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삶-2015.11.5.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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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5.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로마14,7-12 루카15,1-10


                                                             하느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삶


예언자들은 물론 예수님은 하느님의 마음에 정통했던 분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루카 복음 전체의 중심이 됩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중 오늘 복음은 앞의 두부분만 다룹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만납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고 기뻐 외치는 어떤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기쁨을 만납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기쁨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는 하느님 마음,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역시 잃었던 은전을 되찾고 환희에 가득 차 외치는 어떤 부인에게서도 예수님의 기쁨, 하느님의 기쁨을 만납니다. 앞의 비유의 주인공이 남자였다면 뒤의 비유에서 주인공은 여자입니다. 남녀 모두의 마음 깊이에는 하느님의 마음이, 사랑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어머니에겐 모두가 소중한 자식이듯이, 하느님 역시 모두가 소중한 당신의 자녀들입니다. 잃지 않은 양 99보다 잃은 양, 하나에 마음을 쓰시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아마 아이를 잃었다가 찾았을 때의 기쁨을 체험한 부모들이라면 하느님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것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잃었던 사람을 찾았을 때, 잃었던 물건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의 추억을 나름대로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자신을 비방하는 바리사이와 율사들에게, 비유를 통해 잃었던 양을 찾았을 때의 당신 기쁨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기쁨에 동참할 때 주님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 되고 이런 기쁨만이 영원합니다. 이어 결론과도 같은 예수님의 확신에 넘친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결국 회개가 초점입니다. 잃었던 한 마리 양은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냉담으로 하느님을 떠나 하느님을 잊고 떠도는 잃은 양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입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잃은 양들을 찾기에 동분서주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님께 돌아오라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주님과 함께 잃은 양을 찾아나서자는 주님의 호소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찾는 주님께 응답하여 우리도 끊임없는 회개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새 영세자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냉담으로 교회를 떠난 길잃은 양들을 찾는 선교도 화급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을 만남으로 잃었던 나를 찾는 시간입니다. 날마다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와 미사에 참여함으로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시간입니다. 하여 때때로 주님의 성체를 모실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어제의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어, 성체가 성체를 모시네. 아, 신자분들 하나하나가 성체구나!”


미사중 주님의 몸인 성체만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주님의 성체를 모시니, 각자의 존재 자체가 주님의 살아있는 성체가 된다는 깨달음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존엄성의 근거입니다. 누구나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과 하나됨으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가 되고 주님의 형제자매가 되고, 주님의 성체가 되었는데 누구를 판단하고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깨달음이 이웃 형제자매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며, 형제들을 심판하거나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마음을 없애 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깨달음이 참 고맙습니다. 미사를 통한 우리의 깨달음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또한 회개하여 주님의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을, 관대한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에서 샘솟는 사랑이요 평화요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 한 복판에서 때로 잃은 양들로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 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13-14).


바로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가 주님의 집이자 성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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