 믿음의 체험이 믿음의 여정중에 결정적 도움의 체험이 됐을 것입니다. 삶의 중심이신 주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도 한층 깊어졌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인생 항해 여정에 늘 삶의 중심에, 공동체의 중심에 살아 계신,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자 도반이신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우정이 얼마나 결정적이요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믿음의 여정에 결정적 좋은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자비하심을

 중생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을.”(시편107,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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