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목요일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민수6,22-27 갈라4,4-7 루카2,16-21
만복의 근원이신 하느님
찬미와 축복
산다는 것은 축복받는 것입니다.
살아 있음이 축복이요 이에 대한 자연스런 응답이 찬미와 감사입니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찬미하는 것이요 감사하는 것이요 축복받는 일입니다. 새해 첫날 이 깨달음을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첫날 <하늘길>이란 지금도 수도원에 남아있는 굽은 소나무를 보며 쓴 자작 애송시도 나누고 싶습니다.
“참 많이도 굽었다
하늘빛 찾아 가는 길
순탄대로 곧은 길만은 아니다
첩첩의 장애물 틈바구니 하늘빛 찾아
이리저리 빠져나가다 보니
참 많이도 굽었다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다
거룩한 아름다움이다
살아 있음이 축복이요 찬미와 감사다
하늘빛 가득 담은
내 사랑 침묵의 소나무야!”<2001.4.21.>
2026년 불붙는 질주, 붉은 말의 해 병오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루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처럼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2025년 을사년이 나라로 보면 회복과 정상화의 한해 였다면, 2026년 병오년은 도약과 도전의 시대로 현재의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 어려운 와중에도 작년 한국은 여섯 번째로 7000억 달라 이상 수출을 돌파했다는 희소식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네델란드에 이어 한국이라 하니 한국은 어려운 여건중에도 이미 적토마처럼 달렸왔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찬송가 같는 애국가 가사처럼 참으로 하느님이 보우했던 한해 였고 올해는 더욱 그러하리란 국운흥성의 예감이 듭니다.
2023년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인 8월15일부터 날마다 기상후, 취침전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바치기 시작한 만세칠창 하기도 벌써 4년째 입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참 좋아하시는 일이 축복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찬미와 더불어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찬미와 축복은 함께 갑니다. 찬미와 축복의 기도에 만세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살아 있는, 죽는 그날까지 만세칠창 바치기가 소원입니다. 작년 다산의 1월 첫날 말씀이 다시 봐도 좋습니다.
“위학일익(爲學日益)”, 배움이란 매일 채워도 끝이 없다니 이런 배움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하느님 사랑 공부입니다.
“나를 깨닫는 과정은 나를 아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 끝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다산>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알고, 어진 자는 자신을 사랑한다.”<순자>
진정 자기를 사랑하는 자존감 높은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모두 예수님의 지혜와 일치합니다.
오늘 병오년 새해 첫날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천주의 모친이자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세계 평화의 휘장을 활짝 열어젖힌 느낌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국교회의 수호자일뿐 아니라 대한민국-한반도의 수호자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은 해마다 불러도 늘 새롭고 흥겹고 은혜롭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끊임없는 노래 기도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우리를 어어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오늘 새해 벽두, 제1독서 민수기에서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축복은 얼마나 차고 넘치는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지요! 그대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 내리는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봐주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것보다 훨씬 복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처럼 우리를 굽어보시는 분을 우러러보는 것이야말로 지복입니다. 하느님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도 복음에서 아기 예수님을 사랑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듯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십니다. 예수 아기를 바라보는 순간 눈이 마주치면서 성모님 역시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이 컨택트(eye-contact)! 눈맞춤!”
부단히 사랑의 주님과 눈을 맞출때 우리의 눈빛도 눈길도, 마음도 정화되고 성화됩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듯, 우리를 바라보시는 성모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를 바라보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천상의 축복입니다. 평생 계속될 축복의 추억이 샘솟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하니,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받은 넘치는 축복을 마음에 담아두고 깊은 관상의 행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는 성모님입니다.
로마도 예루살렘도 아닌,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그 작고 보잘것 없는 베들레헴이 세계의 중심, 축복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목자들도 아기 예수님의 축복을 받은 진짜 행복한 부자임을 깨닫습니다. 하늘 천사의 평화와 영광의 축복을 받은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의 축복에 감격하여, 또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축복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갑니다.
하느님의 축복에 대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응답이 찬양과 찬미, 감사입니다. 축복에 찬미와 감사로 응답할 때 이어지는 축복이요, 영적 부익부의 삶이 펼쳐집니다. 무엇보다 큰 축복은 성령의 축복이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입니다. 바오로가 이 축복을 비밀을 알려줍니다.
“진정 여러분은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답게 “아빠! 아버지!”를 외치며 찬미와 감사의 삶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을, 예수님을, 성모님을 바라보며 눈을 맞추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때 주님 평화의 축복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축복인생을, 축제인생이자 선물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아주 예전 써놨던 <선물인생; 파스카의 꽃>이란 자작 애송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꽃처럼 환한 웃음보다 더 좋은 선물있을까
삶은 순전히 선물이다
꽃같은 삶이다
눈여겨 보지않으면 순식간 사라져 가는 꽃들
바로 선물인생 아니던가
얼마나 그 많고 좋은 선물들
놓쳐버리고 살았는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대로 꽃인 인생인 거다
어제의 꽃 폈다지면
또 오늘의 꽃 폈다지고...
평생을 그렇게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거다
끊임없이 폈다 지면서 떠나는 삶이다
잘 떠날 때 아름답지 않은가
길이길이 향기로 남는다”<2001.4.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