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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3. 연중 제24주일                                                                           이사50,5-9ㄴ 야고2,14-18 마르8,27-35


                                                                              '참 나(眞我)’를 사는 일

                                                                                       -평생과제-


작년 이맘때 강론집을 보니 신들린 듯이 걸었던 산티야고 순례길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루하루살면서 새벽강론을 씀으로 하루를 엽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진솔한 고백이자 좌우명입니다. 하루하루가 저에겐 영원입니다. 그때나 오늘 지금이나 영원한 하루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읽은 사막교부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머물게 된 한 형제가 벳사리온 압바에게 묻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장로(the old man)의 대답입니다. 

“침묵을 지켜라. 그리고 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짧지만 의미심장합니다. 이래야 단순하고 평화로운 공동체 삶입니다. 이런 침묵은 그대로 사랑이자 믿음의 표현입니다.


며칠전 면담성사를 했던 20대 중반의 한 자매가 생각납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힘든지 깨닫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행복합니다.”

“예, 사랑요? 저는 사랑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전혀 사랑을 잊고 지냈던 자매였습니다. 생존에 급급하다보니 삶의 여유가 없었던 탓입니다. 살기 급급하다보면 연애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딴 세상의 이상적 일로 생각될 수도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저에게서 멀리 떠난 느낌이 들어요.”

뚝뚝 눈물을 흘리며 말했고, 사죄경에 이어 강복을 드린다음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면담성사를 통해 자매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매를 사랑하십니다.”


자존감이, 자신감이, 자긍감이 허약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참 많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자존감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참 나를 사는 일’이 평생과제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요 우리 모두의 평생 일인 참 나를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래서 때로 침묵하고 비교하지 않는 일이 필요합니다.


“나는 거닐으리라. 주님 앞에서, 생명의 지역에서 거닐으리라.”

방금 신명나게 부른 화답송 후렴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 앞에서, 생명의 지역에서 거닐을 때 참 행복이요 참 나의 실현입니다. 주님을 떠나선 참 나의 발견도, 실현도 없습니다. 오늘은 참 나를 사는 일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소개합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진심으로, 열렬히, 항구히 사랑할 때 당당해집니다. 자존감 높은 행복한 삶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의 자랑이듯이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랑입니다. 이런 자긍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며칠 전 불암산을 보며 쓴 짧은 시입니다.


-산이다/늘/거기 그 자리

 하늘/배경만으로/행복한 산이다-


하늘 배경만으로 행복한 산처럼, 하느님 배경만으로 한없이 든든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확신에 넘친 고백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이런 확신있어야 혼란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중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자존감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면 삽니다. 이런 하느님 확신 있어야 내적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더도 덜도 아닌 나일뿐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대한 철석같은 신뢰와 사랑이 주변에 위축되거나 기죽지 않고 참 나를 살 수 있게 합니다.


둘째, 믿음을,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뿐만 아니라 믿음도 추상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실천의 동사를 통해 드러나는 사랑의 진정성, 믿음의 진정성입니다. 믿음을 실천하여, 사랑을 실천하여 말그대로 수행자입니다. 실천해야 반석위의 인생집이지 실천이 없는 사랑이나 믿음일 때 모래위의 인생집입니다. 


우리 영적 삶의 튼튼한 기초를 마련해 주는 믿음의 실천, 사랑의 실천입니다. 실천이 쌓여 습관이 될 때 내적 힘의 원천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의 구체적 말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실천이 없는 사랑이 죽은 사랑이듯이, 실천이 없는 믿음 역시 죽은 믿음입니다. 사랑의 실천, 믿음의 실천을 통해 참 나의 실현입니다.


셋째, 주님을 따르십시오.

'버리고 떠나기' 아니라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입니다. 주님을 따라야 할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입니다. 주님께 대한 착각이나 환상을 버리십시오. 우리를 위해 고난을 겪으시고 배척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입니다. 이런 주님과 운명공동체를 이루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어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 베드로를 질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리스도를 고백했던 베드로가 졸지에 사탄이 되었습니다. 반석이라 일컸던 베드로가 졸지에 걸림돌이 되었으니 이 또한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일이요 하느님의 뜻입니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자 하느님의 뜻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구원의 생명 길은, 참 나의 실현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적절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순교적 삶입니다. 천국의 열쇠 역시 각자의 제 십자가 하나뿐입니다. ‘누구든지’라는 말마디에서처럼 예외없이 모두에게 열린 구원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바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랑 실천, 믿음 실천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의 자신을 버리고, 제 운명과 책임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항구히 따르는 실천에서, 비로소 믿음의 진정성, 사랑의 진정성이 입증됩니다.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바로 주님은, 주님의 복음은 우리 존재이유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과 복음에 목숨을 건 삶이 바로 순교적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항구히 당신을 따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끝으로 제 자작 좌우명 애송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의 마지막 연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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