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18.재의 수요일 요엘2,12-18 2코린5,20-6,2 마태6,1-6.16-18
하느님 중심의 삶
“참된 회개, 참된 수행, 참된 기쁨”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51,3ㄱ)
어제는 설날 새해 첫날이었고 오늘은 재의 수요일로 본격적 사순시기의 시작입니다. 설날 축제후 시작되는 사순시기의 배치가 참 절묘합니다. 사순시기의 수행과 영적훈련을 통해 반석위의 인생집을 지으라는 깨우침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본기도 역시 우리의 영적 전의를 북돋웁니다.
“거룩한 재계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전투를 시작하며 주님께 비오니, 악의 세계를 대적하려는 우리로 하여금 극기의 보루로 진을 치게 하소서.”
일년 영적농사의 성패가 달린 사순시기의 수행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서에 나오는 베네딕도 성인의 다음 말씀도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수도승의 생활은 언제나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덕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이 사순절 동안에 모든 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성규49,1-3)
참으로 천수의 영적건강을 위한 비결은 하루하루 하느님 중심의 한결같은 충실한 삶일 것입니다.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같은 은총의 사순시기, 어떻게 하면 하느님 중심의 오롯한 삶에 정진할 수 있을까요? 답은 참된 회개와 참된 수행, 참된 기쁨입니다.
첫째, 참된 회개입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회개의 표지들이요 성사들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하면서 외친 것이 회개였습니다. 임박한 하늘나라에 대한 응답이 지체없는 전인적 회개입니다. 내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의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하루 이틀로 끝나는 회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회개의 여정에 충실해야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몫을 다하며 제대로, 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요엘 예언자가 줄기차게 외치는 것도 회개의 촉구입니다. 개인적이자 공동체적인 회개의 촉구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백성들의 거족적, 전폭적, 지체없는 신속한 회개에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을 베푸십니다. 참으로 이런 회개가, 특히 생태적 회개가 절박한 시점의 오늘 이기도 합니다.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과의 화해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바오로 사도의 외침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 하루하루가 소중한 은혜로운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입니다.
둘째, 참된 수행입니다.
오늘 주님은 올바른 자선,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을 통해 참된 수행의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내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수행이요 참된 회개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감쪽같이 숨겨진 하느님만이 아시는 참된 수행입니다. 다음 말씀은 영성의 진위를 판가름 하는 잣대가 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느님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모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숨겨져 있는 자선의 비움을 통한 이웃과 사랑의 소통이 참 자유인이 되게 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골방은 외딴곳이었습니다. 숨겨져 있는 기도의 비움을 통해 하느님과 사랑의 소통이 참 자유인이 되게 합니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숨겨져 있는 단식 체험의 비움을 통해 자기 자신과 사랑의 소통이 참자유인이 되게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더도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참나일뿐입니다. 바로 이런 참된 수행이 영성의 진위를 판가름 하는 잣대가 됩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하느님만을 찾는 관상가이자 영성가입니다. 참으로 외적 부수적 위선의 허영과 교만의 삶이 아니라, 내적이고 본질적인 진실하고 겸손한 삶을 추구합니다. 실속없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하느님을 추구하는 본질적 깊이의 꽉찬 삶입니다.
셋째, 참된 기쁨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로써의 회개가, 수행이 아니라 자발적 기쁨의 회개요 수행입니다. 결코 우리는 우울하고 어두운 금욕가가 아닙니다. 우울과 심각함이나 침통함은 영성의 표지도 아니요 하느님께 역겨운 것이자 모독이 됩니다. 그러니 자발적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회개와 수행이요 이런 참된 회개와 수행에서 맑은 기쁨도 샘솟습니다. 베네딕도의 가르침도 이와 일치합니다.
“그리하여 각자는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자기에게 정해진 분량 이상의 어떤 것을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바칠 것이다. 즉,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성규49,6-7)
베네딕도 규칙에 <기쁨>이란 말마디가 오직 <제49장,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 란 장에서 2회 나옵니다. 부활의 기쁨을 앞당겨 기쁨중에 자발적 참된 회개와 수행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자발적 기쁨으로 참된 회개, 참된 수행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