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1. 수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317-397) 기념일
지혜6,1-11 루카17,11-19
행복 영성
-찬양과 감사-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온누리에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요셉수도원의 단풍만 아름다운줄 알았는데 여기 인보성체수도원의 단풍도 아름다웠습니다. 새삼 하느님은 공평하시며 언제 어디에나 계심을 깨닫습니다. 인보성체 수도원에서 나온 ‘윤을수 신부의 말씀과 함께하는 행복한 나날’의 일력을 보며 가장 많이 나온 두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하느님'이란 단어와 '행복'이란 단어였습니다. 마침 어제 어느 수녀님의 고백성사때 보속의 말씀 처방전도 이와 관련된 말씀을 써드렸습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하느님만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합니다. 피정기간 내내 ‘하느님’과 ‘행복’만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어제 저녁식사중 수녀님과의 주고 받은 문답이 생각납니다.
“수녀님, 여기 수녀님들은 항상 이렇게 기쁘게 사십니까?”
환히 기쁘게 웃는 꽃같은 얼굴의 수녀님들을 보며 물었습니다. 수녀님 역시 늘 이렇게 기쁘게 산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할 때 꽃처럼 피어나는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물론 윤을수 신부님의 영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행복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마땅한 권리이며 의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실 잘 깊이 들여다 보면 누구나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로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찬양과 감사의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찬미의 기쁨, 감사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행복한 삶입니다. ‘그래서’ 찬미와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찬미와 감사는 하느님의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게 하는 영혼의 양날개와 같습니다. 찬미와 감사를 습관화할 때 운명이 바뀝니다. 긍정적 낙관적 인생관을 지니게 됩니다. 진정 행복한 삶과 죽음은 ‘알렐루야’ 찬양으로 살다가 ‘아멘’ 감사로 마치는 죽음입니다.
오늘 복음의 치유받은 10명의 나병환자중 온전히 영육의 치유 구원을 받은 자는 사마리아 사람 하나였습니다. 아홉은 육신의 치유는 받았지만 영혼은 치유받지 못한 반쪽만의 치유였습니다. 찬양과 감사를 통해 영혼의 치유를 받을 때 온전한 치유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묘사가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찬양과 감사는 한 셋트입니다. 찬양과 감사가 행복하게 하고 전인적 치유의 구원을 선사 받게합니다. 찬양하고 감사할 때 비로소 사람입니다. 살줄 몰라 불행이지 살줄 알면 행복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찬양과 감사입니다. 새삼 행복도 발견이요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진정 마음의 눈이 열려 찬양과 감사를, 행복을 발견했던 이는 사마리아 사람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의 실망과 감동이 교차되는 장면의 말씀입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찬양과 감사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라 주어진 선물인생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이 사람에게는 구원의 행복입니다. 우리 삶의 목표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하여 분도회의 모토도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아니라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오늘의 주님 말씀입니다. 찬양과 감사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끊임없는 찬양과 감사의 삶과 더불어 성장 성숙하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분입니다. 오늘 지혜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은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십니다.’ 차별없는 공평무사한 사랑을 베푸시며 모두를 배려하시고 돌봐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갈망하여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축복의 구원을 선물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