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20. 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지혜3,1-9 로마8,31ㄴ-39 루카9,23-26


                                                                                              참 축복받은 땅, 대한민국


참 축복받은 땅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보석같은 땅, 대한민국입니다. 비록 반토막 난 한반도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땅 같지만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하느님께는 소중한 나라요 기적을 이룬 나라입니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 하지만 인류의 희망과 미래가 여기 한국땅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 역사상 10000여명의 순교자들을 배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무이할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순교의 역사가 한반도 작은 땅에서 펼쳐졌던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진 한반도 거룩한 땅입니다. 북경에서 이승훈이 1784년 세례를 받고 귀국한 이듬해인 1785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1791년 신해박해를 거쳐 1866년 병인박해까지 거의 100년 동안에 이루어진 처절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마지막 박해는 지금부터 150년 전에야 끝났으니 그렇게 오래 전에 있었던 역사도 아닙니다. 


아마 한반도 역사상 이때처럼 불행했던 때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통치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계속된 민란에 가뭄등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절망적 조선 땅에서 희망의 태양처럼 어둠의 땅을 환히 밝힌 천주교회였고,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신자들의 전교활동에 순교였습니다. 작년 안식년 동안 저는 수도권의 대부분 순교성지를 방문하면서 한국순교성인들의 위대한 행적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위로와 치유, 평화도 느꼈습니다. 순교로 세상을 떠난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에게 보이는 오아시스 순교성지를 선물로 남겨주셨습니다. 참으로 아프고 힘든 신자들이 찾는 영육의 쉼터인 순교성지였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란 말이 있듯이 특히 한국천주교회는 순교자들의 교회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 안에도 순교영성의 DNA를 지닌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참으로 믿음의 용사들이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의 원조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하여 저는 집무실에 들어설 때 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자가 고상의 주님을 향해 거수경례를 드립니다. 피흘리는 붉은 색 순교는 끝났다 해도 내적으로는 더 치열한 녹색순교를 살아야 할 현실입니다. 참으로 치열한 영적전쟁의 살아있는 순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저는 감히 날로 극심해 가는 빈인간화의 원흉인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세속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순교영성뿐이라 주장합니다. 바로 순교 선배들처럼 믿음의 용사로서 사는 것입니다. 한국순교성인 축일 때 마다 부르는 다음 ‘순교자 찬가’(성가283)는 얼마나 우리의 믿음을, 순교의 믿음을 고무시키는지요.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높으신 영광에 빛나는 넋이여

 칼아래 스러져 백골은 없어도/푸르른 그 충절 찬란히 살았네.


 한몸을 헐어서 백두산 모으고/선혈은 쏟아서 동해를 이루어

 무궁한 신앙의 나라를 닦으신/크신 공 하늘에 영원히 빛나리.


 무궁화 머리마다 영롱한 순교자여

 승리에 빛난 보람/우리게 주옵소서-


바로 오늘 9월20일은 전세계 가톨릭교회가 대한민국의 카톨릭 순교성인들을 기리는 자랑스런 축일입니다. 기념하라, 기억하라고만 있는 순교축일이 아니라 순교영성을 살라 있는 순교축일입니다. 바로 다음 복음 구절이 순교영성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아, 바로 이 길만이 구원의 길, 승리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사람의 길, 성인의 길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주님의 은총과 자비가 주어져, 거룩한 순교자적 삶입니다. 이 길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신뢰하여 이 길을 걷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이런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입니다. 작년 안식년 순례의 해, 800km 2000리 산티아고 길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듯, 미사가방을 무거운 배낭에 지고 33일 동안 매일 새벽마다 미사봉헌후 끝없이 걷던 길들이 생각납니다. 


흡사 주님을 등에 업고 가는 느낌에 전혀 힘들지 않게 신들린 듯이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왜 혼란이요 방황입니까? 삶의 목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이정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현재진행형이신,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시는 예수님이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하느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따르는 십자가의 길이, 순교적 삶이 아닙니다. 주님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자발적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의 사랑이 있어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강조할바 ‘날마다’입니다. 날마다 하루하루 순교적 삶에 충실하는 것이요 항구하는 것입니다. 단번에 끝난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 순교적 삶의 여정입니다.


멀리 내다볼 것 없이, 지난 과거를 볼 것 없이 날마다,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다시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는게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게 죄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겨운 십자가에 얼마나 절망하고 넘어지며 다시 일어나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지요.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영적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죽을 때까지 내 운명의 십자가를, 책임의 십자가를 지고 믿음의 용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마지막 천국의 문을 여는 천국의 열쇠도 각자 지니고 가는 제 십자가뿐입니다. 그러니 내 십자가의 짐을 덜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은총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주님과 우정의 관계, 사랑의 관계입니다. 주님과 관계의 깊이로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과 우정의 사랑도 날로 깊어집니다. 아, 바로 주님과의 깊어가는 사랑의 관계가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이런 내적 힘이 기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고 충실히, 항구히 순교적 삶을 살게 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부질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영원히 살아남아있는 것은 주님과 맺은 깊은 사랑과 믿음의 관계뿐입니다. 주님과 관계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아, 주님과의 깊은 관계가 마음에 안정과 평화, 기쁨을 줍니다. 인생무상, 허무의 어둠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도 주님과 관계의 힘뿐입니다. 믿음의 힘, 사랑의 힘입니다. 주님께 갖고 갈 수 있는 것도 주님과 맺어진 관계뿐입니다. 이런 확신에서 터져 나오는 바오로의 확신은 바로 우리의 확신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숨돌릴 틈 없이 쏟아지는 바오로의 고백은 바로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주님과 관계의 힘입니다. 영혼의 승리, 믿음의 승리, 사랑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과 하나됨으로 이런 확신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순교영성을 살게 하는 파스카 주님의 미사은총입니다.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믿음의 용사입니다. 순교성인선배들의 믿음과 사랑은 면면히 우리를 통해 계승되고 있습니다. 믿음의 용사가 바로 지혜서가 말하는 의인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 대한 내면의 묘사입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세상 누구도 하느님 안에서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우리의 내적평화를, 불사의 희망을 앗아갈 수도, 파괴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실 때 우리의 사랑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오실 때까지 노력과 은총으로 단련의 시험을 잘 견뎌 통과하는 것입니다. 빠스카의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용광로 속의 금처럼 시험하시고 단련하신 우리 모두를, 살아있는 번제물로 받아들이시고 풍성한 은총으로 보답하십니다. 눈물로 씨부리던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환호하며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제 좌우명 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의 마지막연의 소개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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