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17.화요일 한가위                                          요엘2,22-24,26ㄱㄴㄷ 묵시14,13-16 루카12,15-21

 

 

귀가의 여정, 배움의 여정

“찬양, 심판, 지혜”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어지신 그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시편67,1)

 

지혜로워야 합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무지로 인해, 탐욕에 눈이 멀어 지옥을 자초해 사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평생 배우고 깨닫고 실천해야 할 공부가 지혜입니다. 평생 배우고 배워도 여전히 배워야 할 공부가 지혜입니다. 오늘 옛 현자들도 지혜를 가르칩니다.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는 것은 스스로를 내다 버리는 것이다.”<다산>

날마다 불필요한 것을 버려가는, 비워가는, 내려 놓고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공자는 네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억측을 버렸고,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일을 버렸으며, 고집을 버렸고, 이기심을 버렸다.”<논어>

한마디로 지혜로웠던 무엇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로웠던 현인 공자입니다.

 

오늘은 한가위 추석입니다. 오늘은 삶의 여정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10년전에 끝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느낌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되는 여정이요 참 많이도 강론에 등장했던 주제입니다. 오늘 주제는 귀가의 여정, 배움의 여정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이르기까지 귀가 여정중인 우리들이요, 계속 배워가야 하는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쏜살같이,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늘 강조했던 바가 일생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했을 때, 일년사계 사계절로 압축했을 때 어느 시점에 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검이 삶의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날로 “위에로의 여정(an upward journey)”을 살게 합니다. 저로 말하면 오후 5시, 계절로 하면 초겨울쯤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오후 3-4시쯤, 가을철에 속하는 인생들 역시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현역으로 수확의 계절,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인 가을철 답게 부지런히 노력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내외적 수확은 어느 정도이고 갈수록 기도생활, 공부생활에 치열한지 묻고 싶습니다. 

 

믿음의 생활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죽어야 끝나는, 졸업이 없는 평생 공부요, 제대가 없는 평생 현역의 영적전투이기 때문입니다. 귀가의 여정, 배움의 여정중 어떻게 하면 보람있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네 측면에 걸쳐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찬양입니다.

찬양의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 중심의 삶일 때 저절로 샘솟는 찬양과 감사의 삶입니다. 수확의 계절, 기도의 계절인 가을철에 걸맞는 찬양의 삶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감미로운 세상에 경탄하는 삶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태양의 찬가를 불러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 찬양 감사의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고귀한 품위의 삶을 살게 합니다. 세상맛이 아닌 하느님 맛으로, 진리맛으로 살게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하느님 중심의 찬양과 감사의 삶입니다. 요엘서의 말씀, 오늘 세상에 주시는 주님 말씀입니다.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이런 하느님을 잊어 자초한 불행입니다. 도대체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샘솟는 찬양과 감사, 그리고 참된 겸손의 삶입니다.

 

둘째, 심판입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여정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끝날 여정에 늘 심판을,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하루가 모두인 듯 사는 것입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철, 언젠가는 주님도 우리 인생을 수확해 가실 것입니다. 과연 신망애(信望愛)의 열매들 잘 익어가는 인생들인지요? 오늘 제2독서 묵시록이 실감나게 종말 심판 수확의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찼습니다.”

 

그러니 유비무환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범한 일상에 충실했던 이들은 심판의 날은 구원의 날이자 안식의 평화이기에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들려오는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하늘에 쌓았던 보물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선행, 섬김, 자비, 찬양, 감사의 삶을 살았던 이들은 상급과 더불어 행복한 천국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아니 이미 지상(地上)에서부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에게 펼쳐지는 천상(天上)의 삶입니다.

 

셋째, 지혜입니다.

탐진치(貪瞋癡)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우리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탐욕의 무지가 우리를 눈먼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해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생명을 보장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무욕의 지혜로운 자입니다. 최소한의 의식주로 만족하는 삶이 자유로운 삶, 지혜로운 삶입니다. 소유의 쾌락이 아닌 존재의 기쁨을 사는 이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부자가 참 어리석습니다. 무지의 병이 참 깊습니다. 무지의 탐욕으로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자기 감옥에 갇힌 수인같습니다. 하늘을 향한 창도, 이웃을 향한 창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느 창도 없습니다. 완전히 고립단절된 이런 상태가 바로 지옥입니다. 스스로 자초해 이런 부자같은 지옥을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부자였더라면 땅의 곳간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았을 것입니다. 부단히 하느님을 찬미하며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자선의 삶에 충실했을 것입니다. 땅의 곳간에 곡식과 재물을 가득 쌓아두고 자족하는 부자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조롱하는 하느님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이러하다.”

 

세상의 부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촉구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삶을,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라는 촉구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귀가의 여정,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찬양의 삶, 늘 심판을 염두에 둔 삶,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의 삶을 배우고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삶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오곡 백과가 땅에서 났으니,

 우리 주 하느님이 복을 주심이로다.”(시편57,7).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60 첫째의 삶 “모든 이의 꼴찌, 모든 이의 종”2024.9.22.연중 제25주일 프란치스코 2024.09.22 118
3559 “나를 따라라” -중심, 방향, 일치의 공동체-2024.9.21.토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프란치스코 2024.09.21 120
3558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 “순교적 삶”2024.9.20.금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1821-1846)와 성 정하상 바오로(1795-1839)와 101위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프란치스코 2024.09.20 133
3557 회개의 여정, 믿음의 여정 “참회, 용서, 사랑”2024.9.19.목요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24.09.19 128
3556 사랑은 아무나 하나? “무지에 대한 답은 평생 사랑 공부와 실천뿐이다”2024.9.18.연중 제24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24.09.18 133
» 귀가의 여정, 배움의 여정 “찬양, 심판, 지혜”2024.9.17.화요일 한가위 요엘2,22-24,26ㄱㄴㄷ 묵시14,13-16 루카12,15-21 프란치스코 2024.09.17 88
3554 무엇이 주님을 감동시켜 치유케 하는가? “겸손한 믿음”2024.9.16.월요일 성 고르넬리오(+253)와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258)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4.09.16 123
3553 하느님의 꽃(花), 하느님의 시(詩) 예수 그리스도님 “믿음의 여정”2024.9.15.연중 제24주일 프란치스코 2024.09.15 126
3552 주님의 성 십자가 “회개와 구원, 희망과 승리의 표징”2024.9.14.토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프란치스코 2024.09.14 106
3551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뿐이다”2024.9.13.금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349-40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4.09.13 107
3550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의 평생공부 2024.9.12.연중 제23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24.09.12 125
3549 어떻게 살 것인가?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2024.9.11.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24.09.11 134
3548 자녀다운 삶, 제자다운 삶, 사도다운 삶 “기도가 답이다”2024.9.10.연중 제23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24.09.10 120
3547 아름다운 삶 “늘 새로운 시작”2024.9.9.연중 제23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4.09.09 132
3546 하느님 중심의 삶 “두려워하지 마라, 열려라, 차별하지 마라”2024.9.8.연중 제23주일 프란치스코 2024.09.08 115
3545 비움의 사랑, 비움의 여정 “주님은 분별의 잣대”2024.9.7.연중 제22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4.09.07 117
3544 축제의 때, 단식의 때 -분별의 지혜- 2024.9.6.연중 제22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24.09.06 116
3543 성소(聖召)의 여정 “우연(偶然)은 없다, 모두가 은총(恩寵)이다”2024.9.5.연중 제22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24.09.05 110
3542 주님 중심의 삶 “하느님 나라의 비전, 치유, 분별의 지혜”2024.9.4.연중 제22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24.09.04 116
3541 착한 목자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종과 섬김의 영성”2024,9,3 화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제64대 교황 학자(540-604) 축일 프란치스코 2024.09.03 12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9 Next
/ 179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