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29. 주님 성지 주일
마르11,1-10 이사50,4-7 필리2,6-11 마르14,1-15,47
하느님의 침묵
-여기 사람 하나 있었네-
요지경(瑤池鏡, Peep show) 세상입니다. 어제 하루의 내 체험이 그렇고 오늘 수난복음이 그러합니다. 봄은 봄입니다. 생명의 봄입니다. 나이에 관계 없이 봄이 되면 마음은 누구나 봄이 됩니다. 이런저런 많은 예화의 묵상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하늘만/보아주면 된다
이른 봄/때되자 피어난
낮은 자리/세송이 노란 수선화꽃
무아(無我)/무사(無私)의 아름다움이다.-
어제 써놓고 즐긴 짧은 시입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전혀 눈길가지 않는 초라한 문가에 자리한 수선화꽃 작은 세송이를 발견하고 쓴 시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런 자부심으로 살아야 훌륭한 삶에, '여기 사람 하나 있었네'라는 하느님의 찬탄을 받습니다.
-여생(餘生)이 얼마 안 남았으니 도(道)를 닦는 마음으로 살아가세-
뚜렷한 종교는 없지만 도를 닦는 종교심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나에게 끊임없이 좋은 자료를 카톡으로 나누는 56명 사촌중에 하나인 70대에 진입한 해철형님의 조언입니다.
-"불을 먹고도 칼은 차갑다"(칼의 노래)고 생각하는 그의 시쓰기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더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차가워지기 위하여 '불'을 늘 가슴에 가지고 다닌다.-
여기 요셉수도원에 얼마동안 살다가 환속한 강태승 시인이 보낸 시집의 해설중 한 대목입니다. 여기 또 사람 하나 있음을 깨닫습니다. 비단 수도승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배고파하여 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어제 읽은 평화신문(2015.3.29)의 기사도 요지경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여기 사람 하나 있음을 깨닫습니다.
-"신부님, 성금요일에 제가 복사 서는 거 맞죠?“
수원교구 안산 원곡 본당 복사단장이었던 준형이는 여행을 떠나기전 주임신부에게 "여행 다녀와서 꼭 복사를 서겠다"고 기쁜 마음으로 약속했다. 준형이는 가장 중요한 분향을 맡기로 했다. 그토록 복사를 서고 싶어 했던 17살 소년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준형이는 보름 만에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신문 1면 '그 봄이 가고 새 봄이 왔지만' 노란 리본 그림 배경의 기사에 나오는 글입니다. 하느님의 침묵에 '하느님은 어디에?'라는 저절로 터져 나오는 기도입니다. 이어 신문 25면도 교회의 요지경 현실을 보여줍니다.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가야금 명인 황병기(79), 소설가 한말숙(84) 부부가 각각 '프란치스코'와 '헬레나'라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
는 기사 하단에는 '프란치스코 영성강좌'를 시작한 예수회 한국 관구장 정제천 신부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섬김의 리더십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제하의 인터뷰기사가 실려 있었고, 우편에는 사제수품 50주년을 맞는 14분의 노령 사제들이 소개되고 있었으며 그 하단에는 향년 66세에 선종한 전주교구 김윤섭 신부, 향년 52세에 선종한 의정부교구 조진섭 신부가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희망과 절망이, 젊음과 늙음이,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세상의 축소판 같은 느낌의 신문기사입니다.-
작년 11월 29일 세계 남자수도회장상연합회 제82차 정기총회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2014.11.21.-2015.11.21까지 봉헌생활의 날로 정해주심)은 수도회에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장상단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당부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회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를 보살피며 현실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중심에만 머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소외 계층과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한 이상주의나 근본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니 소외 계층에게 다가가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오늘날의 예언자, 하느님의 침묵을 알아 듣고 그 마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여기 또 한 분 참 사람이 있음을 봅니다. 어제 '병철' 아우 아들 '주혁'의 결혼식에서 주례사 중 첫머리 부분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잘 들여다보니 신혼부부의 얼굴이 서로 닮았습니다. 사랑하나 봅니다. 사랑하면 서로 닮습니다. 평생 잘 살 것입니다. 첫째,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이래야 평화로운 가정입니다.-
라는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순간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들에게도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면 닮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얼굴을 닮아간다는 진리가 놀랍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하느님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오늘 복음의 수난기 역시 요지경 세상현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선악(善惡), 명암(明暗), 미추(美醜)등 양면성의 약함과 한계가 극명하게 들어납니다.
'호산나' 환호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던 사람들은 기대했던 메시아상이 무너지자 좌절감에 "십자가에 못박으라"외치는 폭도로 변합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고, 피땀흘리며 기도하던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들은 잠에 빠졌으며 십자가 처형 현장에선 모두 출행랑을 칩니다.
그런가 하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머리에 부은 여자,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시몬, 끝가지 예수님 십자가 곁에 머문 사랑스런 여인들이 있었고 시신을 내달라고 청하여 곱게 안장한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있었습니다. 역시 '여기 사람 하나 있었네'라는 고백이 나올 정도로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과연 예수님 수난의 자리에 내 있다면 어느 곳이겠는지요.-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대로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종, 예수님이심이 환히 계시되는 수난복음입니다. 철저한 하느님의 침묵중에 참으로 외롭고 고독했던, 그러나 하느님께 열렬히, 처절히, 간절히 기도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마침내 백인대장의 고백이 수난복음의 절정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아, 바로 마침내 '여기 사람 하나 있었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하여 우리는 감격에 벅차 예수님을 '하느님이자 사람'이라 고백합니다. 성염 교수는 강연 때에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 앞에 보이는 '인류의 자존심'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데,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 앞에 보이는 인간의 원형인 참 사람, 인류의 자존심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필립비서 찬가가 예수님의 수난의 신비를, 의미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오늘부터 성주간의 시작입니다. 부활 대축일까지 하느님의 침묵은 계속될 것입니다. 겨울의 침묵을 통과한 봄의 화사한 봄꽃들처럼 하느님의 침묵은 성주간의 수난후 주님 '부활의 꽃'으로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