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6.연중 제27주일                                                         창세2,18-24 히브2,9-11 마르10,2-16

 

 

더불어(together), 주님과 일치의 여정

“주님 중심, 주님 닮기, 서로간 거리”

 

 

교회는 하느님의 가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한식구, 한가족입니다. ‘1인 가구’라 해도 참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외로울 수 없음은 하느님의 가정인 교회에 속해 있기에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에 속해 이렇게 주님의 한가족임을 확인하는 미사전례에 참석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 축복의 하느님,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 고백이 정말 ‘하느님 다우심’을 잘 드러냅니다.

“주님은 한평생 모든 날에 복을 내리시리라.”

 

우리는 허무의 존재, 무지의 존재도 아닌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면서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평생과제임을 깨닫습니다. 10월3일 결혼 50주년을 맞이한 어느 노부부중 부인이 쓴 글 제목도 반가웠습니다. “반세기 누려온 가난한 행복”, 이 노부부는 무조건 구원이요 성인이라 저는 감히 고백합니다. 

 

‘부부는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이요 성인이다’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이제 꽤 살고 보니 정말 함께 평생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면 참 신기하고 반갑고 기쁘고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얼마전 두가지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된 자매가 얼마나 기뻐하는 지, 순간 깨달은 진리입니다.

 

“아, 서로가 구원했구나! 서로 감사해야 하겠구나!”

 

사실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혼인하고 싶어도 혼자서는 혼인할 수 없고, 자식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습니다. 부부 둘이 함께 해야 혼인도 할 수 있고 자식도 가질 수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입니다. 또 하나의 깨달음입니다. 사이좋게 살다가 직장 문제로 3개월 “혼자” 떨어져 살다가 다시 합류하여 “함께” 살게 된 분에게 그 차이를 물었습니다.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나와 둘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니! 정말 소스라치게 깨달은 진리입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를 보세요. 하느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반려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에 앞서 사람인 아담은 하느님 만드신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게 하셨으나 사람은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반려견이 반려식물이 좋다 해도 사람 아닌 것들은 결코 나의 반쪽인 협력자가, 반려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빼낸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사람에게 데려오셨을 때, 기뻐 환호하는 사람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얼마전 사랑하는 짝을 만나 기뻐하는 형제자매의 심정도 이와 흡사했을 것입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이리하여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이 진리를 재차 확인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오늘 영문 주석 마지막 말마디도 잊지 못니다.

 

“But Jesus is right! Divorce is not the answer”

(예수님이 맞다! 이혼은 답이 아니다)

 

그래서 저는 힘든 부부가정생활중 기도하며 온힘을 다해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지체없이 “살아 있는 순교자”라 말하기도 합니다. 이혼하지 말라는 것은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간곡한 요청입니다. 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보라는 것이며, 그래도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사랑의 하느님은 이혼을 허락보다는 묵인하실 것입니다. 

 

아주 예전 제 신학교 시절 교회법 교수신부님이 로마에서 혼인법 마지막 교수님이 했다는 말마디로 한학기 강의를 끝내던 장면도 잊지 못합니다. 고도의 사목적 배려로, “교회 혼인법을 총동원하여 살 사람은 살게 해주고, 살 수 없는 사람은 헤어지게 해주라. 바로 이것이 복음정신이다.”라는 말마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쪽입니다. 참 좋은 협력자와 반려자를 만날 때 비로소 온전한 한쪽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일치만으로는 하나된다 해도 영원한 반쪽으로 머물수 있으니, 나의 원래 반쪽인 주님과 만나야 비로소 온전한 한쪽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사은총이 고마운 것은 내 반쪽인 주님과 하나됨으로 온전한 한쪽의 사람이 된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진짜 반쪽인 주님과의 일치가 없으면 우리의 영적 목마름과 배고픔은 결코 영원히 해소 될 수 없습니다. 

 

부부는 물론 함께 하는 형제자매들이야 말로 얼마나 고마운 하느님의 선물들인지요! 그래서 혼자서는 구원이 없다 하는 것이고, 천국입장은 개인입장이 아니라 단체입장이라 하는 것이며, 우리 삶의 여정앞에는 반드시 붙은 말마디가 있으니 바로 “더불어(together)”입니다. 이래서 부부가정공동생활, 수도가정공동생활, 교회가정공동생활입니다. 서로 따로가 아니라 모두가 ‘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가정공동생활입니다.

 

여기서 제가 더불어의 일치의 여정에서 강조하는 세 요소가 하느님 중심, 하느님 닮기, 서로의 거리 존중입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느님은 막연한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중심은 예수님 중심이며 하느님 닮기는 예수님 닮기라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사람으로 제대로 살기위해,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는 필수 4대 요소가 됩니다. 여기에 해당될 유일한 대상이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구원의 영도자이신 예수님을 삶의 목표로, 삶의 중심으로 삼을 때 비로소 더불어 일치의 여정입니다.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의 예수님 고백이 참 장엄합니다.

 

“우리는 천사들 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자 스승이요, 형제이자 도반이요, 우리의 영원한 반쪽이 예수님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바라볼 때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서로 좋아서 마음이 맞아서 일치가 아니라, 바라보는 중심 방향 예수님 같아서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서로 맞추려 하기 보다는 모두 예수님께 맞춰갈 때 날로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저절로 서로 간의 일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평생공부가 사랑공부입니다. 사랑은 예술이자 평생 배워야 할 기술입니다. 아무리 배워도 사랑공부에는 영원한 초보자들인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노력에 결코 지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 삶의 중심인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형제들 모두가 날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고, 서로간 사랑과 신뢰도 날로 깊어져 저절로 다양성의 일치가 형성됩니다.

 

예수님 중심과 닮기에 이어 서로의 거리 존중입니다. 홀로와 함께의 균형과 조화가 절대적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막연한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서로의 거리를, 차이를, 영역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평생 배우고 공부해야할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더불어 일치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 중심의 삶이 깊어지면서 날로 주님 사랑을 더욱 닮게 되어 형제들 서로간의 우정도 깊어지며, 서로간의 예의와 배려의 사랑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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