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의 여정 -사랑의 일치 공동체 예찬-2024.5.16.부활 제7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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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16.부활 제7주간 목요일                                              사도22,30;23,6-11 요한17,20-26

 

 

일치의 여정

-사랑의 일치 공동체 예찬-

 

 

“별 수 없는 향기이지만

 하얀 색깔 환하고 

 소박한 모습

 기다리는 이 없어도

 하늘 보고파

 때가 되니 피어난 주차장 앞 

 마가렛꽃

 늘 봐도 정겹다”<1998.5.12.>

 

곧장 뒤이어 피어나기 시작한 마가렛꽃 사랑이 새롭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마가렛 꽃말도 참 좋습니다. 공동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공동체에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늘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공동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요셉 수도공동체에 산처럼 정주하기 36년째, 날로 깊어지는 공동체와의 사랑입니다. 공동체와의 사랑은 주님과의 사랑을 뜻합니다. 저에게 참으로 위대한 스승은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로부터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공동체에 뿌리 내리고 있기에 매일 강론 쓰기도 가능합니다.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얼굴들이요 하느님의 선물들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뎌내야 하는 사랑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라면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분열시키는 일이라면 하느님 하시는 일은 일치입니다. 사람이 흩어버리면 하느님은 모으십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공동체 일치의 비결을 말합니다. 역시 사랑의 일치입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를 것이다.”(성규72,4-7)

 

이 또한 아가페적 순수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꽃과 같습니다. 꽃의 크기, 모양, 색깔, 향기가 다 다르듯 사람의 사랑의 크기, 모양, 색깔, 향기도 다 다릅니다. 이 다름을 인정하는 사랑입니다. 또 끊임없이 주님 사랑 안에서 정화되고 성화되어야 하는 이기적 불순한 사랑입니다. 평생 공부가 사랑입니다. 평생 “사랑의 학교” 공동체에서 아가페 사랑을 배워가는 형제들입니다. 서로 건들이지 않는 것, 그냥 놔두고 묵묵히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에 대한 연민의 사랑이요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랑입니다. 

 

무한히 인내하는 사랑,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말 그대로 주님을 닮은 사랑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의 사랑의 계명입니다. 아주 예전에 써놓은 “존재는 관계이자 사랑이다”라는 장시가 생각납니다.

 

“존재는 관계이자 사랑이다

 혼자서는 못산다

 혼자꾸면 꿈이요 함께꾸면 현실이다

 잘났든 못났든 함께 살아야 한다

 ‘함께’안에 ‘홀로’여야 한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들이

 그를 잡아주어야 한다

 흙속에 묻힌 뿌리들처럼 좌우사방 보이지 않게 뿌리내려야 한다

 뿌리내림의 관계다

 단절고립된 혼자가 그대로 지옥인거다

 땅을 보라

 평화로운 공존의 사랑이 아닌가

 보금자리 공동체는 땅과 같고 

 사람들은 땅의 품에 뿌리내린 초목들과 같다

 뿌리내릴 너와 나의 공동체가 없다면 

 그 삶 얼마나 위태롭겠는가!

 예전 철없을 때는 알맹이는 남고 껍데기는 가라며 순수를 고집했지

 참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껍데기없는 알맹이가

 알맹이 없는 껍데기가 어디 가능이나 하겠는가

 내가 껍데기라면 너는 알맹이고 

 네가 알맹이라면 나는 껍데기인거다

 알맹이 있어 껍데기이고 껍데기 있어 알맹이다

 네가 있어 나이고 내가 있어 너이다

 이렇게 알고 보면

 우리는 서로 ‘짐’이 아니라 

 서로가 하느님의 ‘선물’인거다

 평범하나 이보다 더 깊은 진리, 깊은 지혜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너와 내가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있는 곳에 함께한다 하지 않으셨나

 혼자서는 살지도 못하고 절대로 사람도 못된다

 십중팔구 괴물이나 폐인이다

 때때로 내 공동체의 땅을, 내 관계들의 뿌리를 점검해 볼 일이다 

 너무다 자명한 진리, 까맣게 잊고들 산다”-2005.5.

 

19년전 이때쯤의 장시의 깨달음의 글이지만 지금은 더욱 공감합니다. 공동체 예찬 같은 시입니다. 하느님을 그대로 대변하는 예수님의 오늘 복음 말씀도 그대로 사랑의 일치에 대한 간곡한 기도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고별기도의 내용은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기도입니다. 참으로 일치의 여정에 항구하기 위하여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믿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요 바로 우리가 그 대상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일치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랑의 일치입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의 상호내주의 사랑안에 머물러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삶과 사랑 따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자체가 사랑입니다. 일치의 사랑안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며 마음이 시선은 늘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매일의 사랑의 성체성사가, 공동체의 사랑의 훈련, 사랑의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래서 주님 사랑 안에 머물며 평생 날마다 바치는 사랑의 공동전례기도 찬미와 감사의, 사랑의 훈련입니다. 평생 사랑의 전사로, 사랑의 달인으로 만드는 평생 사랑의 훈련입니다. 제가 볼 때, 사랑의 전사, 사랑의 달인이 사도행전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사랑의 지혜로 위기를 돌파해가는 바오로의 시야에는 모두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공동체라는 의식입니다. 최고 의회에서 바오로의 증언이 결정적 해결의 열쇠가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 부활을 주장하는 바리사이들과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과의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고 천인대장의 기민한 개입으로 바오로는 구출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정말 하느님의 사랑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뿐이 없고, 일단 이들의 격렬한 대립에서 탈출에 성공한 바오로입니다만, 여전히 무지한 이들은 하느님께 맡기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일치의 선교 여정에 오르는 바오로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부활의 증언, 사랑의 증언, 일치의 여정에 항구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일치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참 많이 우리를 격려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공동체는 내가 누구인지 나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공동체 자체가 나를 사랑으로 비워가는 겸손의 훈련장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일치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옵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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