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9.연중 제2주일 이사62,1-5 1코린12,4-11 요한2,1-11
축제 인생
“맹물같은 일상을 기쁨 충만한 포도주 같은 일상으로”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드려라.
온 누리여, 주님께 노래 불러라.”(시편96,1)
주님을 만날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어둠은 빛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불신은 믿음으로, 미움은 사랑으로, 분노는 온유로, 불화는 평화로, 슬픔은 기쁨으로, 불평불만은 찬미감사로 변하는 기적입니다. 말그대로 운명이 바뀝니다. 이래서 한결같이, 끊임없이, 항구히, 간절히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16년 동안 독일의 총리로 봉사했던 메르켈 회고록을 다 읽었고 고귀한 인품에 감명받았습니다. 그 몇구절을 인용합니다.
“우리의 훌륭한 품성과 감정을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나라이자, 빛나는 문화적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세계에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적 숨결이 숨쉬는 독일이어야 합니다.”
“나는 항상 국가와 당에서 맡은 공직을 품위 있게 수행하고 싶었고, 언젠가 떠날 때도 품위 있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을 위한 봉사’가 내 임기전체를 묶는 대괄호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불만과 분노, 비관적 태도가 아니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접근해야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일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동독에서 살 때도 그랬고, 나중에 자유로운 이 땅에서 살 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회고록 마지막 부분입니다.
“민주주의 없이는 자유도 법치도 인권도 없다. 자유 속에서 살고 싶다면 안으로든 밖으로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혼자만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자유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참으로 비전과 신뢰의 정치가이자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이자 메르켈이요 이런 분의 ‘정치는 애덕의 최고 형태’라 정의해도 무방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어느 분야든 주님을 닮아 섬김의 삶을 사는, 축제같은 인생을 사는 분들을 대하면 희망과 용기가 샘솟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제1독서 이사야서의 ‘새 예루살렘’처럼 고해인생이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품위 있는 축제인생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있는 왕관이 되리라.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살 줄 몰라 불행의 고해인생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의 축제인생입니다. 바로 혼인잔치같은 품위 있는 축제인생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카나의 혼인 잔치가 주는 가르침입니다. 카나의 혼인잔치가 상징하는 바, 우리에게 선사된 축제인생입니다. 카나의 혼인잔치 배경에 자리잡고 계신 주님이시기에 비로소 축제인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세 가르침을 배웁니다.
첫째, “청하라!”입니다.
기쁘고 흥겨운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참 심각한 일입니다. 참으로 축하손님들 가득한데 술이 떨어졌으니 참 아찔한 상황입니다. 이 사실을 맨먼저 알아챈 분이 마리아 성모님이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성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던 듯 합니다. 우리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혼인잔치 같은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늘 함께 하시는 성모님께 중재를 청하는 것이요, 성모님처럼 겸손히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입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아드님,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에 개의치 않는 성모님의 아드님께 대한 깊은 신뢰의 믿음이 감동적입니다. 혼인잔치의 포도주가 우리 축제인생에서 상징하는 바 무엇일까요? 모든 것 다 지니고 있어도 믿음이, 사랑이, 희망이, 기쁨이, 평화가, 감사가 없다면 참 삭막한 고해인생일 것입니다.
이 때에야 말로 기도할 때요 주님의 도움을 청할 때입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대신 “사랑이 없구나”, “믿음이 없구나.”, “희망이 없구나.”, “기쁨이 없구나.”, “감사가 없구나.”, “평화가 없구나.” 깨달아 청할 때 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청이 참으로 간절하고 항구하면 주님께서는 적절한 때 은총의 선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둘째, “순종하라!”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일하십니다. 어머니 성모님의 아드님에 대한 철석같은 신뢰와 믿음은 일꾼들을 향한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말씀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마리아 성모님의 믿음에 감동하신 예수님은 자기의 때를 앞당기셔서 즉시 현장에 개입하시어 포도주의 기적에 앞서 절차를 밟으십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산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성모님에 이어 일꾼들의 순종이 빛납니다.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돌로 된 물독 여섯 개 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하시니 그들은 곧 그대로 합니다.
마리아 성모님에 이은 일꾼들의 순종이 참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순종의 믿음이 만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입니다. 믿음의 기적, 사랑의 기적입니다. 비상한 순종이 아니라 각자 받은 은사에 충실하는 순종입니다. 바로 코린토1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울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은사를 주십니다. 지혜,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식별, 신령한 언어 등 참 다양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각자 받은 은사도 참 다양하며 이 은사에 따라 책임을 다하는 순종의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마리아 성모님이, 일꾼들이 아름다운 순종의 모범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때 주님도 우리에게 순종하십니다.
셋째, “기뻐하라!”입니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기뻐 환호합니다.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참으로 과방장의 유쾌한 착각이요 오해입니다. 과방장처럼 우리가 모르게 일어나는 기적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잘 들여다 보면 포도주의 기적처럼 삶은 기적임을, 사랑의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쁨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항상 기뻐할 수 뿐이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눈만 열리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적의 표징들이요 우리의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유쾌한 기적이야기를 대할 때 마다 생각나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 종교학 시간에 있었던 시험에 관한 일화입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의 기적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라.”는 문제였습니다. 최우수 학점을 받은 바이런의 답안지는 단 한 줄입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Water saw its Creater and blushed)
물이 주인 예수님을 만나자 기쁨으로 얼굴이 붉어졌다는 천재 시인의 기발한 착상이 우리의 맹물같은 마음을 기쁨으로 붉게 물들입니다. 맹물같은 무미건조한 일상이 성령의 은총으로 기쁨 충만한 분위기로 변함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은총의 기적으로 물이 포도주로 변했듯이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맹물같은 우리 일상을, 우리 마음을 ‘희망과 기쁨, 찬미와 감사, 생명과 빛, 평화와 행복’으로 출렁이는 포도주 같은 일상으로 바꿔주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백성에게,
주님의 기적을 만백성에게 두루 알리라.”(시편96,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