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나? “선택, 사랑, 지혜”2026.2.15.연중 제6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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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2.15.연중 제6주일                                                      집회15,15-20 1코린2,6-10 마태5,17-37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나?

“선택, 사랑, 지혜”

 

 

 

"이 날이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118,24)

 

요즘 AI에 대한 관심과 쏠림이 날로 증대되고 있습니다. “AI는 ‘도구tool’이지 ‘목소리voice’가 아니다” 라는 어제 인용했던 말씀이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이 참행복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라 사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얼마나 유쾌한 신나는 고백인지요! 주님이 우리의 참행복이라는 고백입니다. 바로 시편 화답송이 우리 인간의 참행복은 AI가 아닌 살아 계신 하느님뿐임을, 또 우리의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살아계신 하느님뿐임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고자 이 거룩한 생명의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어제 읽은 오늘 복음을 요약한 짧은 단락입니다.

 

“율법을 지켰다는 사실이 사랑의 책임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적어도 예수님 눈에는 ‘법을 지켰는가’보다는 ‘사랑했는가’라는 질문이, ‘규정을 따랐는가’보다는 ‘사람을 살렸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이것이다. ‘사랑과 살림’, 이보다 앞설 수 있는 기준은 없다.”(빛두레1727호, 쉐마 4쪽)

 

우리를 부단히 사랑하고 살리시는 주님이십니다. 참행복은 바로 이런 주님을 사랑하여 모시고 사는 길뿐입니다. 요즘 친구 화가가 선물한 집무실안 불암산 배경의 배꽃 만발한 그림을 볼 때 마다 외우는 시가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자기자랑도 팔불출에 속한다는데, 수없이 나눴던 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또 나눕니다.

 

“평생 

 꽃같은 아내 없어도

 언제나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주님의 집

 집무실안 

 불암산 배경의 만발한 배꽃 그림에

 꽃같은 주님 

 늘 함께 계시니

 이 행복에 삽니다”

 

바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나?” 에 대한 답을 줍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가까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행복을 밖에서 찾는 어리석은 눈먼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의 행복입니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첫째, “선택하라!”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선택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잘 선택할 수 있음도 은총이니 겸손히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집회서 말씀이 참 신선합니다. 우리를 격려하며 용기를 줍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순전히 선택은 내 소관이요 내 책임입니다. 그 누구도 내 대신 선택을 해 줄 수 없습니다. 잘못된 선택의 책임은 나에게 있고 나를 탓해야 하지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모두 나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이 모두를 통틀어 하나로 귀결됩니다. 바로 우리의 빛이요 구원이신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바, <선택-훈련-습관>의 도식입니다.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기도도 겸손도 침묵도 순종도 모두가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화할 때 비로서 영성이요 운명도 바뀌어 집니다. 샘솟는 내적힘에 내적풍요의 영적삶이 실현됩니다.

 

둘째, “사랑하라!”입니다.

공부주의 공부가 사랑공부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면 이웃 사랑도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주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사랑이 진짜인지는 이웃 사랑을 통해 입증되고 확인됩니다. 

 

베네딕도 규칙서에도 두 유사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 무엇도 주님 사랑에 앞세우지 마라.”,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에 앞세우지 마라.” 바로 주님 사랑을, 주님 사랑의 표현인 하느님의 일; 기도를 최우선 순위로 두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의 정체가 집회서와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도 잘 드러납니다.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굽어보신다.”

 

그대로 하느님의 지혜인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묘사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우리를 고무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의 주님이요 하느님의 지혜가 되시는 분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모시는 미사시간입니다.

 

셋째, “지혜로워라!”입니다.

공부중의 공부가 지혜입니다. 지혜를 사랑하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사랑과 지혜가 일치합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사랑이 바로 지혜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지혜뿐입니다. 사랑과 지혜의 결정체가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판단의 잣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요 판단의 잣대가 됩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 아니라 사랑해서 구원입니다. 죄없어서 순수가 아니라 사랑해서 순수입니다. 사랑의 절대적 법에 상대화되는 율법입니다. 참행복선언의 중심에 예수님이 롤모델로 계시듯 사랑을 통한 참으로 지혜로운 처방의 중심에 역시 롤모델로 주님이 계십니다.

 

모든 죄악의 뿌리부터 정화하고 성화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참으로 솔직하고 진실하고 투명하라는 것입니다. 살인에 앞서 간접적 살인과도 같은 무시와 모욕, 조롱의 언사를 근절하라는 것이며, 불목한 형제가 있으면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바치라 하시며, 고소한 자와는 지체없이 타협하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깊은 사랑에서 나온 서로가 사는 상생의 지혜로운 처방입니다.

 

간음이전에 아예 음욕부터 품지 말라는 것이며, 죄짓게 하는 눈을 빼던지거나 죄짓게 하는 손을 잘라버리라는 충격요법적 표현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인생인데 죄지으며 살기에는 너무 아깝고 억울하고 허망합니다. 

 

이혼의 경우도 불륜의 경우가 아니라면 허용되지 않는다 하며, 맹세는 주제넘은 짓이니 절대해서는 안되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고 투명하게 겸손되이, 담백하게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 하십니다. 그 이상의 구구한 변명이나 핑계는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 단언하십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깊은 사랑과 지혜의 일치에서 나온 처방의 실천이 율법의 완성이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능가하는 의로움이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첩경이 됩니다. 바로 이 말씀들의 중심에 실제 이런 진리를 온몸으로 사셨던 주님이 계십니다. 참으로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는 주님의 우리에 대한 기대 수준은 이처럼 높습니다. 주님의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아 이렇게 살도록 결정적 좋은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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