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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 주일 주님 세례 축일 

                                                                   이사42,1-4.6-7 사도10,34-38 루카3,15-16.21-22


                                                                               하느님의 자녀답게 

                                                                                  -겸손과 자비-


자비의 특별 희년(2015.12.8.-2016.11.20.)중에 맞이하는 주님 세례 축일이 참 각별한 느낌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로서 은총으로 빛났던 성탄 축제도 끝나고 내일부터는 연중 제1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성탄 대축일부터 오늘 주님 세례 축일 까지 세가지 위대한 주님 공현을 목격했습니다. 


첫 번은 성탄날 밤, 밤새 깨어 양떼를 돌보던 광야의 가난한 목자들과 함께 주님의 천사로부터 주님 성탄의 복음을 들었고, 두 번째는 지난 공현 대축일날 동방박사들과 함께 탄생하신 주님을 경배했고, 세 번째 오늘 주님 세례 축일날 주님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만천하에 환히 계시됨을 목격합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로서 성탄축제는 끝나고 내일부터는 바야흐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의 화답송 가사와 곡 역시 흥겨웠습니다. 온종일 흥얼거리며 끊임없는 기도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주시리라.”


아니 성탄대축일부터 그동안 축일날의 모든 화답송 후렴(손상오 신부의 시편성가)이 한결같이 은혜로웠습니다.


“땅끝마다 우리 주의 구원을 모두가 우러러 보았도다.”(성탄 낮미사).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성 가정 축일 미사).

“하느님 우리를 어어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미사).

“하느님 만 백성이 당신께 조배하리이다.”(주의 공현 대축일 미사).


모두 일년 내내 끊임없이 반복하며 끊임없는 기도로 바쳐도 참 은혜로운 시편노래들입니다. 오늘도 참 기쁜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리에 앞서 몸소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와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영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바오로의 말씀대로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가 되었고’, ‘사나 죽으나’ 주님만이 우리의 전부가 되었으며,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세례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요 은총의 신비입니다. 세례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런지요.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을 통해 우리의 신원을 확인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아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지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나누려 합니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하는 신원에 관한 물음입니다.

주 예수님의 신원을 통해 우리의 신원을 확인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오늘 다음 은혜로운 복음 대목을 통해 환히 계시됩니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려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대목인지요. 그대로 예수님의 사도행전에서와 같은 성령강림 체험이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으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기도와 동시에 활짝 열린 하늘문이요 하느님과의 완전 소통입니다. 주님 친히 세례 받으심으로 우리의 세례를 예비하셨고 우리 위해 하늘문을 활짝 여시어 우리 또한 하느님과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우리 역시 세례 받을 때 들렸을 바로 이 말씀이 예수님의 신원이자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신원입니다. 자매님들은 ‘아들’을 ‘딸’로 슬며시 바꿔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로 들으면 됩니다. 문제는 하느님 사랑받는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무명無名의 사람에서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라는 유명有名의 신분으로 존재하게 된 우리들이요 바로 세례명이 이를 입증합니다. 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맏형으로 하여 형제자매들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연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존재감있는 삶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물음입니다.

겸손하고 자비롭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겸손과 자비입니다. 영성의 진위를 판가름 하는 잣대가 겸손과 자비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이렇게 요한처럼 자기의 분수와 주제를 아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백성들과 함께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겸손 역시 감동적입니다. 다음 이사야의 주님의 종은 그대로 예수님의 모습이자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 않으리라.”


바로 주님의 겸손한 종 예수의 모습이자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입니다. 이어 주님의 자비로운 종의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도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역시 주님의 자비로운 종 예수님의 모습이자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시어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 겸손한 이들에게 선사되는 자비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날의 예언자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2016년 제4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우리 모두 겸손하고 자비롭게 살 것을 강조하십니다.


“저는 자비의 희년에 교회의 기도와 노력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겸손하고 연민이 넘치는 마음을 길러 자비를 선포하고 증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실천의 문제입니다.

겸손은 소극적 덕이 아니라 구체적 자비행으로 적극적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덕입니다. 이웃에게 빛이 되어 주는 것이고 이웃을 어둠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예수님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실천할 것을 명하십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주기 위함이다.”


예수님 몸소 평생 세상의 빛으로 이렇게 자비를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었고 우리를 통해 실현되길 기다립니다. 여전히 세상은 보지 못하는 이들, 갇힌 이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로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담화문중 이어지는 다음 말씀도 이사야 예언자와 맥을 같이하며 우리의 무딘 마음을 두드립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심장입니다. 이 심장은 피조물에 반영된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 존엄에 위협받는 모든 곳에서 힘차게 고동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다른 이들, 곧 이방인들, 병든 이들, 갇힌 이들, 노숙자들, 심지어 원수들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의 심판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아름다운 전례가, 끊임없는 기도가 심판의 척도가 아니라 구체적 자비의 실천이 심판의 척도라 하십니다. 관상은 활동으로 표현되어야 하듯이 전례는 자비의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삶은 선물이자 평생과제의 여정입니다. 세례는 한 번으로 끝났지만 끊임없이 거행되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가 세례의 은총을 새로이 하면서 우리를 겸손하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겸손과 자비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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