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의 여정 -우리가 살아있는 또 하나의 엘리야요 세례자 요한이다-2023.12.16.대림 제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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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6.대림 제2주간 토요일                                                 집회48,1-4.9-11 마태17,10-13

 

 

예닮의 여정

-우리가 살아있는 또 하나의 엘리야요 세례자 요한이다-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

 

오늘 시편 화답송 후렴이 좋습니다.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새벽에 일어나 카톡을 열으니 김남조 시인의 대표작인 “겨울바다”라는 시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지난 10월10일에 96세로 선종한,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세례명을 지닌 유명한 가톨릭의 여류시인입니다. 마지막 시집은 93세때 냈다하니 참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겨울바다”시중 마음에 와닿은 대목이었습니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그대로 뜨거운 기도의 시인의 기도시임을 깨닫게 합니다. 겨울바다에 서듯, 새벽에 일어나 자비의 집 숙소문을 열면 맨먼저 바라보는 겨울하늘입니다. 이어 떠오르는 예전에 써놨던 두편의 자작 고백시입니다.

 

“산처럼

 머물러 살면

 푸른하늘

 흰구를

 빛나는 별들

 아름다운 하느님

 배경이 되어 주신다”-1997.8.11

 

“정주”라는 시에 이어 언젠가 인용했던 “당신이 그리울 때”라는 다음 고백시입니다. 물론 여기서 당신이 가리키는 바는 평생 연모戀慕의 대상인 주님입니다. 새벽마다 기상하여 자비의 집 숙소문을 열었을 때,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 오는 겨울하늘에 저절로 떠오르는 “당신이 그리울 때”라는 자작시입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때

 눈들어 하늘을 본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흰구름, 빛나는 별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리운 당신, 보고싶은 당신”-1998.11.22

 

이런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시공을 초월하여 당신의 순례여정중에 엘리야, 세례자 요한과 함께 함을 봅니다. 결코 예수님은 혼자가 아닌 무수한 도반들과 함께 함을 봅니다. 말그대로 “더불어(together)”의 여정이요 이점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은 엘리야의 재림에 관한 내용으로 그 앞에는 높은 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사건이 일어납니다. 세 애제자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동행했으며, 영광스러운 변모시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세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세와 엘리야와도 깊은 영적 친교를 나눴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영적지평은 이렇듯 영원에 열려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으며 우리 또한 이런 예수님과 평생 도반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득 작년에 선종하신 전임 교황인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진리의 협력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자신의 영적스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보나벤투라는 고백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신의 흠모하고 존경하는 성인들을 스승이자 도반으로 삼아 깊은 친교를 나눴던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분명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니셨을 것입니다. 오늘 집회서에서 엘리야의 활약은 얼마나 눈부신지요! 한마디로 하느님과 완전 사랑의 일치를 이룬 삶이었기에 이런 자유자재한 기적이요, 에녹과 모세에 이은 승천입니다. 오늘 제1독서 집회서 끝부분은 공동번역이 더 실감이 납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며, 당신과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을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 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집회48,11)

 

이 대목은 30년전 어느 수녀님의 편지글에 순진하게도 당신을 저로 착각하고 많이 행복해 했던 내용인데 후에야 집회서의 말씀임을 알고 실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로 이런 당신은 엘리야는 물론 궁극에는 우리 파스카의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이런 대상에 해당된다면 참 행복할 것입니다. 

 

좌우간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면면한 전통은 엘리야의 재림입니다. 오늘의 구약의 집회서와 마지막 성서, 말라기서 마지막 구절, 그리고 루가 복음에 연이어 나오는 공통적 내용입니다.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집회48,10)

 

똑같은 내용이 구약의 마지막권 말라기서 맨끝에도 나옵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땅을 파멸로 내려치지 않으리라.”(말라3,23-24)

 

이어 루카복음 1장 "세례자 요한 출생 예고(1,5-24)" 에도 나옵니다.

“그는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1,17)

 

새삼 엘리야, 세례자 요한을 비롯한 모든 성인들이 죽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 안에 다 살아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런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주님은 세례자 요한이 재림한 엘리야요 이를 알아보지 못한 무지한 이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또 예수님 자신도 당신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에게 고난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내적으로 엘리야, 세례자 요한과, 또 우리와 운명공동체처럼 깊이 결속되어 있는지 깨닫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후 부활하시어 우리 모두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는 악순환의 반복을 끊고, 이 회개와 은총의 대림시기 또 하나의 엘리야가, 세례자 요한이 되어 이분들이 못다한 화해와 일치, 평화의 일들을 해야 하겠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5,9)

 

극단의 분열과 갈등의 전쟁의 시대에 화해와 일치, 평화의 일꾼이 되는 것보다 중대한 사명은 없으며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평화의 일꾼으로 살게 하십니다. 이 은총의 대림시기, 주님 평화의 일꾼이 되어 사는 것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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